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철 에너지나눔연구소장이 거주하는 서울 동대문구의 아파트 옥상 태양광. 심 소장 제공
심재철씨는 특수윤활유 제조업체인 한국하우톤에서 28년째 일하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아파트에서 부인, 20대 딸과 살고 있다. 평범한 이웃인 그에게는 범상치 않은 이력이 있다. 수년 동안 주민들을 설득해 아파트 옥상에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한 것이다.
“옥상에 태양광을 두자고 하는데 주민들이 말도 안된다고 하죠. 그래서 직접 동대표를 하기로 했어요. 지하주차장 등을 엘이디(LED)로 바꾸고 승강기에 회생제동장치(승강기가 하강할 때 모터에서 발생하는 운동 에너지를 사용 가능한 전기 에너지로 변환해 주는 장치)부터 설치했죠. 아파트 옥상에 태양광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입주민 투표에서 70% 이상의 지지를 받아야 했는데 최고층에 사는 주민들을 설득하는 게 처음에는 쉽지 않았어요.”
옥상 세대의 고민은 전자파 우려와 누수였다. 그는 과학적으로 태양광 발전으로 인한 전자파 노출이 없음을 공들여 설명했다. 태양광 시공을 하면서 옥상 바닥에 태양광 패널을 고정하느라 누수가 발생할 경우 보험처리가 가능하다는 것까지 이야기하자, 절반 이상 반대표를 던지던 최고층 주민들도 옥상 태양광 설치에 긍정적으로 돌아섰다. 결국 2020년 11월30일 심씨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포함해 8개동 중 방위·옥상 구조물 등을 고려해 태양광 발전 효율이 낮은 1개동을 뺀 7개동 아파트에 23~11㎾ 등 총 122㎾의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했다. 심씨가 사는 동을 기준으로 이 태양광 발전소는 33평(109㎡) 아파트 6개호의 3개호 정도의 넓이인 약 75평을 차지했다.
심씨네 아파트 옥상에 있는 태양광 발전으로 얻은 전기는 지하주차장이나 엘리베이터, 경비실 등에서 사용하는 공용 공간의 전기로 이용하고 있다.
태양광 발전이니 당연히 해가 지는 밤에는 이뤄지지 않는다. 날이 흐린 날도 빛이 줄어 발전량이 줄어든다. 장마나 폭설 등 해가 가려지면 발전량이 줄기 때문에 계절적 영향도 크다. 이 때문에 평균적으로 설비의 15%가량 발전량을 얻는다. 언론에서 지적하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가 이런 문제다. 과연 심씨가 매달 내는 공동전기요금은 얼마나 줄었을까.
이 아파트는 태양광 발전을 설치하고 나서 약 1만원 정도씩 가계 살림에 도움이 되고 있다. 비가 적고 볕이 좋았던 올해 5월 지하주차장과 엘리베이터 등에서 사용하는 공동 전기요금으로 집마다 4450원을 벌었다. 태양광 발전을 설치하기 전인 2017년 5월에는 공동 전기요금으로 6680원을 냈다. 해가 짧아 전기 사용이 늘어나는 겨울철도 월 1만원 정도 이득을 봤다. 2018년 12월엔 공동 전기요금이 1만160원이었는데, 지난해 12월엔 1350원을 냈다. 기자에게 관리비 청구서를 보여주며 절약 내역을 소개하던 심씨는 “아파트 옥상에 다른 구조물이 없다면 태양광 발전을 안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으로 이사오기 전 인근 아파트에 거주하면서부터 주민들과 에너지 절약·효율화 노력을 통해 200만㎾h의 전력을 아낀 이력이 있다. 태양광 발전의 효능을 체험한 뒤 ‘에너지나눔연구소’ 소장이라는 또다른 직업을 갖게 됐다. 같은 효능을 체험한 주민들과 함께 경기도 포천의 한 면직물 직조업 회사의 약 300평(992㎡) 규모 옥상에 설치된 99.8㎾짜리 태양광 발전소를 운영하며 여기서 생산한 전기를 판매하며 수익을 나누고 있다.
눈이 내려 태양광 패널이 덮이면 발전량은 줄어든다. 패널 위를 청소 중인 심소장. 심소장 제공
한국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전력이 보내주는 전기를 사용한다. 그러나 심씨와 같이 직접 전기를 만들거나 재생에너지 생산에 참여하며 투자를 하는 이들이 있다.
아파트 베란다 등에서 태양광 발전으로 자가소비용 재생에너지를 생산해 사용한 적이 있는 신근정 로컬에너지랩 대표는 “지난 몇 년 사이 태양광 발전에 대한 오해가 많았는데 특히 농촌 태양광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그렇다면 태양광을 도시에서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이사다닐 때마다 에어컨을 새로 설치하듯이 태양광을 설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0여년 사이 에너지 전환 인식이 늘면서 태양광 시장이 떠오르자, 기업들의 영역이 분화하고 있다. 한화큐셀은 전국 1162개 산업단지와 공장의 유휴부지와 지붕을 활용해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하기 위한 설비를 공급한다. 한화큐셀 관계자는 “공장 지붕은 대부분 그늘이 없어 일조량이 좋고 개발행위 허가 등이 필요하지 않아 인허가에 소요되는 비용이 적다”며 “송전 과정에서 발생할 사회적 갈등이 적은 것도 장점”이라고 소개했다. 한국전력도 학교와 공공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등 옥상 태양광 사업에 뛰어들었다.
심씨가 투자한 경기도 포천의 공장 옥상 태양광 발전소처럼 건물 옥상을 활용한 태양광 발전소 부지와 임대자를 직접 발굴·설계·운영·관리하는 ‘에이치에너지’ 같은 플랫폼 기업도 있다. 태양광 발전 사업을 위한 금융 지원 등을 하는 ‘솔라커넥트’와 지방의 영세한 태양광 발전소 시공업체들을 지원하는 ‘해줌’ 등도 태양광 산업 생태계를 이어주고 있다.
최근 엔터테인먼트사 제이와이피(JYP)의 ‘아르이(RE) 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캠페인) 선언을 도운 ‘루트에너지’는 시민들이 주식에 투자하듯 공공 태양광에 소액으로도 투자할 수 있도록 나서는 기업이다. 새만금 육상태양광에 주민참여 펀드를 개설하는 식이다.
올해 1월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이 집계한 결과를 보면, 태양광발전 협동조합과 발전사는 약 10만개소가 넘는다. 가장 볕이 좋은 전라남·북도에는 발전사 수가 2만5천개 이상이다. 기업들만 참여하는 아르이 100에 시민들이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아르이 100 시민클럽’도 지난해 4월 발족했다.
한화큐셀 진천공장 옥상 태양광 발전소. 한화큐셀 제공
한국동서발전(주)의 1단계 산업단지 태양광(2.3㎿ 규모). 한화큐셀 제공
녹색당이 포함된 독일의 새 연립정부는 지난해 말, 앞으로 지어지는 신규 상업 건물에 옥상 태양광 발전소 설치를 의무화했다. 독일의 전체 태양광 발전 중 74%가 자가소비형 옥상·지붕 태양광이다.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블랙록과 투자 은행 맥쿼리도 한국 태양광 스타트업에 투자할 정도로 한국 내 태양광 발전의 시장성도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시민들의 참여가 충분히 늘지는 못하고 있다.
함일한 에이치에너지 대표는 “태양광 발전사업은 환경·기후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사회운동으로 보이는 지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더 많은 시민들이 직접 태양광으로 전기를 생산하거나 태양광 발전 사업에 투자하며 참여할 수 있어야 산업 생태계가 튼튼해지고 지속가능해진다”고 말했다.
더 많은 시민들이 태양광 발전에 관심을 갖기 위한 과제는 산적해있다. 대여료 납부나 펀딩 참여·PPA(기업인수가격배분), 장단기 투자 가능 등 다양한 형식의 시민 참여가 가능해지도록 제도와 인식 개선 활동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과거 아파트 태양광 대여사업을 했던 한화큐셀은 1억5천만원을 들여 심씨의 아파트에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하고, 이 아파트 8개동 451세대는 매달 대여료를 1300원씩 7년 동안 내면 태양광 수명이 끝나는 20년 뒤까지 이 발전소를 무료로 쓸 수 있다.
윤태환 루트에너지 대표는 “일부 정부 사업 중에 무조건 주민 참여율만 늘리기 위해 주민들이 소액만 투자해도 정부나 사업자의 대출로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럴 경우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주민 수용성을 떨어뜨려 태양광 산업을 도태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중랑구 망우동 소재 중랑숲리가 아파트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시설. 한화큐셀 제공
서울 동대문구 브라운스톤휘경 아파트 태양광 발전시설. 심 소장 제공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