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서울 강북구 한 재개발 단지 앞에 청약 1순위 마감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최근 분양가는 오르는 반면에, 대출 규제는 세지고 금리도 오르면서 ‘분양 불패’로 불린 서울에서도 당첨자들의 계약 포기가 잇따르고 있다. 연합뉴스
대출 규제 강화와 금리 인상으로 매수 심리가 위축되면서 분양가 9억원을 넘는 아파트의 청약 경쟁률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분양가가 비싸거나 상대적으로 입지가 열악한 단지를 중심으로 분양을 받고도 계약을 포기하는 미계약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청약 시장이 갈수록 양극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9일 부동산R114 집계를 보면, 올해 전국적으로 분양가 9억원을 초과하는 아파트 청약 경쟁률은 지난 20일까지 9.4대 1이었다. 지난해 평균 64.7대 1에 견줘 경쟁률이 크게 낮아진 것이다. 6억원 초과 9억원 이하인 아파트는 청약 경쟁률이 지난해 평균 31.3 대1에서 올해 29.9대 1로 낮아져 하락폭이 9억원 초과보다 작다. 6억원 이하는 17.3대 1에서 9.2대 1로 떨어졌다.
계약 포기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을 보면, 서울 강북 미아동 ‘한화포레나미아’는 139가구에 대해 다음달 2일 무순위 청약을 진행한다. 328가구를 모집한 일반분양에서 당첨된 이들의 42%가 계약을 포기하자, 청약통장이 필요 없고 100% 무작위 추첨으로 당첨자를 뽑는 무순위 청약에 나선 사례다. 앞서 분양가가 9억원을 넘겼던 인천 송도 ‘자이더스타’와 ‘럭스오션에스케이(SK)뷰’에서도 당첨되고도 미계약한 사례가 대거 발생했다.
비수도권에선 미분양도 발생하고 있다. 케이시시(KCC) 건설의 대구 ‘수성포레스트스위첸’은 2순위 청약까지 했지만 21개 주택형에서 모두 대규모 미분양이 발생했고, 광주 한신공영 ‘금남로 한신더휴 펜트하우스’도 미달이 나오는 등 비수도권에서도 미분양 물량이 쌓이는 양상이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특히 최근 서울의 미계약 사례는 모집 당시에는 미달이 아니었고 청약 경쟁률도 낮지 않았던 곳들”이라며 “분양가 상한제 적용을 받지 않아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에 나온 아파트들에 당첨된 이들이 재당첨 제한 등 패널티를 감수하고서도 계약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분양가 상한제 대상의 민간 아파트나 상대적으로 저렴한 공공택지 아파트에는 청약 경쟁률이 높게 유지되겠지만, 분양가가 높거나 입지 여건이 열악한 단지는 앞으로도 청약 경쟁률이 하락하고 미분양 또는 계약 포기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올해부터 총대출액 2억원을 초과하는 대출자에게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40%(1금융권 기준) 적용된 데 이어, 7월부터는 1억원 초과 대출자에게까지 같은 규제가 확대 적용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금리 인상까지 겹치면서 분양가가 높을수록 아파트 청약 당첨자들은 자금 계획을 짜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정부의 분양가 상한제 개편과 대출 규제 완화 방침이 이런 ‘청약 양극화’ 양상을 크게 뒤흔들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다음달 발표될 예정인 분양가 상한제 개편 방안은 원자잿값 상승분 등을 분양가에 반영하는 미세조정이 예상되고, 대출 규제 완화도 청년·신혼 부부 등에만 해당되기 때문이다. 여경희 수석연구원은 “분양가 상한제 개편으로 분양가는 급등하기보다 현실화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고, 미달이 예상되는 단지의 공급자는 분양가를 적절하게 조정하거나 계약금·중도금에 대한 대출 혜택을 마련하는 등 자구책을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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