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6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1 그린뉴딜엑스포’에서 참관객들이 기업 부스를 돌아보고 있다. 이 박람회는 녹색산업 성장과 저탄소 친환경 사회 및 수소 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열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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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과 바람으로 전기를 만들고, 그 전기로 물을 분해(수전해)해 수소를 만들어 낸다. 그렇게 생산된 수소는 연료전지 속에서 산소와 섞여 전기로 바뀐다. 이산화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다는 ‘그린수소’ 생산·사용 과정은 ‘전기→수소→전기’로 이어지는 순환고리 모양이다.
실험실 단계를 막 벗어난 실증 사업 수준이긴 해도 그린수소를 생산한 사례는 국내에서도 진작에 나와 있었다. 발전 공기업인 한국중부발전과 수소전문기업 지필로스 주도로 2020년 12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시운전 상태에서 하루 35㎏가량의 수소를 생산하는 실증 작업을 벌인 게 첫 사례다. 중부발전과 지필로스는 여기서 생산한 그린수소를 수소드론과 수소전기차 충전소에 상용 목적으로 공급하는 방안도 준비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정책의 한 축인 수소경제는 문재인 정부의 색깔을 많이 띤다. 문 대통령은 2019년 1월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직접 나서 제시할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당시 로드맵은 수소차와 연료전지를 양대 축으로 삼아 세계 최고 수준의 수소경제 선도국가로 도약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중심으로 수소경제에 대한 정부 차원의 야심 찬 비전이 잇따라 나왔다. 문 대통령이 현대자동차의 수소차 ‘넥쏘’의 홍보 모델을 자처한 일은 대중적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고 수소경제에 대한 현 정부의 힘 싣기 사례로 자주 거론되곤 했다.
그린수소 실증 생산은 규모를 키운 형태로 잇따라 추진되고 있다. 한국남부발전 주도로 제주 구좌읍에 있는 풍력발전단지에서 생산된 전력을 기반으로 그린수소를 생산하는 12.5㎿급 수전해 설비를 구축하는 사업을 이달부터 시작한 게 대표 사례다. 10㎿급 이상의 대규모 수전해 실증 사업으로는 첫 사례다. 이보다 앞서 전남 나주(2㎿급), 제주 행원(3㎿급)에서도 소규모 수전해 실증을 위한 설비 구축 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린수소를 비롯한 수소경제에는 기대감과 아울러 의구심이 덧붙어 있다. ‘문재인표’ 이미지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수소경제 분야에는 부담이다. 상반된 성격의 정부일 뿐 아니라 신재생에너지를 비롯해 에너지 정책 전반에서도 결을 달리한다. 윤 당선자 쪽은 공약이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차원에서 현 정부의 ‘2050년 신재생에너지 비중 70%’는 과도하다며 수정 뜻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수소경제를 포함한 신재생에너지의 앞날엔 잠재적인 불안 요소다.
양병내 산업통상자원부 수소경제정책관은 이런 시선에 대해 “국제 사회에 약속한 이산화탄소 감축 목표를 달성하려면 그린수소 같은 재생에너지를 개발하지 않을 수 없다”며 “현 정부가 아니어도 수소경제 지원은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수소경제 지원 정책은 특정 정부의 성격에 따라 추진된 것이라기보다 세계적인 탄소중립 흐름에 발맞춘 것이며, 앞으로도 이어질 방향이란 설명이다.
제철회사에서 오래 일한 기업인 출신으로 환경·재생에너지 분야에 관심을 쏟고 있는 김경식 고철(高哲)연구소장도 “(새 정부 들어) 수소경제 조직이 축소될지는 모르겠지만, 가야 할 방향인 것은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수소가 쓰이는 곳은 자동차에 국한돼 있지 않다. 발전소, 제철소에서도 쓰인다.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그레이수소’는 글로벌 트렌드에 비춰 점점 쓰기 어렵게 된다.”
그린수소 분야의 성과는 아직 미미하다. 크고 작은 규모의 생산 설비를 구축하는 시도가 여럿 이어지고 있는 수준일 뿐 체감하는 결실로 이어진 사례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생산 실적은 소량의 1건만 알려져 있고 사용 쪽에선 시도 단계에도 들어가지 못한 실정이다.
중부발전 쪽은 애초 올해 1분기에 제주 풍력발전단지에서 생산하는 그린수소를 연료로 삼는 수소드론을 띄워 풍력발전기의 블레이드(회전날개) 상태를 점검할 것이라고 지난해에 공언한 터였다. 또 수소차 충전소에 공급한다는 일정도 같은 시기로 잡아놓고 있었다. 계획대로였다면 작은 규모나마 그린수소를 상용 목적으로 활용한 첫 사례로 기록됐을 두 사업 모두 아직 미결 상태로 남아 있다. 1분기를 넘긴 시점에서도 사업자 쪽에서는 일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중부발전 쪽은 “주관 기관인 지필로스와 함께 운영 방안에 대해 협의 중”이라고만 밝혔다. 수소드론이나 수소차를 위한 충전소 시설도 아직 갖춰지지 않은 상태다.
수소경제의 다른 한 축인 수소전기차 쪽의 성과 또한 미흡하다. 자동차산업 전반의 부진 속에서도 이어지는 친환경차 판매 호조는 주로 전기차에서 비롯된다. 올해 1~3월 국내에서 팔린 전기차는 2만5532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92.4% 늘어 거의 갑절에 이르렀다. 같은 기간 수소차 판매는 1644대에서 올해 1414대로 14.0% 줄었다.
환경부 통계를 보면, 올해 3월 말까지 보급된 수소차는 누적으로 2만778대 수준이다. 수소차 보급 대수가 이렇게 적은데다 충전기 보급 실적은 161기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부족하다. 충전기 1기당 수소차 129.1대꼴이다. 전기차와 전기충전소는 각각 26만5909대, 12만95기에 이르러 충전기 1기당 전기차 2.2대 수준인 것과 대비된다. 수소차 판매 부진이 충전소 건설 지체로 이어지고, 충전소 부족은 다시 수소차 판매 정체를 부르는 악순환 모양새다.
그린수소 생산은 더뎌 보이고, 수소차 보급은 여의치 않으며, 이와 연결된 새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육성 의지는 현 정부에 견줘 한참 약해 보인다. 수소경제의 앞날은 위축 쪽으로 맞춰진 걸까.
한국에너지공단의 이한우 수소경제추진단장은 수소경제에 대해 “탄소중립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고 에너지 시장의 큰 판을 바꾸기 위한 것”이라며 “당장의 성과가 미약하고 가격을 비롯한 경제성 측면에선 석탄, 원자력에 견줘 훨씬 떨어짐에도 미래를 보고 뒷받침하고 추진해야 할 영역”이라고 말한다. 국내 기반 그린수소 생산의 효율성 논란에 대해 이 단장은 “필요한 모든 수소를 그저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는 이유로 해외에서 사들이기만 하면 에너지 안보에 문제가 생긴다”며 “총수요의 25%는 국내에서 조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소경제는 이제 막 출발한 걸음마 단계이며 대개는 테스트 중인 상태인 것은 수전해 기술에서 우리보다 앞서 있다는 독일이나 북유럽 나라들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정도 있다.
경제부장, 논설위원을 거친 뒤 산업 현장 취재를 맡고 있다. <민스키의 눈으로 본 금융위기의 기원> <휴버먼의 자본론> <무엇이 우리를 무능하게 만드는가> <관료제 유토피아> 등을 번역해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