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경제 경제일반

올가미 된 ‘영업비밀 보호 각서’…“저는 뭘 해야 합니까”

등록 2022-03-26 17:51수정 2022-03-26 18:09

[한겨레S] 김영배의 경제 들여다보기
‘영업비밀 보호’ 어디까지?

“경쟁업체 입사금지” 세스코의 각서 기술직도 아닌데 퇴직자에 줄소송
“기밀사항 없이 독과점 유지 의도”
회사쪽 “영업비밀 탈취로 위기” 주장
전 직장 세스코로부터 전직금지 의무 위반 혐의로 소송을 당한 손아무개씨가 소장을 들여다보고 있다. 손씨 제공
전 직장 세스코로부터 전직금지 의무 위반 혐의로 소송을 당한 손아무개씨가 소장을 들여다보고 있다. 손씨 제공

☞한겨레S 뉴스레터 구독하기 https://bit.ly/319DiiE

손아무개(55)씨 집으로 소장이 날아든 것은 지난해 12월2일이었다. 난생처음 당하는 소송이라 적잖이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무섭기도 하고,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죠.”

송사에 얽힌 자체로 눈앞이 캄캄한 터에 소장에 적힌 숫자는 공포심을 잔뜩 키웠다. ‘피고는 원고에게 각 100,0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이 사건 소장 부본 송달일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2%의 비율에 의한 금액을 지급하라’ ‘(전직 또는 창업) 각 위반 행위 1일마다 1,000,000원을 지급하라’.

소송을 제기한 쪽은 손씨의 전 직장이자 국내 해충방제업계 1위 세스코였다. 그는 세스코에서 2013년 12월부터 7년가량 일했다고 한다. 2020년 6월 퇴사 뒤 마스크 제조업체를 창업했다가 사업 실패로 접고 말았다. 세스코에 재입사하겠다는 뜻을 적극적으로 밝혔지만 이마저 받아들여지지 않던 차에 같은 업종인 터미닉스에 연결돼 입사하기에 이른다. 그게 지난해 2월이었고, 소송을 당한 실마리였다.

7년짜리 직장, 이후 5년의 올가미

세스코가 소송의 근거로 삼은 건 부정경쟁방지법 영업비밀 보호 조항(10조 1항)이다. 이에 따른 대법원 판례(2010년 3월11일)에는 ‘경업’(경쟁업체 취업·창업) 금지 약정을 통해 사용자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게 돼 있다. 회사의 핵심적인 정보를 취급하던 근로자가 동종·경쟁 업체로 이직하거나 동종·경쟁 업체를 창업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세스코 쪽은 소장에서 국내외 동종 업계 업체명을 여럿 구체적으로 나열하며 2025년 6월까지 여기에 ‘취업하거나 창업하는 방법 등으로 (이들) 각 회사, 법인 기타 등의 해충방제 관련 연구, 개발, 영업, 강의, 자문 업무 및 그 보조 업무에 종사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못 박고 있다. 손씨는 이를 어기고 있으므로 1억원을 배상하라는 게 소송의 요지다.

세스코가 소 청구의 빌미로 삼고 있는 손씨의 약점은 여러 차례 작성한 각서다. 입사할 때 쓴 영업비밀보호 각서, 주기적으로 쓴 전직금지보충각서, 영업비밀보유확인서 따위다. 영업비밀보호 각서는 퇴사 당시에도 써줬다고 한다. ‘회사에서 실시하는 교육이나 훈련 과정 또는 직무수행 과정을 통해 취득한 회사의 영업비밀을 퇴직하는 경우에도 일정 기간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각서 작성에 대해 손씨는 “입사하면서 회사가 요구하는 사항을 누가 거부할 수 있겠느냐”며 답답해했다. “입사 뒤에도 여러 차례 작성했습니다. 지사별로 개인 서명을 받고 취합해서 본사로 보내는데 작성을 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각서로 약속한 건 맞지 않느냐’는 질문에 손씨는 ‘세스코 입사 뒤 취득한 영업비밀’이라 할 게 없다고 반박했다. 따라서 퇴사 뒤 보호할 영업비밀 운운은 어불성설이라는 항변이었다. 그가 내민 세스코 인사기록 카드에 적힌 이력에는 두 가지 직책이 적혀 있었다. ‘서울동북지사장’과 ‘경기동부지사장’이었다. 지사장 업무의 핵심은 에스시(SC·현장 서비스 직군) 채용과 관리 업무였다고 한다.

“지사장은 현장 방제 서비스 업무를 하지 않습니다. 소독업 종사자 교육도 받지 않았고, 현장 서비스 업무를 맡는 자리가 아니어서 고객 정보도 잘 모릅니다.” 삼성전자가 어떤 기술을 개발했는데, 참여했던 직원이 경쟁사로 가서 동일한 제품을 생산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라고 손씨는 강조했다.

그는 회사에서 영업비밀은커녕 지사장 업무에 필요한 조직관리에 관한 교육조차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오히려 그 이전 회사에서 쌓은 경험을 세스코에서 활용한 게 많았다는 설명이다. “(세스코 입사 전에 일했던) 동부화재에서 영업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았고, 조직관리 경험은 군에서 장교 생활을 하면서 쌓인 것이지 세스코에서 배운 것은 기억에 없습니다.” 세스코 입사 뒤 서울동북지사장으로 처음 발령받은 지 6개월 만에 갑자기 경기동부지사장으로 이동한 것에서도 이런 사정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세스코 쪽은 각서와 함께 ‘영업비밀보호 장려금’ 지급을 소 제기의 실마리로 삼고 있다. 각서를 받아 책임만 지운 게 아니라 전직을 금지하는 데 상응하는 대가(영업비밀보호장려금 또는 직무수당)를 지불했다는 주장이다.

손씨는 이에 대해 급여 내용을 제시했다. 2014년 1월 기준 수령액이 10원 단위까지 적혀 있었다. 그는 알려지면 창피스럽다며 구체적인 숫자는 쓰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첫 직장 동부화재 입사 동기들 연봉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이었습니다. 급여에 영업비밀보호 장려금을 포함해놓았고, 전직 금지에 대한 특별급여는 전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노조가 설립되면서 급여가 좀 올랐을 뿐입니다.”

손씨는 터미닉스에 입사하면서 특별 대우를 받거나 스카우트된 경우가 아니며, 급여 수준은 오히려 낮아졌다고 했다. 이 또한 영업비밀과는 무관한 전직임을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저는 어디 가서 뭘 해야 합니까”

손씨의 전직이 영업비밀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세스코 쪽은 왜 이런 식의 소송을 제기한 것일까? 이에 손씨는 “자기들 사업의 독과점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직원들의 이직이나 창업을 막아 다른 회사의 세 확장을 막으려는 의도라는 추정이다.

“이 업(해충방제)의 진입장벽이 매우 낮습니다. 대단한 노하우라고 할 만한 게 없기 때문이지요. 코로나19 사태 이전 5천개도 안 되던 방역업체가 지금은 1만개까지 늘어났다고 하는 데서 이걸 알 수 있습니다. 기본적인 소독업 종사자 교육(방역협회)만 받으면 누구나 사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일까. 세스코에서 소송을 당한 전 직원은 손씨뿐만이 아니라 여럿이다. 손씨와 함께 장아무개(57), 김아무개(55)씨가 나란히 피고 명단에 올라 있다. 세스코 쪽은 손씨에게 보낸 책 한권 두께 분량의 소장에서 절반가량을 퇴사 직원 상대의 승소 사례로 채워놓고 있다.

손씨는 항변조로 반문했다. “재입사를 시켜주는 것도 아니면서 다른 회사로 옮기는 것까지 5년 동안이나 막겠다니, 그동안에 저는 어디 가서 뭘 해 먹고살아야 하죠?”

<한겨레>의 해명 요청에 세스코 쪽은 “외국계 해충방제회사인 터미닉스가 국내 시장에 진입하면서 세스코의 마케팅 부서, 연구소, 해충방제팀장 등 전 분야를 망라해 다수의 직원을 영입하고 연구·개발(R&D) 기술을 탈취해 회사가 경영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며 “회사의 영업비밀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영업비밀을 취득한 직원들로부터 퇴사 후 일정 기간 전직금지 의무를 약속받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제부장, 논설위원을 거친 뒤 산업 현장 취재를 맡고 있다. <민스키의 눈으로 본 금융위기의 기원> <휴버먼의 자본론> <무엇이 우리를 무능하게 만드는가> <관료제 유토피아> 등을 번역해 펴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경제 많이 보는 기사

내가 쓰는 폼클렌저, 선크림 잘 닦일까?…‘세정력 1위’ 제품은 1.

내가 쓰는 폼클렌저, 선크림 잘 닦일까?…‘세정력 1위’ 제품은

‘노량진서 회 싸게 먹는 꿀팁’, 이를 막으려던 상인회…그 ‘비극적’ 결말 2.

‘노량진서 회 싸게 먹는 꿀팁’, 이를 막으려던 상인회…그 ‘비극적’ 결말

“NC·넷마블, 구글과 인앱결제 담합…뒷돈 받아 7800억 이윤 챙겨” 3.

“NC·넷마블, 구글과 인앱결제 담합…뒷돈 받아 7800억 이윤 챙겨”

‘노도강’에 84㎡ 분양가 14억 돌파…신축 열풍이라지만 4.

‘노도강’에 84㎡ 분양가 14억 돌파…신축 열풍이라지만

확 바뀌는 청약제도, 2030 내 집 마련 길 넓어진다 5.

확 바뀌는 청약제도, 2030 내 집 마련 길 넓어진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