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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기후위기 대응 에너지 전환, ‘분산형 전원’이 성패 가른다

등록 2022-05-16 10:56수정 2022-05-16 11:09

석탄발전·원전 주도의 에너지 공급
중앙집중형 일방향 체계로 한계 직면

대안으로 떠오른 ‘분산형 전력시스템’
‘마이크로그리드’ ‘가상발전소’(VPP) 등
세계 곳곳에서 실증연구·사업 진행중

전력사용 지역 인근서 생산·소비하며
사회적 갈등 비용·전력손실 줄이고
탄소중립이라는 친환경 흐름에도 맞아

에너지 분권·분산까지는 난관 적잖아
“사회적 합의와 체계적 지원 뒤따라야”
국내 전력공급망은 해안가에 집적된 발전시설을 바탕으로 대규모 송전선로를 통해 수요처로 보내는 구조다. 이로 인해 대규모 사회적 갈등 비용을 초래하고 전력손실도 불가피했다.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이다. 언스플래시 제공
국내 전력공급망은 해안가에 집적된 발전시설을 바탕으로 대규모 송전선로를 통해 수요처로 보내는 구조다. 이로 인해 대규모 사회적 갈등 비용을 초래하고 전력손실도 불가피했다.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이다. 언스플래시 제공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산 중턱에 늘어선 송전탑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전국의 해안선을 따라 들어선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수송하기 위해 세운 대형 철탑들이다. 현재 국내에는 57기의 석탄 발전소와 24기의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 중이다. 전체 전력에서 석탄화력과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35%, 30%이다. 우리나라 에너지 공급 구조는 석탄화력 발전과 원전이 주도하는 전형적인 중앙집중식 체계다. 전국 단위 장거리 송전망 건설이 불가피했던 이유다.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만든 전기를 언제까지 끌어다 쓸 수 있을까? 극심한 기후변화 앞에서, 좁은 국토를 석탄화력 발전소와 송전선로로 채우는 일은 더 이상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은 시대를 맞고 있다.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한 우리나라는 시나리오 에이(A)안을 기준으로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를 70%까지 늘리겠다고 공표한 바 있다. ‘2050 탄소중립’은 30년 안에 에너지시스템뿐만 아니라 에너지와 연결되어 있는 모든 것을 함께 바꾸어나가야 함을 뜻한다. 빠르고 거대한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문제는 어떤 방식의 전환인가이다. 기후위기 대응 방안으로 친환경 재생에너지에 주목하지만, 문제는 재생에너지가 기존의 대량생산 기반의 중앙집중형 에너지시스템에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에 등장한 것이 ‘분산에너지’ 시스템이다. 분산에너지란 중소 규모의 태양광, 풍력, 연료전지 등 전력이 사용되는 지역의 인근에서 생산·소비되는 에너지를 말한다. 대규모 발전소와 송전선로 건설과 관련한 사회적 갈등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력손실을 줄이고 무엇보다 탄소중립이라는 친환경 시대 흐름에도 들어맞는다.

변곡점에 선 에너지 정책

지난 2월 서울 금천구 에스케이(SK)주유소에 문을 연 에너지슈퍼스테이션. 건물 옥상에 300㎾급 연료전지와 20㎾급 태양광 시설을 설치해, 여기서 직접 생산한 전기로 전기차 충전 서비스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의 규제샌드박스 실증 특례로 구현된 분산에너지 기반의 충전시설이다. 이런 방식으로 앞으로 동네 주유소는 물론 일반 주택도 작은 발전소가 될 수 있다. 안재균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분산에너지는 수요지 인근에서 생산해 소비되는 에너지이기 때문에 수용성도 높고 시스템 면에서도 송배전 손실률이 줄어드는 장점을 갖고 있다”고 했다.

반면, 기존의 중앙발전 시스템은 한곳에서 생산한 전력을 일방향으로 보내는 공급자 중심의 구조이다. 정부에서 예측한 연간 전력 수요량에 맞추어 화력 발전소나 원자력 발전소와 같이 대규모 용량의 발전소에서 발전을 하고, 생산한 전기를 송전→변전→배전의 과정을 거쳐 가정이나 산업·상업 시설 등으로 공급하는 방식이다. 이런 대규모 송전망 방식은 한계에 봉착했다. 송전탑 건설을 둘러싼 밀양 사태나 핵폐기장 문제로 대규모 유혈사태를 빚은 부안 사태처럼 극심한 사회갈등을 양산할 뿐 아니라 원거리 송전으로 인한 전력손실도 만만찮다. 단일한 전력망 체계 아래서 전국 단위 블랙아웃에 대안 우려도 상존한다.

전문가들은 고압 송전선 갈등, 원전 안전성 논란, 기후변화 대응 등이 한꺼번에 몰려들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분산형 전원을 촉진할 기회로 보고 있다. 한국에너지공단 이사장을 지낸 김창섭 가천대 교수(전기공학)는 ‘에너지 전환의 방향과 과제’ 주제 강연에서 “에너지 정책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이제 변곡점에 왔다”며 “포괄적인 구조 개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지난 2월9일 서울 금천구에 위치한 에스케이(SK)박미주유소에 문을 연 1호 ‘에너지슈퍼스테이션’. 태양광과 연료전지 시설을 갖춘 분산에너지 기반의 충전시설이다. 에스케이에너지 제공
지난 2월9일 서울 금천구에 위치한 에스케이(SK)박미주유소에 문을 연 1호 ‘에너지슈퍼스테이션’. 태양광과 연료전지 시설을 갖춘 분산에너지 기반의 충전시설이다. 에스케이에너지 제공

세계 각국은 이미 탈석탄·탈원전 정책 기조를 중심으로 에너지 수요관리와 분산에너지 시스템에 적합한 기술과 인프라, 제도를 갖춰가고 있다. 특히 전력부문에 정보통신기술(ICT)이 적용되며 분산에너지자원을 활용한 분산형 발전 시스템이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되고 있다. 마을 단위에서 전력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마이크로그리드’ 실증 사업은 국내에서도 진행 중이다.

지난해 말 산업부의 신재생에너지 기반 지원 마을로 선정된 제주의 우도 오봉리에는 재생에너지 기반의 전력 생산과 저장 설비가 구축 중이다. 에너지원은 태양광과 태양열을 이용한다. 마을 공용 부지에 태양광 설비가 갖춰지고 태양열 온수 공급 등을 통해 에너지 자립률 50%를 달성하는 것이 목표다. 공용 태양광 발전 설비를 통해 제3자 전력구매계약(PPA) 전력거래와 가정용으로 사용하고 남은 전기를 개인 간 판매하는 ‘피투피’(P2P) 거래가 이뤄진다. 이렇게 되면 연간 4500만원가량의 수익도 올릴 수 있다고 한다.

태양광 에너지를 전기차 폐배터리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실증 사업도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지난 4일 방문한 제주시 첨단로 에너지융합센터 앞마당에는 컨테이너 크기의 200㎾급 대형 에너지저장장치(ESS)가 설치돼 있다. 전기차인 현대차 ‘아이오닉’과 르노코리아 ‘SM3’에서 나온 폐배터리팩 28개를 활용해 만든 것으로, 센터 건물 위 태양광 패널에서 생산한 전력을 여기에 저장한다. 해당 에너지저장장치는 인근 마을 주민과 과학기술단지 입주 기업들에 전기차 충전용으로 무료로 제공된다. 이동훈 제주테크노파크 에너지융합센터 활용기술개발팀장은 “전기차 폐배터리를 이용한 이런 저장장치들을 여러개 합치면 마을이나 지역 단위에서 사용하는 마이크로그리드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방향엔 공감, 속도엔 이견

하지만 지역 단위에서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소규모 분산에너지자원만으로는 전체적인 전력수급 균형을 유지하는 게 어렵다. 분산에너지자원들을 하나의 발전소처럼 운영하고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 개념을 발전시킨 게 바로 ‘가상발전소’(VPP)다. 물리적으로 실제 존재하는 발전소는 아니지만 정보통신기술과 자동제어기술을 이용해 하나의 발전소 구실을 할 수 있게 고안된 통합관리 발전 시스템이다. 마이크로그리드가 소비자 수준에서 수급균형을 맞추는 것이라면 가상발전소는 이를 총괄하는 개념으로 도매전력시장을 통해 송전계통 수준에서 수급균형을 맞추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분산에너지 시스템을 계획만으로 구축하기는 쉽지 않다. 에너지 공급 기반 자체를 바꿔야 할 뿐 아니라 발전소와 수요처를 일치시키고 전력시장·제도도 분산 친화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공급 위주 정책을 수요관리 중심으로 바꾸는 것도 과제다.

제주시 한경면의 탐라해상풍력발전단지 전경. 한국남동발전 제공
제주시 한경면의 탐라해상풍력발전단지 전경. 한국남동발전 제공

지난 3일 제주에서는 중앙집중형에서 분산형 체계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짚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에너지 전환’ 토론회가 잇따라 열렸다. 제주도는 2012년 ‘탄소 없는 섬’, ‘카본프리아일랜드(CFI) 비전’을 발표하고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제로로 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올해 10년째를 맞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제주는 지난해 말 기준 870㎿ 규모의 태양광과 풍력 설비를 구축해, 전체 설비 중 재생에너지 비중은 39%, 발전량 비중으로는 18%까지 늘렸다. 그러나 출력제어와 재생에너지에 대한 지역 주민 수용성 문제 등 여러 도전 과제와 맞닥뜨린 상태다. 사단법인 에너지전환포럼의 ‘시에프아이 제주 달성을 위한 과제’ 토론회에서 임재민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은 “현재 제주의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18.2%밖에 안 됐음에도 출력들이 높아지면서 출력제한 증가 등 여러 문제를 겪고 있는 중”이라며 “단순히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뿐 아니라 여러 제도 개선이 필요하고 유연성 발전원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지금 추세라면 재생에너지 비중이 계속 높아질 테고, 육지에서도 출력제어는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자동차기자협회 주최 ‘분산에너지 기반의 전기차 충전, 주요 동향과 시사점’ 심포지엄에 참석한 김휘강 산업부 신산업분산에너지과 서기관은 “향후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전력계통의 부담 등으로 인해 분산에너지의 효과적 활용이 필수적”이라며 “정부는 전력 수요의 지역적 분산을 유도하는 한편, 안정적 계통 운영을 위해 에너지저장장치와 전기차 충전기 확충, 자가발전이 가능한 주유소 확대도 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에너지 전환으로 가는 길은 만만치 않다. 방향에는 대체로 공감하지만 시행 방법과 속도를 두고선 우리 사회에 많은 이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박종배 건국대 교수(전기전자공학)는 “분산형 에너지 체계로의 전환은 더 이상 가상이 아닌 현실의 문제가 되고 있다”며 “원활한 이행을 위해 정책 지원과 정치적 리더십, 구성원 합의가 함께 모색돼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홍대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어젠다센터장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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