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값 급등과 원화 약세 상황에서 소비가 살아나고 물가불안 심리까지 겹치면서 우리 경제에 가파른 인플레이션 압력이 전방위로 파급되고 있다.
9일 한국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6월)’를 보면, 우선 미국 달러화 강세에 따른 물가상승 압력이 심화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이후 원화 기준 수입물가 상승률이 달러화 등 계약통화기준 상승률을 지속적으로 웃돌면서 물가상방 압력 현상이 본격화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대체로 마이너스를 나타냈던 환율의 수입물가에 대한 기여도 역시 작년 10월 이후 플러스로 전환되면서 수입물가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환율이 국내 물가에 전이되는 비율을 추정 산출한 결과 환율의 물가상승 기여도는 올해 1분기 중 소비자물가 상승률(3.8%)의 약 9% 정도(0.34%포인트)인 것으로 분석됐다. 보고서는 “특히 원유·천연가스 등 에너지부문 주요 품목에 대한 결제가 대부분 달러화(80.1%)로 이뤄지면서 원재료·중간재에서 환율효과가 크고, 향후 환율상승이 가공단계별로 생산자물가에 영향을 미친 뒤 시차를 두고 추가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한은은 또 과거의 물가 상승기와 달리 지금은 수요측면과 공급 요인 모두 최근의 높은 물가 오름세에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기회복과 방역조처 완화로 국내 소비가 회복되면서 인플레이션 확산세를 자극하고, 국제원자재 및 곡물가격 상승 등 공급측 요인이 복합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미 기업들은 향후 물가상승 기대를 제품 판매가격에 반영해 가격 인상에 나서고 있다. 보고서는 “최근 기업의 제품 판매가격지수가 큰 폭 상승하고 생산자물가의 인상품목 비중도 확대됐는데, 인상 폭이 원자재가격 등 높아진 비용압력을 감안하더라도 예년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높은 기대인플레이션 수준, 원재료 가격 오름세 지속 등을 고려할 때 당분간 기업의 가격인상 유인이 작용하면서 물가상승 압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판단했다.
특히 큰 폭의 명목임금 오름세와 기업의 판매가격 인상폭 확대 움직임 등을 고려할 때 최근의 단기(향후 1년) 기대인플레이션(가계와 기업의 향후 물가에 대한 예상) 상승은 이미 물가상승 압력으로 일부 작용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단기 기대인플레이션은 한은의 물가안정목표(2%) 수준을 상당폭 상회하고 있다. 보고서는 “물가 상승기일수록 기대인플레이션의 영향이 확대되는 경향과 물가에 대한 기대인플레이션의 파급시차를 고려할 때 향후 물가상승 압력이 더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한은은 단기 기대인플레이션이 3~4분기 뒤 물가에 다시 파급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정했다.
박종석 한은 부총재보는 이날 설명회에서 “최근의 물가 오름세가 주로 (국내 수요 측면보다는 원자재 공급 측면 같은)비용 요인이라서 기준금리 통화정책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견해가 일각에서 나오지만, 통화당국이 소극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좀더 선제적으로 물가 관리에 나서는 편이 중장기 거시경제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선제적 조처로 물가불안심리를 조기에 차단한 독일의 대응 사례가 이를 입증해준다”고 말했다.
조계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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