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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그림자’ 굴레 벗은 가사노동자, 모두 위한 일자리로 안착하려면

등록 2022-06-07 11:06수정 2022-06-07 11:10

16일부터 ‘가사근로자법’ 시행
정부인증 업체 통해 서비스 제공 땐
4대보험·최저임금·퇴직금 등 보장

이용자, 서비스개선·투명거래 기대
비용 부담은 늘 듯…세액공제 필요

비영리업체 지원해 공공성 강화를
‘미인증업체’ 노동자 보호도 과제
가사노동플랫폼 ‘우렁각시’ 회원이 의뢰인의 집에서 청소를 하고 있다. 한국가사노동자협회 제공
가사노동플랫폼 ‘우렁각시’ 회원이 의뢰인의 집에서 청소를 하고 있다. 한국가사노동자협회 제공

맞벌이 가구와 1인 가구가 늘어남에 따라 가사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과거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알음알음 이용하던 가사서비스는 2010년 플랫폼 기업의 등장으로 모바일 클릭 몇번으로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보편적 서비스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가사노동자(가사근로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었다.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며 70년 가까이 ‘보이지 않는 노동자’로 존재해온 가사노동자들이 드디어 근로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오는 16일 가사노동자와 이들을 고용하는 가사서비스 인증기관을 명시한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이하 가사근로자법)이 시행된다. 가사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양질의 일자리로 거듭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가사서비스 시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가사서비스는 대표적인 저임금 일자리로 꼽힌다. 고용노동부가 추산한 가사노동자 수는 지난해 기준 13만7천명이다. 이 중 여성이 96.9%, 남성이 3.1%이며, 연령대로 보면 50대가 33.1%, 60대 46.6%, 70대 12.1%, 30·40대가 8.2% 순으로 고령의 여성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들은 초단기 계약직 노동이라 불리는 ‘긱’ 노동자들 중에서도 가장 낮은 급여를 받고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지난달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가사노동자의 월 실수입은 17만6천원에 그친다. 이는 월평균 수입에서 유류비, 보험료 등의 비용을 제한 금액으로, 노동시간으로 나눠 시급으로 환산하면 2151원이다. 올해 최저임금인 9160원은 물론, 택배노동자(8643원), 배달노동자(8814원)의 시급에도 크게 미달한다.

가사노동자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5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가사근로자법 입법 통과를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제정된 가사근로자법이 오는 16일부터 시행됨에 따라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이래 69년 동안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했던 가사노동자들이 법적 보호를 받게 됐다. 공동취재사진
가사노동자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5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가사근로자법 입법 통과를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제정된 가사근로자법이 오는 16일부터 시행됨에 따라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이래 69년 동안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했던 가사노동자들이 법적 보호를 받게 됐다. 공동취재사진

법 시행이 가져올 가장 큰 변화는 그동안 근로자로서 인정받지 못했던 가사노동자들이 일반 근로자와 같이 4대 보험, 최저임금, 유급휴가, 퇴직금 등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가사노동자들은 그동안 근로기준법 제11조 ‘가사 사용인에 대하여는 (이 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는 조항 때문에 ‘근로자’로서 법적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가사노동자들은 최저임금보다 낮은 급여를 받고 업무 중 상해를 입어도 산재보험 적용을 받지 못했다. 성희롱 등 범죄 위험에 놓여도 상담과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창구가 없었다. 전북 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가 지난해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사노동자 10명 중 6.9명(69%)은 근골격계 질환을 갖고 있으며, 6.7명(67%)은 몸이 좋지 않은데도 수입이 끊기는 것이 두려워 참고 일했다고 답했다. 폭언과 욕설, 성추행 등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도 노동자의 몫이다. 김재민 서울노동권익센터 정책연구팀 연구위원이 조사해 발표한 ‘가사노동시장의 변화와 가사노동실태’(2018년)에서도 가사노동자들은 인격 무시(22.5%)나, 지나친 노동 감시(34.6%), 성희롱 및 성폭행 위험(5.8%)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사노동자들의 낮은 처우가 개선되고, 법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서비스 제공기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가사노동자들이 근로자로서 법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정부 인증을 받은 서비스 제공기관과 근로계약을 맺어야 한다. 그동안 가사서비스업은 직업소개소가 이용자와 노동자들에게 수수료를 받고 노동자들을 알선해주면, 이용자들이 노동자들에게 일을 맡기고 직접 임금을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정부가 인증한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은 사용자로서 노동자들과 근로계약을 맺는다. 또 이용자와 별도의 이용계약을 맺어 서비스 요금을 직접 받고,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급하게 된다.

서비스 제공기관이 되려면 법인이어야 하고, 5명 이상의 유급 가사노동자를 고용해야 하며, 고용·산재·건강보험과 국민연금 등 4대 사회보험에 가입해 최저임금 이상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또 인적·물적 손해에 대한 배상 수단과 가사노동자가 고충 처리를 요청할 수 있는 수단을 갖춰야 하고, 대표자 외에 1명 이상의 관리인력(50명 미만은 대표가 겸임 가능)을 확보해야 한다. 이처럼 까다로운 인증 절차를 거쳐 선정되는 제공기관에는 다양한 지원이 뒤따른다. 이용자에게 제공하는 가사서비스에 대해 10%의 부가가치세가 면세되고, 가사노동자 고용에 따른 국민연금 및 고용보험료 80%를 노동자 1인당 최대 3년까지 지원할 예정이다. 또 제공기관이 되기 위한 기관 진단 및 인증 요건 컨설팅을 제공하고 50살 이상 실업자를 고용해 3개월 이상 고용을 유지한 업체에는 임금의 일정 금액을 지원해주기로 했다. 김철수 고용노동부 고용문화개선정책과 사무관은 “지난 4월부터 제공기관 컨설팅 지원 사업에 참여 중인 업체는 65개소로, 올해 말까지 100개소를 대상으로 컨설팅을 제공할 계획”이라며 “이 중 약 70~80%가 제공기관 인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가사근로자법 시행 전후 이용 방식 변화. 고용노동부 제공
가사근로자법 시행 전후 이용 방식 변화. 고용노동부 제공

이용자, 카드 결제 등 투명한 거래 가능

가사서비스 이용자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기존 알선 업체를 통해 서비스를 이용하면, 고객(이용자)이 노동자들에게 직접 요금을 내야 했지만, 법 시행 이후에는 이용자가 제공기관에 요금을 내게 된다. 대신 제공기관이 가사노동자의 신원보증을 포함한 서비스 전반에 대한 관리 책임을 진다. 가사서비스 이용 요금의 지불 방식도 바뀔 예정이다. 현재는 일부 플랫폼 기업을 통한 가사서비스를 제외하면, 이용자와 노동자 간 현금 거래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인증기관을 통해 가사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신용카드 결제와 현금영수증 발급 등 투명한 거래가 이뤄질 수 있다. 이와 같은 서비스 거래 방식은 이용 요금의 표준화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정부 차원에서는 가사서비스 공식화를 통해 추가 세원을 확보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법 시행에 따른 긍정적 기대에도 불구하고, 가사근로자법이 제대로 안착하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가사노동자 고용에 따른 비용 증가로 가사서비스 이용 요금이 오를 가능성이다. 법 제정으로 노무비, 부가세 등의 기존 업체 부담이 가중될 가능성이 크며, 결국 이는 서비스 요금 인상을 가져오게 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지배적인 견해다. 지역에서 직업소개소를 10년 넘게 운영해왔다는 유정숙(가명·59) 대표는 “(인증기관이 되면) 채용할 정규직원의 주휴수당, 퇴직금 등 추가 비용뿐 아니라 이들을 관리해야 하는 관리비까지 노무비가 두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며 “현 서비스 비용으로는 노무비를 포함한 운영비를 빼면 수익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업계에서는 이용자들의 서비스 부담에 대한 세제 혜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미 프랑스, 스웨덴, 벨기에 등 주요 유럽 국가에서는 30~50% 수준으로 가사서비스에 대한 세액공제를 도입해 이용을 촉진하고 있다. 정부에서도 세액공제 방안을 고려하고 있으나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와 협의, 또 국회 입법 절차가 필요하다.

가사근로자법 시행을 지지해온 사회적 경제 기업과 비영리법인의 고민도 깊다. 사회적 경제 기업의 경우, 자본금의 대부분이 조합원들의 출자금에서 나오기 때문에 규모가 크지 않다. 수익을 창출하지 않고, 오직 비영리적 목적을 위해 제한된 영리 행위만 가능한 비영리법인도 마찬가지다. 금융과 대기업의 투자에 힘입은 가사서비스 플랫폼 기업의 자본금과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게다가 노동자들의 안정적 일자리 마련 등 사회적 가치에 비중을 둔 사회적 경제 기업과 비영리법인의 수익 구조는 추가 비용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들은 종사자들에게서 월 5만원 이하의 회원비를 받거나, 민간 영리기업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수료(매월 서비스 요금의 10% 이하)를 받아 수익을 얻고 있다. 사회적협동조합 행복한돌봄 안창숙 이사장은 “자본금이 충분하지 않은 우리와 같은 사회적 경제 기업은 사무실 임대료, 운영비를 충당하는 데도 빠듯하다. (인증기관에 대한) 지원 혜택이 있지만, 추가되는 노무비를 지속적으로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지역 현장에서 가사노동자들의 노동권 향상을 위해 노력해온 사회적 경제 기업들이 제도권 안에 들어가기에는 문턱이 높은 편”이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사회서비스와 마찬가지로 가사서비스가 노동자 권리를 보장할 뿐 아니라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나아가 고객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공공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민간에 맡겨둔 사회서비스 시장은 결국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를 늘리고, 서비스 질의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요양, 간병 등 돌봄 분야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가사근로자법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공공적 성격을 가진 제공기관의 역할이 중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오단이 강남대 교수는 “지역 현장에서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적 경제 기업들은 사회서비스 사각지대를 메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며 “농산어촌 지역과 같이 시장성이 떨어져 민간 영리기업이 진입하지 않는 지역을 대상으로 이들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공적 일감 확대, 표준화된 직업훈련 추가정책 시급

정부 인증 서비스 제공업체에 속하지 않은 노동자에 대한 처우 개선도 주요 과제 중 하나로 꼽힌다. 현행법에 따르면, 똑같은 일을 하고도 정부의 인증을 받은 제공기관에선 ‘근로자’로 대우받고, 일대일로 계약하거나 비인증 기관을 통해 소개받은 가사노동자들은 여전히 근로자로 대우받지 못한다. 동일한 노동을 하면서도 소속된 기관에 따라 퇴직금, 유급휴가, 4대 사회보험 혜택을 못 받는 등 노동자로서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는 말이다. 정부도 가사노동자들의 20% 정도가 근로자 자격으로 고용되는 것을 목표로 할 만큼 기존 비공식 노동자 모두를 제도권으로 유입시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가사노동이 안정적 일자리로서, ‘직업’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전문성을 확보하고 산업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가사서비스업을 세분화하여 업무를 표준화하고, 체계화된 직업훈련을 통해 노동자들의 전문성을 강화해 ‘직업인’으로서 경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경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영미 한국가사노동자협회 대표는 “제공기관이 제대로 안착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에서 공적 일감을 확대하고, 표준화·체계화된 직업훈련, 경력에 따른 적절한 보상체계를 마련하는 등 추가적인 지원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더나은사회연구센터장 ek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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