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탁 한밭대 교수(전 전력거래소 이사장)가 지난 19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만리동 한겨레경제사회연구소에서 역대 정부의 탄소중립 및 에너지 전환 정책에 대한 자기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밝히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이명박(MB) 정부는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서 재생에너지를 배제했고, 문재인 정부는 원전을 배제했다. 정책 방향은 정반대였지만, 사회적 합의 없이 현실성 없는 에너지정책을 결정한 것은 똑같다.”
전력 및 에너지 전문가인 조영탁 한밭대 교수(전 전력거래소 이사장)는 한겨레경제연구소와 인터뷰에서 역대 보수·진보 정부가 모두 에너지 문제를 진영 편향적으로 접근하다가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에너지정책은 백년대계로 수십년 앞을 내다봐야 하는데, 5년 주기로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원전 확대와 폐기를 반복하는 악순환이 벌어지면 성공할 수 있겠느냐”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의 탈원전 폐기에 대해 “엠비 때처럼 극단적인 원전 편향으로 가지는 않겠지만, ‘원전 최강국’ 표현은 조심해야 한다”면서 과거 정부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조 교수는 한전 적자와 전기요금 논란에 대해 “정부와 정치권이 전기요금 문제를 표와 연결시켜 정치화하면서, 신산업 창출과 기술개발을 막고 전기 절약을 끌어내지 못하는 게 진짜 에너지 위기”라고 진단했다. 그는 “정치권이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국민을 설득해야 하고, 정부의 자의적 개입 대신 독립적인 규제위원회를 통해 전기요금을 결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 교수는 “보수와 진보 모두 진영논리에 따른 프레임 공방은 그만하고, 현재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해서, 여야 합의로 탄소중립을 위해 반 걸음이라도 나갔으면 좋겠다”면서 “보수와 진보가 이념적 거리와 간극을 좁히는데 중재역할을 해서, 실사구시의 에너지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도록 미력이나마 보태고 싶다”고 밝혔다.
조 교수와의 인터뷰는 25일과 19일 두차례에 걸쳐 직접 대면과 전화통화로 진행됐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2030 엔디씨(NDC)를 설정할 때부터 2018년 기준 40% 감축 목표가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는데?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그동안 지속해서 증가해왔다. 1990년대부터 감소세를 보여온 선진국과 차이가 크다. 또 제조업 비중이 28%로 미국·유럽보다 높고, 에너지 다소비산업이 많다. 온실가스 감축 신기술은 2030년 이후에나 상용화될 전망이다. 전력부문의 감축도 원전 계속 운전, 화력발전 배제 속에 재생에너지의 확대로만 달성하기 쉽지 않다. 2030년 감축목표를 최대한 보수적으로 잡고, 이후 감축을 위한 가속 페달을 밟았어야 했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율을 현재의 5%대에서 30%로 높이는 목표는 어떤가?
“힘들다. 첫째 물리적으로 재생에너지 보급이 어렵다. 문재인 정부가 열심히 노력했지만 연간 4~5GW 확충하는데 그쳤다. 이런 추세라면 현재의 20GW에 2030년까지 40GW가 추가된다. 목표치인 120GW의 1/2에 그친다. 더구나 태양광 보급은 입지 제약으로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둘째 태양광과 풍력의 수도권 송전망 건설이 쉽지 않다. 셋째 안정적인 전력망 운영은 또 다른 장애요인이다. 재생에너지의 변동성과 간헐성 보완에 대량의 에너지 저장장치(ESS·양수설비)가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재생에너지와 저장장치 투자에 모두 800조~1000조가 필요하다는 전망도 있다. 연간 전력거래액 60조원의 13~17배에 달한다. 더구나 우리는 유럽이나 미국과 달리 고립계통망이다. 태풍, 장마 등으로 재생에너지 발전에 차질이 생겨도 국외에서 조달할 방법이 없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현실을 무시했다.”
―문재인 정부가 무리한 결정을 했다는 것인데, 그럴 이유가 있었나?
“에너지 전문가들은 진작부터 어렵다고 얘기했다. 탄소중립 의지나 국제적인 압박을 고려해도, 이해하기 어렵다. 자기 진영의 주장만 옳다고 하고, 다른 진영의 주장을 무시하는 것은 일종의 ‘파시즘’이다. 문재인 정부의 결정은 탄소중립이라는 가치지향에는 동의하지만, 현실성이 없다. 선한 의도만 중요한 게 아니고 선한 결과까지 만들어야 한다. 정부가 에너지 계획을 세우면서 수치적 목표만 제시하고, 현실적 제약 속에서 목표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내놓는 것은 등한시했다. 환경단체의 구호로는 상관없지만, 국정운영을 그렇게 하면 안된다.”
―윤석열 정부는 국제사회와의 엔디씨 약속은 준수하되, 내년 3월까지 새로운 이행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재계는 내심 새 정부의 약속 파기를 바라는 분위기인데.
“협약 상 선언한 감축목표를 낮추는 것은 금지돼 있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이 무리한 30년 감축목표 설정에 우려를 나타낸 것이다. 이미 이명박(MB) 정부가 2009년 발표한 약속(2020년까지 배출 전망치 대비 30% 감축)을 지키지 않아 기후악당이라는 비난을 받은 바 있다. 더구나 이번에는 개도국의 자발적 목표가 아니라 공식적인 이행 약속이어서 미이행 시 국제적 신뢰가 크게 추락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위기가 심각하다. 향후 국제사회의 탄소중립 추진도 영향을 받지 않겠나?
“공식적으로는 탄소중립을 지속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을 당분간 높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20년대 중반까지는 에너지 안보와 공급 안정성이 탄소중립보다 강조될 가능성이 크다. 탄소중립에 앞장서온 독일도 최근 석탄발전 비중을 높이고 있다.”
―역대 보수·진보 정부가 에너지 문제를 과잉 정치화하고, 원전 및 재생에너지에 대해 진영 편향을 보였다고 비판하는데?
“엠비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엔디씨는 모두 비현실적이다. 엠비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내걸고 원전 비중을 전체 발전량의 59%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반대로 문재인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주장했지만, 역시 비현실적이다. 엠비는 재생에너지를 배제하고, 문재인 정부는 원전을 배제했다. 두 정부 모두 사회적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에너지정책을 특정한 방향으로 결정했다. 에너지 문제를 단기적 시각으로 정치화한 탓이 크다.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합리적으로 조화시켰어야 했다. 에너지정책은 백년대계로 최소 수십년 앞을 내다봐야 한다. 5년 주기로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원전 확대와 폐기를 반복하는 악순환이 벌어지면 성공할 수 있겠나.”
―탄소중립 정책이 성공하려면 진영 중립적인 정책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새 정부는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중위)에 원전 전문가는 없고 시민단체 출신이 압도적이라고 주장했는데.
“많은 에너지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내용이다. 탄중위는 원전이든, 재생에너지이든 특정 전원으로 편중되면 안된다. 골고루 구성돼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폐기했다. 청와대 산업정책 비서관과 과학기술 비서관을 모두 원전 전문가로 임명했다. ‘원전 편중’ 아닌가?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엠비처럼 극단적(인 원전)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새 정부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다양한 얘기를 들어야 한다. 원전 분야 사람들이 이전 정부에 대해 섭섭해 하는 마음은 이해할 필요가 있지만, 감성적 접근은 실수를 반복할 수 있다. 합리적인 원전과 재생에너지 전문가들이 중심이 되어 논의를 이끌어가야 한다.”
―새 정부는 친원전과 재생에너지 조화 등 새로운 에너지 혼합으로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한다. 2030 엔디씨 관련 ‘플랜 비(B)’를 제안했는데?
“동원 가능한 모든 옵션을 활용하는 ‘무지개 브릿지 전략’이 필요하다. 안전성을 전제로 원전의 계속 운전을 고려하고, 화력과 가스발전도 활용하되 탄소 발생을 줄이는 위한 기술개발 투자를 늘려야 한다. 수요 관리도 필요하고, 해외감축도 활용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투자는 어떤가? 한국은 선진국과 달리 재생에너지의 발전원가가 원전보다 비싸다며 어렵다는 시각도 있는데?
“유럽은 원전·석탄·가스로 발전을 하던 시대에 에너지 전환을 시도했다. 당시 재생에너지가 비쌌지만 정책적 지원을 해서 관련 산업을 키웠다. 규모의 경제가 커지면서 코스트가 줄었다. 우리나라도 현재는 재생에너지가 비싸지만, 투자를 늘려야 한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목표치 제시가 아니고, 기술개발과 산업생태계 구축이다. 독일은 재생에너지 산업을 키우면서 일자리가 생기고 수출 기회도 열렸다. 에너지 전환과 시장 전환, 산업육성이 함께 가야 한다.”
―새 정부는 에너지 안보 및 탄소중립 수단으로 원전을 적극 활용하겠다면서 신한울 3·4호기 건설 조속 재개, 안전성 전제로 운영허가가 만료된 원전의 계속 운전,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 등으로 원전 최강국 도약을 약속했다. 가능한 일인가?
“원전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차원으로 생각한다. 다만 ‘원전 최강국’이라는 표현은 자칫 다른 발전원은 소홀히 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탈원전이 위험한 것처럼 원전 혼자 가는 것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일부에서는 원전 추가건설 필요성까지 제기된다.
“새 정부가 섣불리 원전 추가건설을 결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국민의 원전에 대한 수용성을 높이는 게 선결과제다. 수도권의 송전망 건설도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논의도 서둘러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정치적 부담을 이유로 논의를 중단시켰다. 유럽연합은 그린 택소노미(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활동 범위)에 원전을 포함했지만, 고준위 폐기물 처리시설 운영계획을 2050년까지 마련하도록 했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한미 정상이 원전 공동 수출, 소형모듈원전(SMR) 등 차세대 원전기술 개발 협력에 합의했다.
“에스엠알은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작아 수용성이 높다. 전력망이나 폐기물 부담도 대형원전에 비해 작다. 하나의 옵션으로 기술개발에 힘쓸 필요가 있다. 미래 에너지 기술이 어떻게 발전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전이 올해 1분기 8조원 가까운 적자를 기록하면서 전기요금이 논란이 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전기요금 통제방식으로는 탄소중립과 에너지전환의 실현은 어렵다고 했는데?
“에너지 전환을 위한 프로그램과 설비에 돈이 많이 든다. 전력요금 통제로 한전이 적자를 내는 것처럼 정당한 대가를 지불받지 못하면 누가 투자를 하겠나? 탄소중립과 관련한 신산업 창출과 기술혁신이 어렵다.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0순위’ 수단인 에너지 절약도 기대할 수 없다. 소비자가 여러가지 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어야 수요 절약이나 공급 혁신이 가능하다.”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보나?
“전기요금에 원가를 반영해야 한다. 독일과 일본은 우리나라의 2~3배 수준이다. 또 전기요금을 걷어서 에너지 전환에 필요한 투자도 해야 한다. 유럽은 1970년대부터 준비했다.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 에너지 전환의 핵심은 탈원전이냐, 친원전이냐가 아니라 전기요금의 탈정치화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전기요금 문제를 표와 연결시켜 정치화한 것이 진짜 에너지 위기다. 정치권이 지금이라도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국민을 설득해서 협조를 구해야 한다.”
―보수 진영은 한전의 대규모 적자가 탈원전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새 정부도 원전 발전량 감소로 한전 부채가 문재인 정부 5년간 13조 증가했다고 주장했다.
“과장이다. 월성 1호기 가동 중단 등을 포함해서 탈원전 요인을 모두 합쳐도 수천억원 수준일 것이다. 가장 큰 원인은 원료비 상승과 전기요금을 안올린 것이다. 다만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이라는 용어로 스스로 무덤을 팠다. 보수진영에게 공격할 프레임을 만들어 줬다. 탈원전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위해 전기요금도 올리지 않았다, 탈원전 논란은 에너지 문제를 정치적으로 접근하지 말라는 교훈을 남겼다.”
―전기요금을 시장에만 맡길 수는 없지 않나?
“전기요금을 결정하는 전기위원회는 독립성이 없다. 정부의 거수기 역할만 한다. 독립적인 규제위원회에서 발전원가, 국가경제 부담, 물가 등을 고려해서 합리적인 절차를 거쳐 정해야 한다. 정부가 자의적으로 개입하는 대신 공공적 규제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에너지 가격 상승에 취약한 빈곤층에 대한 직접보조 등 에너지복지제도 강화도 병행돼야 한다. 시장만능을 하자는 게 아니다.”
―정부가 한전 적자 대책으로 전력거래가격 상한 고시 개정안을 내놨는데, 민간 발전사들이 ‘반시장적’이라고 반발한다.
“연료가격이 급등해도 요금에 반영하는 게 정치적으로 막혀 있는 현실에서 나온 임시변통일 뿐이다. 지속가능 하지 않고, 근본대책도 아니다. 올해 한전 적자가 30조원으로 예상된다는데, 고작 몇천억 줄일 수 있을 정도다. 전력도매시장 구조를 바꿔야 한다. 거래 하루 전날 계통한계가격(SMP)에 따라 구매하는 단일방식에서 벗어나 몇 개월 전에 사전계약도 가능하게 하는 등 구매 다변화를 통해 리스크를 햇지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jskwak@hani.co.kr
보수·진보정부 에너지정책에 모두 참여한 ‘개혁적 보수’
‘생태경제학자’ 조영탁 교수는
조영탁 한밭대 교수는 전력 및 에너지 분야 전문가다. 또 20여년간 에너지와 환경 문제를 함께 연구해온 국내 대표적인 생태경제학자로, 한국생태경제연구회 회장을 지냈다.
생태경제학은 일반 경제학과는 달리 인간의 경제활동이 자원 흐름을 통해 자연생태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보고, 인류 사회와 생태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중시한다. 에너지를 화석연료에서 무탄소(저탄소)로 전환하고, 물질 사용도 일방적인 소비 대신 순환하는 방식으로 바꿀 것을 주창한다. 문재인 정부가 2020년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그린뉴딜 정책을 발표했는데, 그보다 14년 앞선 2006년 국내 처음으로 그린뉴딜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학계와 시민사회 등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2006년 국내 최대 규모의 에너지 전문 비정부기구(NGO) 연대기구인 에너지시민연대의 정책위원장을 맡았다. 2015년 경제발전론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모임인 한국경제발전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개혁적 보수’를 자처하는 그는 보수·진보 정권을 가리지 않고 정부 산하 위원회와 공기업 등 공적 분야에서 꾸준히 활동했다. 이명박·문재인 정부 때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에 참여했고, 박근혜 정부 때는 국가에너지 기본계획 수립에 기여했다. 2018년에는 전력시장과 전력계통의 운영,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등을 담당한 전력거래소 이사장을 맡았다.
저서로 <생태경제학자 조영탁, 생태경제와 그린뉴딜을 말하다>, <한국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전략: 생태경제학의 기획> 등이 있다.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