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우삼 기업재생에너지재단 상임이사 겸 한국RE100위원회 위원장. 기업재생에너지재단 제공
“가입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는 불만도 듣고 있는데, 이건 의무가 아니다.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시장과 정부 정책에 시그널(신호)를 주기 위한 것이다.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큰 기업들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진우삼(62) 기업재생에너지재단 상임이사 겸 한국RE100위원회 위원장은 21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RE100’ 추진의 의미로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각 영역 선두권 기업들이 앞장 서서 우리나라 전기의 탈탄소화를 규모 있게, 속도감 있게 추진하자는 것”이라며 ”많은 기업들을 회원으로 가입시키는 걸 목표로 하지 않고, 글로벌 수준의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다”고 말했다. RE100은 대선 후보 토론 과정에서 한 차례 화제를 일으키며 일반에도 어지간히 알려졌듯, ‘2050년까지 기업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겠다’는 자발적인 약속이다.
기업재생에너지재단은 ‘글로벌 RE100’ 캠페인을 주관하고 있는 영국 비영리 환경단체 ‘더 클라이밋 그룹’(TCG)의 한국 쪽 파트너이다. 국내 기업의 글로벌 RE100 가입은 기업재생에너지재단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재단은 서울 종로구 통인동에 사무국을 두고 있으며, 여기서 가입 업무를 실무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재단 내부에는 RE100위원회가 있다. 이는 전문가 25명의 위원으로 꾸려진 연구·정책 기구이며, 진 이사가 위원장을 맡고 있다. 진 위원장은 한국지역난방공사 성장동력처장·세종지사장, 가천대 전기공학과 초빙 교수를 거쳤다.
진우삼(오른쪽) 한국RE100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2019년 12월3일(현지시각) 영국 런던에서 한국신재생에너지학회 회장 자격으로 더 클라밋 그룹(TCG)의 헬렌 클라크선(왼쪽) 최고경영자와 ‘RE100 파트너십’ 체결 서명을 하고 있다. 기업재생에너지재단 제공
진 위원장은 “RE100을 선언하고 이행하는 것은 기업이 자기 비용으로 재생에너지 전기를 구매하는 것이므로 결과적으로 일반 전기 소비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의미도 크다”고 말했다. 기업들로선 싼 전기를 두고 상대적으로 비싼 전기를 사주는 것이어서 일반 소비자들의 기후환경요금 부담은 그만큼 줄어든다는 설명이다. 이는 산업계가 그동안 전기요금 적용에서 혜택을 받았다는 부채감을 더는 것일 뿐 아니라 탈탄소 흐름에서 기업의 장기적 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짚었다.
―기업 자체적으로 RE100을 추진한다고 밝히는 사례도 많다. 글로벌 RE100에 정식 가입하는 것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RE100은 더 클라이밋 그룹이 비영리 기구인 ‘카본 디스클로져 프로젝트’(CDP)와 협력해 2014년에 런칭(출시)한 하나의 브랜드이다. 양쪽이 협력해 회원 가입, 관리 업무를 하고 있다. 한국에선 기업재생에너지재단과 사회책임투자포럼이 파트너로서 그 업무를 대행하고 있다.” 더 클라이밋 그룹과 파트너십을 맺은 주체가 본래는 한국신재생에너지학회였는데, 기업들의 RE100을 본격 지원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재단을 설립해 업무를 이관했다고 한다.
“기업 자체적인 RE100 선언을 막을 수는 없으나 RE100은 브랜드이기 때문에 문제의 소지가 있다. 한국에서 유독 이런 일이 잦아 브랜드 소유자인 더 클라이밋 그룹이 한국에서 브랜드 레퓨테이션(명성) 관리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가입 신청 때 배제 사유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자제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글로벌 RE100에 가입한 국내 기업은 현재 15곳이다. 에스케이(SK)하이닉스를 비롯한 에스케이그룹 계열 6개사가 2020년 12월 처음 이름을 올렸고, 인천공항이 지난달 25일 가입 대열에 들었다. 인천공항은 2040년까지 공항 운영에 필요한 전력을 모두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기로 했다. 인천공항의 RE100 가입은 국내 열다섯 번째 회원사이고, 공항 중에선 영국 히드로·게트윅공항에 이어 전세계 세 번째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글로벌 기업도 참여해 전세계적으로는 가입 업체가 350여개에 이른다.
―글로벌 RE100 가입 절차는 어떻게 되는가?
“가입 신청을 하면 재단 사무국에서 기준에 적합한지 먼저 검토를 한 후 적격성이 확인된 경우에만 신청서를 받는다. 이어 가입 신청서를 더 클라이밋 그룹 쪽으로 보내 적격성 심사를 통과하면 한국과 런던에서 동시에 선언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신청에서 가입까지는 대개 4~5개월가량 걸린다.”
가입 자격을 따지는 큰 줄기는 기업의 영향력이며, 영향력의 판단 기준은 볼륨(규모)이라고 한다. 기업 자체적인 전기 사용량이 연간 100GWh 이상에 이르거나 <포춘>지 선정 글로벌 1천대 기업 안에 드는 경우 또는 해당 영역서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갖춘 기업을 주요 대상으로 삼는다. 국내에선 이 규모 요건에 맞는 기업이 대략 300~400개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진 위원장은 밝혔다. 여기서 “화석 에너지, 석탄발전, 석탄광산, 정유업에 투자하는 기업들을 배제하고 적극적인 가입 의지를 가진 기업만 대상으로 하면 국내에선 50개사 정도가 적정한 회원 규모로 파악된다”는 설명이다.
진 위원장은 “국내 기업들의 복잡한 지배구조 때문에 가입이 어려운 문제를 풀기 위해 더 클라이밋 그룹과 협의해 국내 기업용 가입 기준을 별도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원래 그룹 단위로 가입하는 걸 원칙으로 하던 것을 한국 기업들은 개별 기업 단위로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또 국내 재생에너지 공급 사정을 고려해 2030년까지 60%, 2040년까지 90%로 돼 있는 중간목표는 면제할 수 있도록 했다고 진 위원장은 덧붙였다.
―가입 기업에는 어떤 혜택이 있는가?
“순전히 자기 리더십을 보여주는 거다. 제재나 이런 것 없이 스스로 목표에 도달하겠다는 약속이다. 350개 기업이 함께 모여서 신뢰를 바탕으로 가치 사슬을 만들고 탈탄소 여정을 함께 하며 서로를 인정한다는 의미라고 보면 된다. 최종 가입으로 결정되면 ‘RE 세계 100’ 홈페이지(www.there100.org) 리스트에 정식으로 올라 RE100 로고를 사용할 수 있다.”
―약속 이행 여부를 매년 점검하는가?
“(더 클라이밋그룹 파트너인) 시디피에서 매년 이행 상황을 검증한다. 국내 기업에 대한 검증은 올해부터 이뤄질 예정이다. 점검 결과에 따른 별도의 페널티(제재)는 없다. 기업 스스로 로드맵에 따라 진행해 나가는 방식이다. RE100 약속을 ‘그린 워싱’(허위·과장의 친환경 이미지 만들기) 수단으로 활용하면 회원에서 탈퇴시킬 수 있는데, 아직 그런 사례는 없다. 세계적으로 RE100 기업들이 애초 약속한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약속 이행을) 추진하고 있다. 전체 회원사들의 목표 달성 연도 평균이 2030년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61개 기업은 이미 재생에너지 100% 목표를 달성했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