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 과세’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과세 원칙이었다. 실거래가보다 턱없이 낮은 공시가격을 현실화하고 투기 억제를 위해 다주택자 중과, 부의 이전에 대한 과세 정상화 등을 추진했다.
23일 밝힌 정부의 보유세 완화 방안은 그동안의 공평 과세를 원점으로 되돌린 ‘최종판’인 동시에 향후 추가 부담 완화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부동산 가격공시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공시가격인 부동산 적정가격은 통상적인 시장에서 정상적인 거래가 이루어지는 경우 성립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인정되는 수치다. 하지만 실제로는 공시가격이 실거래가의 50∼70% 수준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재정개혁특별위원회는 2019년 공평 과세를 내세워 보유세 형평성 제고를 위해 과세의 기초가 되는 부동산 공시가격의 시가 반영비율 현실화를 권고했다. 이듬해 국토교통부는 2025~2035년에 걸쳐 장기적으로 공시가격을 시세 대비 90% 수준까지 올리겠다고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여기까지였다. 그 이후부턴 거꾸로 되돌아가는 과정이었다. 2021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한 여당은 보유세 부담 완화를 약속했다. 1세대 1주택자에 대해 재산세율 특례 적용 범위를 공시가격 6억원 이하에서 9억원 이하로 확대했다. 또 종합부동산세 과세기준은 공시가격 9억원 초과에서 11억원 초과로 상향했다. 여기에 고령자 공제와 장기보유자 공제 등도 확대했다. 그런데도 종부세 고지가 시작되면서 과세 부담이 크게 늘었다는 여론이 일자 정부는 다시 한 번 물러났다.
지난해 12월 말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는 시장 안정, 정책 일관성, 형평 문제 등을 고려해 세제 변경 계획이 없다”면서도 “1주택 보유 서민·중산층의 세 부담을 일정 부분 완화해주는 보완책을 검토해오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3개월 뒤 올해 공시가격을 발표하면서, 1세대 1주택자의 재산세와 종부세를 부과할 때 지난해 기준을 쓰겠다고 밝혔다.
해당 연도가 아니라 전년도 자산 가치에 과세하는 것은 조세 원칙과 어긋난다. 올해 번 소득이 아닌 작년에 번 소득에 세금을 매기겠다고 하는 것과 같은 기묘한 상황으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한번 둑이 터진 원칙이 계속 허물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당장 진현환 국토교통부 토지정책관은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이) 경직적으로 운영된 측면이 있다”며 “필요하다면 용역도 하고 공청회도 거쳐서 일정 부분은 보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장기적으로 재산세와 종부세를 통합하는 것은 물론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최대 2년 유예 등을 공약해 부동산 세제 부담 완화는 더욱 가속화할 공산이 크다. 힘겹게 추진하던 공평 과세가 무너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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