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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공기업 믿고 자료줬더니 기술탈취”…특허까지 받은 협력사 ‘존폐 기로’

등록 2022-06-12 14:35수정 2022-06-13 02:50

한진엔지니어링 먼지 저감기술
남동발전이 외부로 빼돌린 혐의
국정원 내사 거쳐 검찰 수사

피해업체 대표 “독자개발 기술
일본회사로 넘긴 뒤 경쟁사 낙찰”
남동발전은 유출 사실 부인
한진엔지니어링의 비산먼지 저감설비. 석탄 이송 장치에서 생겨나는 분진을 억제하는 장치로, 특수 노즐로 와류를 형성해 안개 분사를 하는 방식으로 먼지 발생을 줄이도록 설계돼 있다. 한진엔지니어링 제공
한진엔지니어링의 비산먼지 저감설비. 석탄 이송 장치에서 생겨나는 분진을 억제하는 장치로, 특수 노즐로 와류를 형성해 안개 분사를 하는 방식으로 먼지 발생을 줄이도록 설계돼 있다. 한진엔지니어링 제공

회사 핵심 기술을 도둑맞았다고 했다. 오랫동안 거래 관계를 맺어온 원청 사업자의 몇몇 직원이 기술을 빼돌렸다는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원청이 공기업인 한국남동발전이라는 사실이 놀라움을 더 한다.

기술 유출 피해자인 한진엔지니어링 창업자 허인순(54) 대표는 “22년째 사업 중이고, 5년 전부터 안정권에 접어들어 2020년에는 매출을 47억원으로 끌어올렸는데, 지난해엔 8억원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한때 15명에 이르던 직원이 지금은 5명으로 줄었다.
지난 2001년 한진엔지니어링을 창업한 허인순 대표이사. 한진엔지니어링은 대전 유성구 대덕대로에 본사를 두고 있다. 한진엔지니어링 제공
지난 2001년 한진엔지니어링을 창업한 허인순 대표이사. 한진엔지니어링은 대전 유성구 대덕대로에 본사를 두고 있다. 한진엔지니어링 제공

남동발전 협력사인 한진엔지니어링의 ‘옥내저탄장 분진저감설비’ 기술 탈취 관련 사건은 국가정보원 내사를 거쳐 현재 검찰로 넘어와 있다. 국정원은 이 사건을 ‘산업 범죄’로 규정하고, 지난해 3월부터 5개월가량 내사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 과정에서 남동발전 몇몇 직원이 협력사 기술을 외부로 빼돌린 혐의를 잡고, 사건을 수원지방검찰청으로 넘겼다. 수원지검 산업기술범죄수사팀은 지난해 8월 수사에 착수했으며, 지난 3월엔 남동발전 본사 건설처와 인천 옹진군에 있는 영흥발전본부를 압수 수색하기도 했다.

허인순 대표는 지난 3일 이후 <한겨레>와 한 여러 차례의 통화에서 애초 기술을 탈취당한 사실조차 알지 못했고, 고소를 한 것도 아니었다고 했다. 지난해 2월 중소벤처기업부 주최 산업기술 보안교육 과정에 상담 전문가로 참석한 대전지역 대학 ㅇ교수가 허 대표의 사연을 듣고 국정원 수사진에 전하는 바람에 사건화하기에 이른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허 대표는 기술 유출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사정을 몰랐다가 검찰에 불려가 피해자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사건 전모를 어느 정도 파악했다고 한다. 한진엔지니어링 기술이 “일본 ㅇ사로 흘러가 일부 변형된 상태로 국내 ㄹ사가 입찰을 따내는 데 활용됐다”는 주장이다.

“미세먼지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라, 문재인 정부 들어 석탄화력발전소의 옥외 저탄장을 옥내화하는 사업이 추진됐다. 앞으로 그 분야 일이 많아질 것으로 보고 (발전소) 현장 애로 사항을 개선하기 위해 연구·개발을 진행했다.”

한진엔지니어링은 2014년부터 자체 개발해 온 비산먼지 저감기술을 옥내 저탄장용으로 적용하기 위해 한국기계연구원과 함께 연구비 1억9천만원을 투자해 발전소 미세먼지를 잡는 독자 기술을 개발하고 특허 및 성능 인증도 받았다. 고압 노즐로 물안개를 만들어 옥내 저탄장의 먼지를 줄이는 이 기술은 2017년 남부발전 삼척그린파워발전소 현장에 처음 적용됐다. 먼지 저감율이 높아 남동발전이 고성하이화력발전소 현장에 적용하려 한다며 관련 기술 자료 요청을 해와, 관련 건설사들과 남동발전, 설계사인 한국전력기술에 자료를 줬다고 허 대표는 전했다. 그게 2018년이었다.

허 대표는 옥내저탄장의 미세먼지를 잡는 새로운 설비 기술을 국내에선 유일하게 확보한 데다 특허를 보유한 터여서 입찰에서 수주를 받지 못할 것이란 걱정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기술 관련 자료를 발전사와 건설사 쪽에 제공했던 까닭이기도 하다.

옥내 저탄장 건설사 쪽에서 입찰을 진행한다는 연락을 해온 것은 2019년 5월이었다. “입찰에 참여하려고 갔더니 ㄹ사(담당자)가 왔더라. 의아했다. 화력발전소 납품 실적이 전혀 없는 회사였기 때문이다.” 국정원 내사와 검찰 조사 과정을 통해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한진엔지니어링이 발전사와 건설사 쪽에 제공한 기술 관련 자료는 이미 2018년 10월부터 ㄹ사에 전달되고 있었다. ㄹ사는 기술탈취 주모자로 의심받고 있는 남동발전 관련 부서 직원의 인척이 임원으로 근무하는 회사라고 업계에선 알려져 있다.

허 대표는 당시 발전사 쪽에 납품 실적도 없는 회사와 함께 제한 경쟁 입찰에 부친 것에 문제를 제기했다. 곧이어 옥내저탄장 관련 건설사를 통해 공문이 전달됐다. 한진엔지니어링이 발주처(남동발전 등)로부터 하도급 업체 승인을 받지 못해 입찰을 취소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뒤 다시 입찰하는 줄 알고 기다렸지만 소식은 없었다. 고성하이화력발전소 옥내저탄장 건설사가 2020년 4월 ㄹ사와 비산먼지 저감설비 공사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은 뒤늦게야 알았다.

“민원을 제기하는 바람에 발주처에 찍혀 입찰 하도급 업체 승인에서 배제된 거로 생각했다. 분한 마음에 어떤 기술을 채택한 것인지 확인이나 해보자 싶었다. 그해 4월 계약, 12월 준공이라고 했다. 현장(경남 고성하이화력발전소)에 설치된 설비의 핵심인 ‘노즐’의 모델명을 파악해 알아보니 일본 ㅇ업체 제품이었다. 국내 ㄹ사 자체 개발이 아니고 전량 일본에서 수입한 것이었다.”

허 대표로선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는 정황이라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하기에 이른다. 공정거래 위반이라는 허 대표의 주장에 감사원은 뚜렷한 근거가 없다며 종결 처리한다는 답을 보내왔다. 이 때문에 허 대표는 단념할 수밖에 없었는데, 중기부 보안교육 프로그램 참여를 계기로 사태는 예상 밖의 방향으로 흘러 국정원 내사, 검찰 수사로 이어지기에 이르렀다.

허 대표는 2001년 창업 초기 ‘도로 커팅머신(절단기)’ 제작을 주력으로 삼았으며, 포장도로 시험 장비 분야로 영역을 넓혔다. 2004년부터는 발전소 관련 업무인 석탄취급 설비 분야에도 진출했다. 석탄을 이송하는 컨베이어벨트의 찢어짐 사고를 미리 감지해 피해를 줄이는 설비 기술이 한 예다. 허 대표는 “컨베이어벨트 감시에서 비산먼지 감시 쪽으로 옮겨가는 중이었는데, 요즘은 (기술탈취 사건에 휘말려) 개점휴업 상태다. 건설 현장과 플랜트 엔지니어링 관련 장비를 국산화해 저렴하게 빠른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해보자고 창업했는데 고생만 하고 존폐 기로에 섰다”며 허탈해 했다.

기술 유출 논란에 얽힌 남동발전 쪽은 기술 유출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한진엔지니어링 쪽에서 주장하는 부분을 감사원에서 이미 다 조사해 무혐의로 매듭지었다는 설명이다. 남동발전 관계자는 “압수수색이 한번 이뤄졌고 수사가 진행 중”이라면서도 “압수수색 때도 기술 유출 혐의로 영장이 청구된 게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남동발전 쪽은 “몇몇 직원이 개인 뇌물 수수 혐의로 압수수색을 받은 것이고, 개인적으로 변호인을 선임해 대응 중”이라고 전했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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