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소형모듈원자로(SMR)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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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형 에스엠아르(SMR) 국회포럼’에는 지난해 4월 출범 당시부터 여야 의원들이 골고루 포진해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과 국민의힘 김영식 의원이 공동위원장을 맡았던 데서 그런 성격이 잘 드러났다. 포럼은 한국수력원자력 중심의 소형모듈원자로(Small Modular Reactor) 개발을 뒷받침한다는 취지를 띤 모임이었다.
원자력 발전 전반에 대한 태도에선 극명하게 갈린 두 정치 세력이 소형모듈원자로를 놓고는 뜻을 같이했던 것으로 읽힐 만했다. ‘탈원전’ 깃발을 내걸었던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12월 국무총리 주재 원자력진흥위원회에서 혁신형 소형모듈원전 개발 추진을 공식화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기출력 300㎿
이하의 소형(Small)이고 공장에서 제작해 현장에서 조립할 수 있는(Modular) 원자로(Reactor)라는 데서 비롯되는 여러 특성이 원전에 대한 거부감을 상당히 낮췄음을 보여주는 예다.
유럽연합(EU)의 그린 택소노미(Taxonomy·녹색산업 분류체계) 관련 결정은 소형모듈원자로에 대한 관심을 한층 높여놓았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이달 들어 원자력을 천연가스와 함께 그린(녹색) 에너지로 분류하는 택소노미 법안을 통과시킨 데 따라 원자력 산업계 또한 재생에너지 업계와 마찬가지로 ‘녹색 금융’(친환경 기업 우대)을 끌어들일 수 있는 혜택을 볼 수 있게 됐다.
정범진 경희대 교수(원자력공학과)는 “택소노미는 어떤 에너지원이 ‘녹색’(그린)인지 알려주는 과학적 도구”라며 “원자력발전소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작은 부지를 필요로 하고, 대용량의 전력을 생산하기 때문에 ‘녹색’으로 분류된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소형모듈원자로는 아직 상품화되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시장이 형성된 것은 아니지만 대형 원전 건설이 어려운 나라에선 ‘녹색 금융’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업체로 소형모듈원전 사업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힌 곳으로 에스케이(SK)·두산·지에스(GS)·삼성그룹을 꼽을 수 있다. 에스케이㈜와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은 지난 5월 미 소형모듈원전 업체인 테라파워와 포괄적 사업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테라파워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설립한 회사로 이름을 알렸다. 에스케이에 앞서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 지에스에너지, 삼성물산은 세계 1위 소형모듈원전 기업인 미국의 뉴스케일파워와 양해각서를 맺은 바 있다.
정부도 힘을 보태고 있다. 산업부가 지난달 발표한 원전산업 지원 방안에는 소형모듈원전 관련 대목이 들어 있었다. 한수원 중심으로 이뤄질 소형모듈원전의 독자모델 개발·상용화를 위해 2028년까지 3992억원을 투자한다는 내용이다.
소형모듈원전 사업 참여를 선언한 국내 업체 가운데 그 내용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드러낸 곳은 두산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주기기 같은 기자재를 제작해 뉴스케일파워에 납품하는 일을 맡게 된다고 밝혔다. 두산에너빌리티 쪽은 “올해 연말께부터 경남 창원 사업장에서 주기기 제작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두산 외 다른 국내 업체들의 소형원자로 사업의 내용은 명확하게 공개돼 있지 않다. 에스케이 쪽은 “테라파워와 포괄적 사업 협력으로 ‘넷제로’(온실가스 배출량 0) 실행에 속도를 낸다”는 정도로만 밝히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에 따르면 뉴스케일파워와 직결된 유에이엠피에스(UAMPS) 프로젝트의 상업운전 목표 시점은 2029년으로 잡혀 있다. 이 프로젝트는 미국 발전회사 유에이엠피에스가 뉴스케일의 소형모듈원전 모델을 들여와 미국 아이다호주에 발전소를 짓는 내용이다. 뉴스케일파워는 소형모듈원전 모델 중 처음으로 2020년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설계인증 심사를 최종 통과했다. 빌 게이츠의 테라파워는 아직 이 단계에 이르지 못한 상태임에도 상용화 목표 시기는 한해 빠른 2028년으로 제시해놓고 있다.
국내외 여러 업체의 투자 움직임, 유럽연합의 택소노미 결정에도 소형모듈원전에 대한 안전성 시비는 여전히 남아 있다. ‘소형’이라도 ‘원전’이어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환경단체 그린피스의 장마리 캠페이너는 이메일을 통한 문답에서 “소형원자로에 들어가는 코일형 증기발생기의 경우 안전 정비를 제대로 하기 어려운 구조이고 지속적으로 마모되는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며 여기에 “압력방출 밸브 누설 등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많다”고 밝혔다.
한국원자력학회장을 맡고 있는 정동욱 중앙대 교수(에너지시스템공학부)는 이에 “절대적 안전이란 건 없다”며 “안전이나 위험은 밸런스(균형) 잡힌 비교 평가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자동차도 항상 위험하다. 자동차만 보고 안전성을 따지는 ‘터널 비전’으로는 어떤 결정도 할 수 없고 아예 차를 탈 수 없게 된다. 다른 교통수단과 비교하고, 또 옛날 자동차보다 안전해졌는지를 봐야 한다.” 마찬가지로 원전의 위험성도 다른 에너지원에 견줘 환경·건강에 끼치는 영향을 살펴야 하며, 유럽연합의 택소노미 결정은 그런 비교 평가의 귀결이라고 설명한다.
소형모듈원전에는 안전성 시비와 함께 경제성 논란도 얽혀 있다. 대형 원전에 비해 규모의 경제에서 밀리는 탓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소형원전을 짓는 한수원의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추진되지 못한 것 또한 낮은 경제성 때문이었던 것으로 파악돼 있다. 한수원은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로부터 1억달러를 지원받아 자체 모델 ‘스마트’(SMART)의 소형원전을 사우디 현지에 짓는 프로젝트를 3년가량 진행한 바 있다. 한수원 쪽은 사우디 소형원전 사업을 중단한 게 아니며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는 방식으로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원전학계에선 국내 민간 기업들까지 원전 사업에 투자한다고 나서는 요즘 상황을 이례적이고 큰 변화로 여기는 분위기다. 정동욱 교수는 “전력회사 한군데에서 뛰어들어 성공하면 (소형원전 사업에) 나설 업체들은 줄을 서 있을 정도로 많다”며 “이는 놀라운 변화이며 처음 목격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정 교수는 “(국내외 업체들이) 사업 기회가 있다고 보는 동시에 리스크(위험) 요인 또한 여전히 남아 있어 출발선에서 관망하며 눈치 게임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탄소 중립 목표, 재생에너지의 약점인 간헐성 문제,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에너지 안보 문제가 부각되고 얽히면서 원전을 바라보는 시선이 매우 복잡다단해질 것임을 예고하는 장면이다.
김영배 경제산업부 선임기자
kimyb@hani.co.kr
경제부장, 논설위원을 거친 뒤 산업 현장 취재를 맡고 있다. <민스키의 눈으로 본 금융위기의 기원> <휴버먼의 자본론> <무엇이 우리를 무능하게 만드는가> <관료제 유토피아> 등을 번역해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