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단지 공사현장. 현대건설 제공
재건축 사업이 진행중인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옛 단지 내 상가의 한 점포에는 9명의 소유주가 있다. 전용면적 50㎡ 남짓한 점포의 지분을 9명이 5㎡ 정도씩 나눠 가진 것이다. 현행법 상 상가 한 곳을 여러명이 나눠 소유하더라도, 재건축된 새 점포는 이중 한 명에게만 분양된다. 그런데도 이 단지 상가 3곳 중 1곳은 복수 지분권자의 소유다.
둔촌주공 재건축사업의 ‘공사 중단’ 사태가 장기화하는 배경에 재건축 아파트 상가의 ‘지분 쪼개기’ 관행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명 이상의 투자자가 신축 상가 분양 등을 기대하고 저마다 10㎡ 안팎의 ‘쪽지분’을 매입하면서, 사업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혔다는 것이다. 재건축 상가가 투기수요 규제의 사각지대가 된 데다 주택 공급의 발목까지 잡고 있어,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11일 주택·상가 정비업계의 말을 종합하면, 309실 규모의 옛 둔촌주공 단지 내 상가에는 총 540여명의 지분권자가 등기돼 있다. 전체 상가 중 187실만 단독 소유이고, 나머지 122실은 350여명의 지분권자가 쪼개어 갖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이 아파트 재건축조합이 강동구청에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받은 지난 2017년 이후 지분을 사들였다. 각 호실의 원래 주인으로부터 지분의 4분의1∼2분의1을 매입한 뒤, 이 중 일부를 웃돈 붙여 재매각하는 식으로 거래가 이뤄졌다.
한사람이 소유한 지분 면적은 적게는 4㎡부터 20여㎡까지 다양하다. 한 점포의 경우 15㎡를 4명이 나눠 가져 지분권자 당 소유 면적이 3.8㎡에 불과했다. 이런 지분 쪼개기는 신축 상가의 점포를 얻기 위해서라는 게 정비업계 설명이다. 현행법상 모든 지분권자가 1실씩의 신축 상가를 분양받을 수는 없다.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은 “소유권과 지상권이 여러 명의 공유에 속하면 그 여러 명을 대표하는 1명을 재건축 조합원으로 본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점포마다 1실을 분양받은 뒤, 신축된 상가를 지분별로 나눠 갖는 것은 가능하다. 칸막이 등으로 공간을 나누어 각각 임대를 주는 식이다.
이를 위해 둔촌주공 상가 소유주들은 ‘무상지분율’을 높여 각 조합원이 분양받을 점포를 넓히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무상지분율은 현재 소유한 지분에 견줘 각 조합원이 추가 분담금을 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지분의 크기다. 무상지분율이 200%라면 30㎡ 상가를 소유한 조합원은 60㎡ 신축 상가를 무상으로 분양받는다.
문제는 이런 구상으로 1만2000채 규모 주택 재건축 사업 전체가 멈출 위기라는 것이다. 무상지분율을 높이는 과정에서 조합·상가단체가 사업관리(PM)사에 계약해지를 통보하자, 피엠사가 상가 건물에 대한 ‘유치권 행사’로 맞불을 놨다. 둔촌주공 상가단체는 지난 2012년 무상지분율 190%를 받는 조건으로 피엠사인 리츠인홀딩스와 계약한 바 있다. 피엠사는 상가 설계·분양 등의 사무를 자기 돈으로 추진하는 대신, 조합원 지분을 뺀 나머지 신축 상가를 분양한 수익을 가져가기로 했다. 하지만 무상지분율을 270%로 높이려는 현 조합은 지난해 12월 이 회사에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현대건설 등 시공사업단은 상가 유치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아파트에 대한 공사도 재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유치권이 걸린 상가 위로 주상복합 아파트 2개 동을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 동이 완공되지 않으면 단지 전체에 대한 준공 승인이 나지 않는다는 게 시공단의 설명이다. 반면 조합 쪽은 상가 분쟁과 무관하게 시공단이 공사를 재개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조합은 지난 6일 조합원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피엠사가 주장하는 유치권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상가 갈등으로 1만2000여채 규모의 아파트 완공이 늦어질 상황에 처하자 당국의 제도 정비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도심 대단지의 분양 지연은 아파트 조합원 뿐 아니라 일반분양을 기다리는 예비 청약자들에게도 손해다. 둔촌주공 뿐 아니라 강남구 개포·압구정동 등 재건축을 추진하는 강남권 다른 단지의 상가에서도 최근 ‘쪼개기 지분’ 거래가 늘어, 비슷한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박대원 상가정보연구소 소장은 “재건축 사업은 이해당사자가 수가 늘어날수록 신속한 추진이 어렵다. 재건축의 일정 단계 이후로는 원래 소유주 이외에는 지분을 쪼개 매각하지 못하게 하는 등의 조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천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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