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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전세 50% 올리더니, 집주인·부동산 잠적”…110채 경매 날벼락

등록 2022-07-22 07:00수정 2022-07-22 14:52

소형아파트 1억3천만원 근저당에 전세금 6천만~1억
매맷값 1억6천만원인데 “7년째 사고없는 매물” 중개
집주인 둘이 110채 소유…세입자들 보증금 날릴판
‘갭투자’ 도시생활형주택·빌라 등 깡통전세 주의보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 전봇대에 붙어 있는 갭투자 홍보물.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 전봇대에 붙어 있는 갭투자 홍보물.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인천 미추홀구의 한 소형 아파트에 전세로 사는 ㄱ씨(66)는 임차한 집이 지난달 경매에 부쳐졌다는 통보를 받고 잠을 설친다. ㄱ씨는 지난 4월 전세금을 3000만원 올려 재계약 하자는 부동산 중개업자의 요구에 1800만원을 대출받아 보증금을 마련했다. 현행법 상 재계약 때 올릴 수 있는 임대료 상한은 5%지만, 이를 몰랐던 그는 약 50%를 올려줬다. 이 집에는 전세금보다 많은 근저당권도 끼어 있어 ㄱ씨는 경매 이후 보증금 대부분을 떼일 상황이다. 기초연금 등으로 생활하는 그는 “전세금을 날리면 갈 집이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최근 금리 인상으로 주택시장 활황세가 꺾이면서 도시형생활주택·빌라 등 소형주택을 중심으로 ‘깡통 전세’가 속출하고 있다. 저금리 시기 집주인이 전세와 대출을 낀 ‘갭투기’로 수백채를 사들였다가, 금리가 오르자 갚지 못하고 파산하면서 세입자들이 전세금을 날리는 것이다. 주변 공인중개사가 적극적으로 임차를 알선한 뒤 집주인과 함께 잠적하는 등 ‘계획 범죄’가 의심되는 경우도 있지만, 세입자가 돈을 돌려받을 방법은 마땅치 않다. 세입자가 계약 전 깡통 전세 위험성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게 하는 예방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110채 하루아침 ‘경매행’, 세입자 ‘발 동동’

21일 <한겨레>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지난달 말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에서는 총 112채 규모의 아파트 2개 동이 한꺼번에 법원 경매에 부쳐졌다. 전용면적 62∼63㎡(약 19평)인 이곳은 2015년 입주 직후부터 가구마다 1억3000만원 안팎의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었다. 집주인 2명이 모든 주택을 나눠 소유하고 있는데, 전세입자들만 바꿔 받았을 뿐 매매 손바뀜은 한번도 없었다.

경매가 끝나는 9월이면 세입자들 대부분은 전세보증금 일부를 떼일 상황이다. 가구마다 잡힌 근저당권 액수와 전세금(6000만∼1억원)을 합하면 매매시세인 1억6000여만원을 한참 넘기기 때문이다.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상 경매 이후 이들에게 돌아가는 최우선변제금은 이 지역(수도권 과밀억제권역) 기준 4300만원뿐이다.

대다수 세입자는 계약 전 근저당권의 존재와 깡통 전세 위험성을 걱정했다. 하지만 전세난이 심각해 전세 매물이 많은 이 단지에 입주했다고 한다. 입주민 안아무개씨는 “단지에서 매매거래는 한번도 이뤄진 적이 없어 시세를 알 수 없었고, 적정한 전세금도 가늠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건물주와 공인중개사들이 계획적으로 보증금을 떼먹었다는 의심도 나온다. 서너곳의 공인중개소가 적극적으로 이곳 전세를 계약하라고 소개한 뒤, 일부는 건물이 경매에 넘어간 직후 영업을 중단했다는 것이다. 경매가 임박했던 올 초부터는 공인중개사들이 집주인을 대신해 50% 이상 전세금을 올려 재계약할 것을 종용하기도 했다. 입주민 ㄴ씨(36)는 “물건을 보여준 공인중개사가 ‘7년째 사고난 적 없는 안전 매물’이라며 안심시켰다. 막상 경매가 시작되니 사무실 전화선을 뽑고 문도 잠그더라”고 말했다.

■  “세입자가 ‘깡통’ 위험 따질 안전장치 필요”

문제는 이런 단지가 전국적으로 비일비재 하다는 것이다. 대출과 전세를 끼고 집을 사들였던 집주인들이 최근 집값이 꺾이자 전세금을 못 돌려줄 형편이 되면서다. 집주인이 자기자본 없이 매매가만큼 높은 전세금을 받는 방식으로 여러 채를 사들인 경우에는 보증금이 ‘증발’될 위험이 특히 크다. 이달 검찰에 적발된 ‘세 모녀 전세사기’가 대표적이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19년∼2021년 8월 주택도시보증공사와 서울보증보험에 접수된 주택 보증금 미반환 사고는 8130건, 총 피해액은 1조6000억여원에 달한다. 이 중 89%는 빌라·도시형생활주택 등 보증금이 3억원 이하인 경우였다.

세입자들에게 깡통 전세 위험을 따지는 데 필요한 ‘사전 정보’가 충분히 제공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집이 경매로 넘어갈 경우 세입자가 선순위로 전세금을 돌려받는지 여부와 집주인의 세금 체납 규모 등을 사전에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임차인들은 전셋집을 구할 때 등기부등본을 주로 참고하지만, 근저당권 규모만 나올 뿐 기존 전세보증금 액수 등도 나와있지 않아 집주인이 내어줄 수 있는 현금 규모를 가늠하기 어렵다.

이창동 밸류맵 리서치팀장은 “전세가율에 대한 공공통계가 활발히 공개돼야 한다. 빌라 등의 단지 및 개별 호실별 전세·매매가를 동시에 비교하는 서비스를 공공이 제공한다면 세입자가 깡통 위험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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