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에스케이(SK)그룹이 현대자동차그룹을 제치고 재계 2위로 올라섰다. 지난해 에스케이가 눈에 띄게 약진한 반면 현대차의 성장은 둔화한 결과로 풀이된다. 지금의 5대 그룹 체제가 정착된 이후 순위가 뒤바뀐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위는 삼성그룹, 4위는 엘지(LG)그룹, 5위는 롯데그룹이 각각 순위를 지켰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올해 대기업집단 지정 계획을 27일 발표했다. 공정자산 기준으로 자산 총액이 5조원 이상인 공시 대상 기업집단은 총 76곳으로 지난해보다 5곳 늘었다. 자산 총액이 10조원 이상인 상호출자 제한 기업집단은 지난해보다 7곳 증가한 47곳이다.

■ SK 2위 등극…IT업계는 무서운 성장세

올해는 에스케이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에스케이그룹의 자산 총액은 약 292조원으로 현대차그룹(258조원)보다 34조원가량 많았다. 에스케이가 현대차를 넘어선 것은 2003년 이후 처음이다. 특히 지금의 5대 그룹 체제가 정착된 2010년 이후에는 그 안에서 순위가 바뀐 적이 없었다. 12년 만에 지각변동이 일어난 셈이다.

이는 현대차가 에스케이의 성장세를 따라잡지 못한 결과로 보인다. 지난해 현대차그룹은 자산을 약 12조원 늘리는 데 그친 반면 에스케이그룹은 52조원을 불렸다. 공정위는 반도체·석유 사업의 매출 증가와 물적 분할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반도체 매출 증가로 인한 에스케이하이닉스의 자산 증가분이 약 21조원에 달했다. 에스케이온과 에스케이어스온, 에스케이멀티유틸리티의 분할 설립으로 인한 증가분도 약 8조원이었다. 반면 현대차그룹은 최근 10년간 연간 자산 증가액이 10조원대 초반을 넘지 못하고 있다.

카카오와 네이버의 성장세도 계속됐다. 카카오는 지난해 18위에서 올해 15위로, 네이버는 27위에서 22위로 올라섰다. 두 그룹의 자산 규모는 각각 61%, 41% 늘었다. 카카오의 경우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의 기업공개가 자산 증가의 주된 요인으로 분석됐다. 네이버는 검색엔진과 이커머스 등 영업활동의 이익잉여금이 증가하고 주요 계열사가 유상증자를 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이밖에 에이치엠엠(HMM)과 에스엠(SM), 장금상선 등 해운업계와, 중흥건설과 호반건설 등 건설업계의 약진도 두드러졌다.

두나무와 크래프톤이 공시 대상 기업집단에 새로 지정된 것도 눈에 띈다. 특히 두나무는 가상자산을 주력으로 하는 그룹으로서는 첫 지정이다. 두나무는 자산 총액이 10조8225억원으로 상호출자 제한 기업집단에도 동시에 지정됐다. 이 중 5조8120억원은 고객 예치금이다. 게임사 크래프톤은 지난해 기업공개로 공모자금이 유입된 게 영향을 미쳤다. 각각의 동일인은 송치형 두나무 이사회 의장, 장병규 크래프톤 이사회 의장이다. 넥슨의 새 동일인에는 고 김정주 창업주의 아내 유정현 엔엑스씨(NXC) 감사가 지정됐다.

■ “총수 친족범위 축소…이르면 내년부터 반영”

공정위의 대기업집단 시책도 지각변동을 눈앞에 두고 있다. 먼저 상호출자 제한 기업집단의 새로운 기준이 2024년부터 적용될 전망이다.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2천조원을 넘으면 상호출자 제한 기업집단 기준도 여기에 연동되도록 한 개정 공정거래법에 따른 것이다. 지난해 2천조원을 넘은 국내총생산 확정치는 내년 6월쯤 발표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2024년부터는 명목 국내총생산의 0.5% 이상의 자산 규모를 가진 기업집단이 상호출자 제한 기업집단으로 지정된다.

총수의 친족 범위도 이르면 내년 바뀐다. 현재는 동일인의 배우자와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을 모두 동일인의 특수관계인으로 본다. 이를 기준으로 계열사 범위가 확정되며 사익편취 규제 대상 등도 정해진다. 김재신 공정위 부위원장은 “친족 범위 조정에 대해 인수위와 논의했고 곧 국정과제로 발표될 예정으로 알고 있다”며 “(바뀐 범위가) 가능하면 내년도 지정부터 반영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