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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거수기·꿀알바 논란…산업부 장관 후보가 드러낸 사외이사 ‘민낯’

등록 2022-04-11 14:28수정 2022-04-12 02:43

이창양 후보, 인수위 중 사외이사 재선임 이해상충 논란
“이미 사퇴표명” 해명했지만, 향후에도 논란 ‘불씨’
이 후보 이사활동 이력, ‘사외이사제 무용론’ 맞닿을 여지
윤석열 정부 첫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이창양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간사가 1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수위원회에서 열린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를 마친 뒤 나서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 첫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이창양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간사가 1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수위원회에서 열린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를 마친 뒤 나서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 행적에서 의아한 점 한 가지는 기업 사외이사 재선임 시점이다.

이 후보자는 지난달 23일 엘지(LG)디스플레이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2019년 4월부터 3년 임기를 마친 뒤의 연임이었다. 이 후보자는 이보다 엿새 앞서 윤석열 당선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간사로 위촉됐다. 경제2분과는 기업 관련 사안과 밀접하게 연결되는 산업 정책을 다루는 자리여서 이해상충 논란을 일으킬만 했다.

엘지디스플레이 쪽은 11일 “대개 2월쯤 주총 안건을 공고하는데 당시엔 (인수위 경제2분과) 간사로 선임될지 알 수 없었고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이 후보자는) 이미 사외이사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나타내 이사회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회사 관계자는 “사외이사 자리 변동은 일반 직원과 달리 사표를 내고 수리되는 방식으로 처리되는 게 아니고, 후임자가 선임되면 자동으로 (사의) 처리된다”고 전했다.

재선임 시점은 한 예일 뿐, 이 후보자의 사외이사 재선임에 얽힌 논란은 국내 사외이사제 일반의 여러 문제점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사외이사를 둘러싸고 반복되는 시비에서 맨 앞자리에 불려 나오는 소재는 ‘거수기’ 노릇이다. 이사회 안건에 100% 가깝게 찬성표를 던지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 경영진을 견제·감시하는 구실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기업평가 사이트 시이오(CEO)스코어가 지난해 내놓은 자료가 이런 실상을 잘 보여준다. 64개 대기업집단 상장 계열사 277곳 사외이사의 2020년 이사회 활동을 전수 조사한 결과, 안건 찬성률이 99.53%로 나타났다는 내용이다. 2019년 99.61%와 비슷하며, 2021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한겨레> 보도를 보면, 이 후보자는 엘지디스플레이 사외이사 재직 중 이사회 안건에 반대표를 던진 적이 한번도 없었다. 반도체 소재 회사 티씨케이(TCK) 사외이사(2014년 3월까지 5년), 에스케이(SK)하이닉스 사외이사(2018년 3월까지 6년)로 일한 기간까지 포함해도 딱 한번(2012년 3월5일 에스케이하이닉스 이사회) 수정 의견을 냈을 뿐이다.

사외이사제에 대해 기업분석 전문기관 시엑스오(CXO)연구소의 오일선 소장은 “귤이 물을 건너오면서 탱자가 돼버렸다”고 말했다. 1998년 국내 처음 도입된 제도가 20년 남짓 지나서도 본 취지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는 실상을 일컫는다.

사외이사 자리라는 게 결국 교수, 전직 고위 관료나 법조인의 이른바 ‘꿀알바’ 자리에 지나지 않게 됐다는 비판 또한 거수기 논란과 얽힌 지점이며, 이 후보자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아 보인다. 그가 기업체 세 곳의 사외이사로 활동한 13년 동안 받은 보수는 8억원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후보자에게 거수기 논란 따위는 그나마 과거형인데, 이해상충 문제는 현재형이고 미래형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예정대로 산업부 장관에 임명될 경우, 특정 기업과 인연을 맺은 이력 탓에 기업 관련 정책을 펼 때마다 의문과 논란을 일으키기 십상일 터이다. 이 후보자는 이와 관련해 이날 인수위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사외이사와 장관의 역할은 다른 영역으로 엄연히 구별된다”며 “(이해충돌)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기업의 세계를 정치권에 견주면 이사회는 의회에 해당한다고 하니, 사외이사는 행정부를 제어하는 야당 의원쯤 되겠다. 맡겨진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사외이사는 박정희 정권 시절 대통령에 의해 지명된 유정회 의원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사외이사제 도입 뒤 겸직을 1개 회사로 제한하고, 2020년 제도 개선에선 임기를 6년(3년+3년)으로 제한하는 식으로 변화를 꾀했음에도 호의적인 평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사외이사제라는 게 내다 버려야 할 지경으로 망가진 걸까. 지배구조 분야 전문가 집단에선 그래도 고쳐 써야 한다는 쪽의 얘기를 많이 듣게 된다.

기업지배구조원장을 지낸 신진영 자본시장연구원장은 “제도를 없앨 순 없고, 이사회 역할을 강화하고 전문성을 높이는 쪽으로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신 원장은 사외이사를 둘러싼 관성적인 논란에서 시각 교정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신 원장은 “이사회가 제대로 작동하는 기업일수록 안건을 사전에 조율하는 수가 많다”며 “안건 찬성률만 평가하는 건 섣부르고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사외이사 보수 또한 책임과 권한에 비춰 과다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사외이사) 임기를 5년 단임으로 정해 소신껏 비판하고 견제와 균형 역할을 할 수 있는 방안”을 개선책으로 제안한다. 이와 함께 상법(382조 3)상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에 대해서만 지게 돼 있는 것에서 ‘회사와 주주’에 대해 지도록 법을 개정하는 조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류 대표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건에서 이사회는 거수기로 찬성했고, 그로 인해 당시 소수 주주들은 합병 비율 문제로 손해를 봤는데도 회사(삼성물산)는 아무런 손해를 보지 않았다”는 예를 배경으로 들었다. 법 해석의 관점에선 당시 이사들이 ‘선관 의무’를 다한 것으로 여겨졌으며, 이런 부분은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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