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표지 이야기 - 루나·테라 폭락 사태
루나 사태는 가상자산 시장 호황의 끝을 보여주는 사건…
한방에 역전해야 하는 사회, 2030세대가 암호화폐에 적극적
루나 사태는 가상자산 시장 호황의 끝을 보여주는 사건…
한방에 역전해야 하는 사회, 2030세대가 암호화폐에 적극적

2022년 5월24일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에서 한 고객이 폭락한 루나 코인 시세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테라는 블록체인 업계의 카카오 같은 느낌이었어요.”정보기술(IT) 업계에서 일하는 조아무개(31)씨는 2021년 중순 테라 플랫폼의 코인 예치·이체 서비스를 사용해보고 편리함에 놀랐다고 한다. 다른 블록체인 기반 금융서비스에 견줘 테라 플랫폼은 압도적으로 빠르고 편리했다. 주변 개발자들이 테라 플랫폼에서 통화로 쓰이는 ‘루나’ 코인에 많이 투자하는 걸 보고 조씨도 루나를 300만원어치 사봤다. 당시만 해도 한 개에 5만~6만원 하던 루나는 약 1년 뒤인 2022년 4월 한 개 가격이 14만원대까지 올랐다. 하지만 5월 초 갑작스러운 투매 사태를 맞아 가격이 폭락했고 5월25일 기준 개당 0.1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 관련 기사 원문은 한겨레21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테라 롤러코스터에서 내려 다음 열차를 기다리다 http://h21.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52072.html 거래소는 ‘루나’ 사태 책임 없나 http://h21.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52062.html “응, 네 엄마 돈으로” 독선적 루나 설계자의 예견된 종말 http://h21.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52064.html
■ ‘블록체인 업계의 카카오’, 이렇게 허망하게
“코로나19 여파로 매장 폐업 뒤 힘든 상황이 찾아오고 지인 자금과 대출을 당겨 3억 투자했어요. 너무 힘들고 가족한테 너무 미안하네요. 하루하루 마음이 찢어질 정도로 눈물 흘립니다.”
“두 아이의 아빠입니다. 10억 전 재산 날렸어요. 하루하루 눈뜰 때마다 고통입니다.”
“코인의 코자도 모르는 사람인데 어느 단톡방에서 이율 20%짜리 코인이 있다길래 수소문해서 유료 텔레그램방에 십몇만원 넣고 들어갔습니다. 5월11일에 5천만원 예치하고 (중략) 며칠 만에 4천만원이 사라졌습니다. (중략) 원망도 되지만 그래프도 제대로 볼 줄 모르고 난파선에 올라탄 제가 바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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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고 잃기 반복, 지쳐가는 몸과 마음
주식과 코인은 벌어도 후회, 잃어도 후회해요직장인 이정신(35)씨도 코인 투자로 마음고생을 했다. 주식투자를 주로 하던 그는 코로나19 직후 주가가 내려가고 금리도 낮아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힘들어 코인 투자를 시작했다. 회사 동료의 추천으로 알트코인에 투자했다가 약간의 수익 실현 뒤 원금을 뺐는데 얼마 뒤 그 코인이 상장폐지돼 다른 직원들은 돈을 많이 잃었다. 이후 이씨는 코인 가운데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평가받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샀다. 사고팔기를 반복하면서 비트코인으로 500만원 정도 수익을 냈다. 하지만 원금 500만원을 넣었던 이더리움은 한때 1천만원까지 올랐다가 현재는 수익률 -20% 상태다. “주식과 코인은 벌어도 후회, 잃어도 후회해요. 이익이 나면 ‘왜 더 많은 돈을 투입하지 않았을까’ 후회하고 잃으면 잃는 대로 마음 아파요. 코인이 주식보다 마음 변화의 후폭풍이 더 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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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박과 쪽박, 천당과 지옥 사이
집값 오르는 것 보며…우리 세대가 큰 돈 벌 수 있는 방법은 코인김성훈(35·가명)씨는 사회초년생이던 2017년 같이 사는 증권사 피비(PB·고액 자산 관리 전문가) 친구를 따라 코인 투자를 시작했다. 대출 1500만원을 받아 알트코인 ‘리플’을 샀는데 얼마 못 가 가격이 폭락해 투자금을 거의 날렸다. 대출 갚느라 고생했다는 김씨는 주식투자로 8천만원을 벌었고 그 돈을 2021년 코인 선물에 투자했다. 코인 가격이 1%만 올라도 10% 수익을 얻는 레버리지 상품인데 선물 가격이 크게 떨어져 투자금을 모두 청산당했다. “첫 투자에서 실패하고 그만뒀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만둘 수 없어요. 도박인 건 알지만 본전은 찾아야죠.” 그는 손실 회복을 위해 다음에 올 3차 코인 붐을 기다리고 있다. 김씨는 코인 투자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집값 오르는 거 보면서 서울역에 나앉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세대가 크게 돈 벌 수 있는 방법은 코인이에요. 사촌동생이 24살인데 코인으로 1억원을 벌었어요. 내가 1천만원 투자했다가 설사 모두 잃어도 삶이 크게 변하는 건 없는데 만약 대박 나면 인생이 바뀌는 거잖아요.”

법무법인 엘케이비(LKB)앤파트너스 변호사들이 2022년 5월19일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하기 위해 서울남부지검 민원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산 없지만 자신감 높은 밀레니얼세대
법은 역할을 할까 : 폭락 이후
루나 코인 가격 폭락 사태 이후 국내 주요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소는 ‘투자자 보호’를 이유로 루나를 상장폐지하고 있다. 고팍스는 2022년 5월16일, 업비트는 5월20일, 빗썸은 5월27일 루나 거래지원을 종료했다. 코인원과 코빗은 각각 6월1일과 3일에 종료할 계획이다.
거래소들은 뒤늦게 안내문을 띄워 코인 투자의 위험성을 알리며 ‘투자를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거래소가 상장 심사 때 루나의 사업구조 위험성을 제대로 검증했다면 투자 피해가 지금처럼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투자자와 코인 발행사의 책임 못지않게 거래소 책임도 크다는 것이다.
가상자산 발행자들은 거래소에 상장할 때 사업계획서의 일종인 백서를 제공한다. 백서는 투자자가 해당 코인의 위험성을 파악하는 자료이지만 코인의 구조, 위험수준 등 투자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항의 설명은 충분히 담겨 있지 않다. 금융감독원은 5월24일 당정 간담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발행자의 공시가 불충분하고 난해해서 발생하는 정보비대칭으로 인해 투자자가 가상자산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이어 “가상자산의 상장 및 상장폐지 요건이 느슨하고 불공정거래 점검이 체계적이지 않아 위험관리를 효과적으로 하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가상자산 시장 규모는 날로 커지는데 불공정거래·불법행위를 규제할 제도가 제대로 수립되지 않아 관련 범죄도 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가상자산 범죄(유사수신·사기 등) 단속 건수는 2018년 62건에서 2021년 235건으로 3년 새 3.8배 증가했다. 피해금액은 같은 기간 1693억원에서 3조1282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루나 투자자들도 20% 고율의 이자를 주며 자금을 모집한 루나 발행사 대표를 사기·유사수신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상태다.
정부는 루나 사태를 계기로 가상자산 시장을 규율하는 법 제정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5월24일 간담회에서 “가상자산 투자자가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에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가상자산의 발행·상장·거래 과정에서 사업자가 지켜야 할 규율체계를 마련해 주식 같은 금융상품 수준의 규제를 적용할 방침이다.
가상자산 규제 강화 흐름은 세계적인 추세다. 미국의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5월12일 “(루나 사태는) 스테이블코인의 위험을 명확히 보여줬다”며 “포괄적 (규제)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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