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후 전북 완주군 삼례읍의 ‘소셜굿즈 혁신파크’에 입주해 있는 협동조합, 주민공동체, 사회적기업 등 다양한 사회적 경제 조직의 회원들이 주먹을 불끈 쥐며 완주가 추진하는 사회적 경제 활성화의 성공을 기원하고 있다. 완주/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완주군의 ‘사회적 경제’가 우리 가족의 귀농귀촌을 이끌었어요.”
전북 완주군민 윤혜진(41)씨는 4년차 귀농귀촌인이다. 윤씨는 “남편이 완주 ‘한국흙건축학교’에서 교육받다가, 아예 이곳에 정착해 사회적 경제 활동을 하기로 했다”고 소개했다. 한국흙건축학교는 가장 보편적인 건축재료인 흙을 중심으로 지역사회를 위한 친환경적인 건축문화를 추구하는 사회적 경제 조직이다.
사회적 경제는 지역 주민의 민주적 참여를 통해 사회적 가치 실현과 구성원의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경제 활동을 가리킨다. 문화, 교육, 돌봄, 육아, 에너지 등 주민 생활에 필요한 모든 영역을 망라한다. 윤씨도 사회적 경제 조직인 ‘더나은문화공동체’의 대표로 활동 중이다. 완주의 예술교육, 축제, 생태건축 분야 활동가들이 만든 공동체다.
더나은문화공동체 회원 9명 가운데 5명이 윤씨와 같은 귀농귀촌인이다. 이들은 “사회적 경제를 통해 얻는 보이지 않는 이득이 너무 크다”고 입을 모은다. 가장 만족하는 게, 신선하고 안심할 수 있는 완주의 먹거리다. 완주는 2008년 국내 처음으로 ‘로컬푸드’ 운동을 시작했다. 지금은 한국의 ‘로컬푸드 성지’로 불린다. 로컬푸드는 지역의 농산물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사회적 경제의 대표 영역이다.
완주가 사회적 경제를 활용해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주민 소득을 늘리며, 다양한 상품과 사회적 서비스 제공으로 삶의 질을 높이는 성과를 내고 있다. 사회적 경제를 활용한 완주형 모델이 지방과 농촌의 소멸 위기를 극복하고 귀농귀촌을 끌어들일 수 있는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는 이유다.
로컬푸드는 완주 사회적 경제의 토양이다. 로컬푸드 사업은 지역 사회에 신뢰할 수 있는 먹거리를 제공하고, 형편이 어려운 소농과 고령농에게 소득 안정을 안겨주었다. 현재 1600여 농가와 100여개 생산공동체, 40여개 마을회사, 11개 두레농장이 동참하고 있다. 2012년 6월 완주로컬푸드협동조합 설립 이후 올해 4월까지 10년간 누적 매출은 5133억원에 이른다. 또 일자리 3000개를 창출하고, 참여 농가의 81%가 연간 3000만원 이상 소득을 올리고 있다. 로컬푸드 직매장 12곳과 농가레스토랑 3곳도 운영 중이다. 공공·학교 급식사업, 농산물 가공사업도 병행한다.
지난 10일 오후 전북 완주군 이서 혁신도시의 전북삼락로컬마켓에서 한 소비자가 배추를 구입하면서 생산자의 이름, 연락처, 출하일이 적힌 가격표를 보여주고 있다. 완주/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완주 이서 혁신도시에 있는 전북삼락로컬마켓(로컬푸드 직매장)의 최명희 사업부장은 “농산품의 가격표에 생산자 이름과 연락처, 출하일을 명시하고, 로컬푸드 인증을 100% 받아 안심할 수 있는 먹거리를 제공한다”며 “소농에 대한 판매수수료 우대 정책 등을 통해 생산 농가에 최대한 이익이 돌아가도록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2020년 지방자치단체의 로컬푸드 평가를 위해 ‘로컬푸드 지수’를 도입했다. 완주는 2020년과 2021년, 2년 연속 전국에서 유일하게 최우수(S)등급을 받았다.
완주는 로컬푸드의 성공을 바탕으로 지역사회 전반에 사회적 경제 체제를 구축하는 노력을 본격화하고 있다. 2017년 말 ‘소셜굿즈 2025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소셜굿즈는 소셜(사회적)과 굿즈(상품)의 합성어로, 완주의 사회적 경제 시스템에서 생산하는 유무형의 상품과 서비스를 뜻하는 통합 브랜드이다.
마을과 지역공동체, 협동조합, 가공공동체, 비영리기구(NPO), 마을기업, 자활기업, 사회적기업, 청년조직 등 다양한 사회적 경제 조직을 육성해서 주민이 행복한 자족도시, 협동경제도시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사회적 경제 조직들이 지역사회와 구성원을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히 연결하는 것이다. 로컬푸드의 성지를 뛰어넘어 ‘사회적 경제 성지’에 도전하는 셈이다.
완주군이 폐교를 활용해서 만든 ‘소셜굿즈 혁신파크’는 사회적 경제 조직의 보금자리다. 이곳에는 24개의 조직이 입주해 있다. 주부 모임인 ‘되돌림’(대표 이선미)은 어린이들에게 친환경 교육을 하고 친환경 화장품·샴푸·세제 등을 만든다. 학부모 모임인 창작극단 ‘창연’(대표 구은희)은 아이들의 고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재미있는 교육연극을 만들어 공연한다.
소셜굿즈 프로젝트는 2025년까지 자립형 사회적 경제 조직 300개 육성, 신규 소득 500억원과 일자리 5000개 창출, 군민 참여율 30% 달성을 목표로 잡았다. 최종 사업연도가 3년 반 남았지만, 일부는 목표를 조기 달성했다. 사회적 경제 조직은 올해 6월 기준 320개가 넘는다. 매년 30~50개가 신설되는 현 추세가 이어진다면 2025년에는 400개를 훌쩍 넘길 전망이다.
신규 소득 창출(로컬푸드 제외)도 지난해 714억원을 기록했다. 로컬푸드 매출액 730억원을 합치면 전체 사회적 경제의 소득 창출은 1400억원에 이른다. 김동민 완주군청 로컬푸드팀장은 “연간 군 예산이 8000억원 규모인 것을 고려하면 대단한 성과”라고 말했다.
완주는 외부기관의 평가에서도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2월 발표한 ‘완주형 복지모델 구축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완주군의 1인당 지역총생산은 2016년 기준 4900만원으로, 인구와 복지예산 규모가 비슷한 전국 19개 시 지역의 평균 2700만원보다 81.5% 높다. 또 비슷한 규모의 16개 군 지역 평균인 3800만원에 견줘서도 28.9% 높다. 완주의 교육만족도는 2019년 기준 69.5%로, 비교 대상 시 지역(59.4%)과 군 지역(58%)보다 높다.
일자리와 소득이 많고 삶의 질이 높은 지역에서 살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완주의 인구는 2010년대 초중반까지 꾸준히 증가해 2017년 9만5975명을 기록했다. 인구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다른 지자체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2018년부터 감소세로 바뀌었지만, 2020년부터 인구 감소폭이 눈에 띄게 줄었다. 올해는 5월 현재 지난해 말 대비 31명만 줄어 현상 유지를 하는 셈이다.
이런 배경에는 2000년대 산업단지 조성, 2010년대 본격화한 공공기관 이주와 이서 혁신도시 건설 등 ‘특수 효과’도 작용했겠지만, 사회적 경제 활성화가 크게 기여했다는 평이다. 고용노동부는 2020년과 2021년 2년 연속으로 완주를 사회적 경제 친화도시로 선정했다. 유상훈 완주군청 소셜굿즈팀장은 “완주가 전북의 군 지역 중에서 유일하게 인구소멸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것은 사회적 경제의 효과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경제는 귀농귀촌 증가 효과로도 이어진다. 완주의 귀농귀촌 가구는 2012년 151가구에 불과했으나 2015년 1269가구로 급증했다. 이후에도 2018년 3055가구, 2020년 3637가구로 증가폭이 커지는 추세다. 완주의 귀농귀촌 인구 중에서 30%는 청년층(18~39살)이 차지한다. 도시의 안정적 일자리나 높은 연봉을 마다하고 귀농귀촌을 하는 청년들은 친환경 등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완주가 이들에게 귀농귀촌 동기를 부여하고, 사회적 경제를 활용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까지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유상훈 팀장은 “완주에 가면 소규모 농사를 지어도 소득과 연계되는 로컬푸드 사업이 있고, 도시에서 키운 재능을 활용할 수 있는 여러 사회적 경제 조직이 활성화되어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귀농귀촌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집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국 농산어촌에만 약 5000개의 사회적 경제 조직이 활동 중이다. 소규모 공동체나 마을 단위에서 사회적 경제를 구축하려는 시도는 이전부터 있었고, 일부 성과도 거두었다. 시군구 중에서는 전남 나주와 충남 홍성이 로컬푸드로 알려져 있다. 강원 원주와 광주 광산구는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 조직이 발달했다. 완주와 이웃한 전주도 2021년 사회적 경제 친화도시로 선정됐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보면 한국 농산어촌의 사회적 경제는 아직 초기 단계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완주처럼 전체 지자체 차원에서 민관이 사회적 경제 구축에 힘을 모으고, 가시적 성과까지 거두고 있는 것은 거의 전례를 찾기 힘들다. 많은 사람들이 완주형 모델의 확장 가능성에 주목하는 이유다. 송미령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완주의 사회적 경제 모델은 건강하고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 드문 사례로서 지속가능성 확보 측면에서 절반의 성공은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며 “완주가 지방과 농촌의 소멸을 극복하고 귀농귀촌을 이끌어낼 수 있는 대안적 모델로 발전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평가했다.
선진국의 경우 사회적 경제가 고용난과 양극화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에 따르면, 유럽연합 27개국의 고용에서 사회적 경제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6.3%인데, 한국은 1.1%에 불과하다. 프랑스·네덜란드·스웨덴·이탈리아 등 주요 국가의 사회적 경제 고용 비중은 10%에 이른다.
완주형 모델이 성과를 거둔 비결로는 10년이 넘는 꾸준한 민관 협력, 구체적인 성공 경험, 지역 구성원들의 인식 공유 등 세가지가 꼽힌다. 혁신파크의 운영을 맡은 이효진(40) 완주소셜굿즈센터장은 “로컬푸드의 성공 경험을 통해 민관이 협력하면 사회적 경제 구축도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오랜 민관 협력 과정에서 눈여겨볼 것은 정책의 일관성이다. 임정엽 전 군수(임기 2006~2014년)는 로컬푸드 사업의 씨를 뿌렸다. 후임자인 박성일 군수(임기 2014~2022년)는 로컬푸드와 사회적 경제를 튼튼한 나무로 키웠다. 오는 7월에 부임하는 유희태 신임 군수는 사회적 경제의 꽃을 활짝 피워 탐스러운 과실을 수확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다른 지자체들도 완주가 로컬푸드의 성지를 넘어 사회적 경제의 성지로 부상하는 것에 큰 관심을 보인다. 완주군은 “여러 지자체가 완주군의 경험을 배우기 위해 컨설팅을 요청하고, 담당 공무원을 파견하고 있다”고 말했다. 컨설팅을 제공하는 커뮤니티링크협동조합도 로컬푸드 사업에 참여했던 인사들이 만든 사회적 경제 조직이다.
정부도 사회적 경제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2019년 ‘사회적 경제 연계 농산어촌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지역 고유자원을 활용해서 특화산업을 발전시키고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는 농촌신활력플러스사업도 그 일환이다. 완주의 사회적 경제 조직들은 사회적경제기본법의 조속한 제정을 정부와 국회에 요청하고 있다. 사회적 경제 조직의 법적 토대를 마련하고 정책의 효율적 수행을 위한 사회적경제기본법은 2014년 최초 법안 발의 이후 9년째 표류 중이다.
완주/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jskw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