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이 4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 결과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40년 만에 출현한 최악의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22년 만에 연방기금금리(기준금리)를 단번에 0.5%포인트 인상해 0.75~1%로 올렸다. 연준이 앞으로 몇 차례의 추가 ‘빅 스텝’(0.5%p 인상)까지 시사하면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추가 인상도 통화정책회의가 열리는 이달 26일을 포함해 속도가 훨씬 빨라질 공산이 커졌다. 코로나 이후 ‘소비 분출’이 이끌어갈 것으로 전망해온 세계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꺾이고, 금리인상발 경기둔화 국면에 대한 우려가 점증하고 있다.
연준은 4일(현지시각) 이틀 간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를 마치면서 정책금리인 연방기금금리 목표범위를 0.75~1%로 0.5%포인트 올린다고 발표했다. 기준금리를 통상적 조정 폭인 0.25%포인트가 아니라 그 두 배 규모로 인상한 것은 2000년 5월 이후 처음이다. 연준은 지난 3월에 2018년 이후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인플레이션 상황이 심각성을 더하자 이번에는 0.5%포인트 인상이라는 ‘빅 스텝’을 밟았다.
제롬 파월 연준 이사회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너무 높은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가격 안정을 회복하려면 최대한 빠르고 효과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추가적 (0.5%포인트) 인상도 앞으로 두세 차례 회의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데 (연준 위원들 사이에)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추가 금리인상 횟수 및 폭까지 비교적 명확한 표현으로 예고(포워드가이던스)를 내놓은 것으로,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통화정책 수단으로 반드시 꺾겠다는 의지와 신호를 보낸 셈이다.
연준은 동시에 보유 자산 축소를 통한 유동성 빨아들이기에도 나서 ‘쌍끌이’ 물가 잡기에 돌입했다. 9조달러(약 1경1398조5천억원) 규모에 이르는 연준 보유자산(대차대조표) 축소를 결정한 것이다. ‘양적 완화’ 정책으로 연준이 매입해온 미국 국채와 모기지 채권 자산을 털어내면서 시중 현금을 거둬들이는 ‘양적 긴축’에 나선 것인데, 6월부터 매달 475억달러어치, 9월부터는 950억달러어치씩 처분하기로 했다. 앞으로 2~3년간 3조달러어치를 털어낼 계획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연준이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과 자산 축소를 동시에 꺼내든 것은 수십년 만에 가장 공격적인 통화정책을 구사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파월 의장이 회견에서 “(미국 경제가)연착륙할 가능성이 높다”고 자신했지만 경기침체 우려는 지속되고 있다. 도이치은행 등 일부 투자은행은 고강도 긴축 효과가 가시화하면서 내년 하반기 이후 경기침체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최근 풀이 죽었던 뉴욕 증시의 에스앤피(S&P)500 지수는 이날 2020년 5월 이래 최대폭인 2.99% 상승했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3.19% 급등했다. “(시장 일각에서 예상해온)0.75%포인트 인상(‘자이언트 스텝’)은 적극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파월 의장의 발언이 투자 심리를 자극한 것으로 해석된다.
우리 통화당국은 금리인상에서 쫓기는 처지가 됐다. 미국 기준금리가 우리나라보다 높아지는 ‘금리 역전’이 일어나면 투자자금 유출, 원화가치 하락 등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1.50%)과 미국(0.75∼1.00%)의 기준금리 격차는 0.50∼0.75%포인트로 크게 줄었다. 연준이 두세번 빅 스텝을 취하면 미국 정책금리가 더 높은 상태로 역전될 수도 있다. 이날 골드만삭스는 연준이 5·6·7월 세 차례 빅스텝 이후 인상 폭을 0.25%포인트로 줄이는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2023년 2분기에 미국 기준금리는 3∼3.25%에 도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는 더 빨라질 공산이 커졌다. 연준의 추가 ‘빅스텝’은 물론 거의 5%까지 치솟은 국내 물가상승 압력에도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기준금리가 우리보다 높아지거나 엇비슷해지면 원화가치 하락에 따른 물가 상승압력은 더욱 커진다. 이창용 신임 한은 총재는 취임 전후에 “자본유출은 금리뿐 아니라 여러 변수에 달려있기 때문에 반드시 금방 유출이 일어난다고 볼 수 없다”며 “금리 격차가 커지면 원화가치가 절하될 텐데, 그것이 물가에 주는 영향을 조금 더 우려하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상당수 금통위원들은 지난 4월 금통위 회의에서 현실의 물가 상승과 일반인들의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상호작용하면서 물가 상승을 더 부추기는 ‘2차 효과’를 선제적으로 차단하려면 빠른 속도로 시중 통화량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시장은 금통위가 4월 인상에 이어, 당장 5월 회의를 포함해 연내 서너 차례 정도는 금리를 더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연준 회의 직후 한은은 5일 아침 시장점검회의를 열고 “이번 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결과가 대체로 시장 예상에 부합하고 파월 연준 의장 발언도 (통화긴축 속도와 폭에서)다소 덜 공격적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미국의 높은 인플레이션 상황과 연준의 연속적인 0.5%포인트 인상 전망 등으로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관건은 미국·한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마다 올들어 전례없이 빠른 속도와 높은 폭으로 구사하는 정책금리 인상이 전세계적 인플레이션을 잡는데 얼마나 빠르게 효과를 발휘할 것인지에 있다. 지난 20여년간 전세계에 지속돼온 저물가 현상이 순식간에 저물고, 이제 갑자기 인플레이션 시대에 들어선 형국이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세계 공급망 질서가 재편되는 등 국내외 경제여건이 구조적으로 변화한데다 물가·통화·성장 등 경제변수 사이의 전통적인 상호 관계가 약화하고 있다는 경제 분석이 많아지고 있다. 한국국제금융학회는 지난해 2월 국회에 제출한 ‘새로운 정책 여건 변화에 대응한 한국은행의 역할’ 보고서에서 “이전의 경제 여건 하에서 전통적으로 당연시되었던 경제 변수와 통화정책 사이의 안정적인 관계가 약화되거나 뚜렷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물가안정 수단으로서 통화정책의 대응 역량이 수십년만에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조계완 선임기자
kyewan@hani.co.kr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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