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명 금융리서치 기업 헤지아이(Hedgeye)가 2018년에 만든 카툰 ‘1979년 이후 미 연방기금금리의 역사’.
미국의 유명 금융리서치 기업인 헤지아이(Hedgeye)가 2018년 초에 만든 한 컷의 카툰 만평이 있다. 약간 농담처럼 그린 것인데 제목은 ‘1979년 이후 미 연방기금금리의 역사’다. 폴 볼커 연방준비제도 의장(1979년 8월~1987년 8월)이 의장에 취임하자마자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정책금리를 연 20%까지 대폭 올린 1980년 초 이른바 ‘볼커 쿠데타’(1980~1982년)부터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의 임기 종료(2018년 2월) 때까지 역대 연준 의장들의 신장 크기를 그려놓고, 그 기간의 정책금리 추이 그래프를 오버랩 시켜놓았다.
폴 볼커는 키가 약 2m에 이르는 거구의 장신이고, 그다음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1987년 8월~2006년 1월)은 꽤 큰 키(약 1m80㎝)이고, 그 후임 벤 버냉키(2007년 1월~2014년 1월)는 보통 키(약 1m70㎝), 재닛 옐런(2014년 2월~2018년 2월)은 상대적으로 작은 키(약 1m50㎝)다. 현재 의장인 제롬 파월(2018년 2월~)은 약 1m80㎝정도다. 연준 의장의 키가 점차 작아지는 ‘추세’에 정확히 비례해 연준 정책금리 수준도, 비록 다소 위아래로 진폭이 있지만, 경향적으로 내려갔다는 걸 한눈에 보여준다.
지난 40여년간 연준 의장의 키에 따라 연준 정책금리도 점차 하향 안정되는 흥미로운 장기추세 그림은 1970~1980년대 세계경제를 괴롭혔던 인플레이션이 경제에서 점차 사라져 퇴장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지난 10여년간 각국 경제학 교수들은 중앙은행의 전통적 임무는 ‘인플레이션 파이터’라고 설명하는 일에 애를 먹어왔다. 대학 청년들이 자기 생애에 인플레이션을 경험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거의 잊혀진 것처럼 보였던 인플레이션이 20여년 만에 다시 찾아오면서 헤지아이의 이 그림은 이제 제롬 파월까지 추가된 새 버전으로 여기저기 회자되고 있다. 보통 키의 파월은 지금, 난쟁이(코로나19 기간 ‘제로금리’)였다가 갑자기 거인으로 신장이 늘어나고 있는 형국이다. 연준에서 9년간 이코노미스트로 근무했던 김진일 고려대 교수는 “제롬 파월이 코로나 초기부터 돈을 풀면서 인플레이션을 용인하는 방향으로 통화정책을 폈고, 이번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인 거라고 생각하면서 어어하다가 금리인상 타이밍에서 실책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학자 집단 안에서는 우스갯소리로 “거시경제학을 하려면 원래 키가 커야 한다”는 말이 있다. 거시경제학 세계를 연 것으로 평가받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거구로 약 2m였다. 거시경제학자인 이창용 신임 한국은행 총재도 키가 1m92㎝로 기골이 장대한 중앙은행 총재다. 물론 예외도 많다. 거시 전공으로 노벨경제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 교수(1976년 노벨상)의 키는 1m57㎝로 단신이었다. 시카고대학에서 단짝 친구 교수로 있으면서 시카고학파 양대 거두로 불려온 거시의 프리드먼(‘미스터 매크로’)과 미시의 조지 스티글러 교수(1982년 노벨상·‘미스터 마이크로’)는 신장으로 자주 회자돼 온다. 둘의 키는 각자에게 붙여진 경제학적 별명과는 정반대여서 익살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창용 총재는 스승인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가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어디선가 말했다. “너무 빠르고 바쁘게 살지 말아라.” 4월 총재 취임 이후 한은 조직개편과 혁신업무에다 빠르고 큰 보폭의 금리인상까지 고민하면서 요즘 어쩌면 62년 생애 중에 가장 바쁘게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계완 선임기자
kye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