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부동산 중개업소의 전·월세 게시물 모습. 연합뉴스.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사는 김명신(54·가명)씨는 최근 정부가 발표한 ‘상생임대인’ 확대 방안 덕에 세금 걱정을 덜었다. 그가 보유한 서울 강남구 아파트의 세입자가 지난 5월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 기존 대비 5% 오른 임대료에 재계약을 했는데, 덕분에 3주택자인 김씨가 상생임대인이 되어 양도소득세 비과세 등의 혜택을 받게 됐다.
정부가 21일 낸 임대차 시장 안정 방안이 상생임대인이 되기 위한 문턱을 지나치게 낮췄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생임대인은 직전 계약 대비 임대료를 5% 이내로 올린 집주인에게 적용되는데, 다주택자가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로 ‘불가피하게’ 5% 인상률로 계약한 경우에도 같은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노후 재건축 단지 등 전세금이 하락세인 단지에 같은 기준이 적용되는 점도 맹점으로 꼽힌다.
23일 <한겨레>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상생임대인 자격에는 임대차3법에 따른 계약갱신청구로 임대차 재계약을 한 경우가 포함된다. 임차인은 첫 재계약에 한해 계약 갱신을 청구할 수 있는데, 이때 임대료 인상폭은 최대 5%로 제한된다. 지난해 12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이런 식으로 재계약을 맺는 집주인은 보유 주택 가격에 상관 없이 상생임대인이 될 수 있다. 다주택자에게도 자격이 열려, 나중에 상생임대주택을 뺀 나머지 주택을 처분해 1주택자가 되면 해당 주택에 실거주하지 않고도 양도세 비과세와 장기보유특별공제 등의 혜택을 본다.
이런 경우를 두고 ‘제도의 원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상생임대주택은 임대료 인상을 양보해 임대차 시장 안정에 기여한 집주인에게 세금 혜택을 준다는 취지로 지난해 12월 처음 시행됐다. 정부는 집주인들의 ‘임대차 가격 인상 자제를 유도한다’는 목표로 이 제도의 확대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계약갱신청구 대상 주택은 이 제도 시행 전에도 임대료 인상폭이 제한돼왔다.
전세시세가 오르지 않는 지역의 집주인에게 똑같은 혜택이 부여되는 점도 허점으로 지적된다. 재건축 아파트가 대표적이다. 지은 지 40년 넘은 노후 아파트는 개발 기대감에 매매가는 오르지만, 정주 여건이 떨어져 전세금 시세가 하락하거나 보합세인 경우가 많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경우, 올 들어 전용면적 76㎡의 전세가 계약갱신청구권 사용 없이도 5억∼6억5000만원(12층 기준)에 거래됐다. 지난 2020년 6월 같은 층이 6억5000만원에 계약됐다. 이곳 집주인들은 주변 시세대로 전월세를 놔도 상생임대인이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상생임대인 제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의 발판으로만 활용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정부 방안 발표 직후 ‘올해 안에 집을 사고 세입자를 구한 뒤, 제도 기한인 2024년 연말까지 재계약을 해 상생임대인이 되겠다’는 투자 계획이 줄을 잇고 있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명예교수는 “전세금이 떨어지는 지역이나 시기에도 집주인들에게 같은 혜택을 줄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라며 “시장 임대료의 평균 상승률에 비춰 자발적으로 임대료를 낮췄다고 볼 수 있는 경우로 한정해 제도를 적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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