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29일 토사 붕괴 사고로 노동자 3명이 숨진 경기 양주시 삼표산업 채석장에서 고용노동부와 경찰이 현장 감식을 하고 있다. 양주/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1월29일 경기도 양주의 삼표산업 채석장에서 석재 발파를 위해 구멍을 뚫던 중 토사가 붕괴해 노동자 3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한달여 뒤 현대제철에서는 2건의 인명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지난 2일 당진제철소에서 노동자 1명이 아연을 녹이는 대형 용기에 추락해 숨졌고, 사흘 뒤에는 예산공장에서 노동자 1명이 철골 구조물에 깔려 숨졌다. 이 사고들은 앞서 1월27일 발효된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을 받는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인명사고가 발생한 일터의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한 법이다. 안전관리 책임이 어디까지 인정되느냐에 따라 최고경영자와 소유주(오너)까지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재계가 이 사건들의 처리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현대제철과 삼표산업은 각각 안동일 대표이사와 이종신 대표이사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상태다. 현장 사고책임자만 처벌해 ‘꼬리 자르기’라는 비난을 샀던 과거에 비해 수사 대상이 ‘윗선’으로 확대되긴 했지만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표산업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지만 기업총수(오너) 일가가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다. 삼표산업의 지분 98.25%를 지주사인 ㈜삼표가 가지고 있고, 정도원 그룹 회장과 아들 정대현 사장이 ㈜삼표 지분을 각각 65.99%, 11.34% 보유하고 있다. 지주사는 자회사의 사업 활동을 지배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회사다. 따라서 정 회장 부자는 삼표산업의 경영에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고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봐야 한다.
대검찰청이 최근 펴낸 중대재해처벌법 벌칙해설서는 소유주 처벌 가능성을 활짝 열어놨다. 검찰은 “기업집단의 총수 등이 ‘경영책임자 등’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석되더라도 개별 사안에 따라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해당 경영책임자 등에게 문제된 특정 업무 집행을 지시한 사실 등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공범 관계가 문제될 여지도 있다”고 해석했다. 이 해석에 따르면 소유주 처벌 가능성은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경영책임자로 인정될 경우다. 여기서 경영책임자는 형식적이 아닌 ‘실질적’으로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사람이다. 계열사의 대표이사는 당연히 포함되고, 계열사 대표이사에게 회사 경영과 관련해 지시를 내리는 소유주도 포함된다. 지주사-자회사 관계인 삼표의 경우 정도원 회장은 당연히 경영책임자로 해석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정 회장이 입건되지 않은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경로는 소유주가 경영책임자의 공범으로 처벌되는 경우다. 검찰은 대법원 판례(2018도13792)를 들어 공범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봤다. 대법원은 “신분관계가 없는 사람에게 공동가공의 의사와 이에 기초한 기능적 행위지배를 통한 범죄의 실행이라는 주관적·객관적 요건이 충족되면 신분범의 공동정범으로 처벌한다”고 판결했다. 가령 뇌물죄는 공무원에게만 적용되는데(신분범), 공무원한테 뇌물을 준 기업인은 공무원 신분은 아니지만 뇌물죄의 공범으로 처벌할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오너가 경영책임자라 볼 수 없더라도 계열사 대표이사 등에게 “문제된 특정 업무 집행을 지시한 사실 등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공범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한 것이다.
검찰의 유권해석에 따르면 현대제철 소유주인 정몽구 회장은 공범으로 볼 여지가 있다. 지난 2일 당진제철소 사고로 숨진 노동자는 현대제철 소속(별정직)이다. 따라서 경영책임자인 안동일 대표이사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것이다. 정 회장은 현대제철 지분 11.81%를 보유한 지배주주이긴 하지만 경영책임자로 보긴 어렵다. 지분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해서 ‘실질적’ 대표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관건은 정 회장이 특정 업무를 지시한 사실이 있느냐 여부다. 그런데 정 회장은 과거 현대제철 사업장에 대해 안전 대책을 강화하라는 지시를 내린 적이 있다. 정 회장은 2014년 당시 현대제철 사업장에서 산재가 잇따르자 당진제철소를 불시에 방문해 “중대재해 사고가 재발하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중 문책할 것”이라며 “안전 예산과 전담 인력을 대폭 확대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현대제철은 안전 예산을 1200억원에서 5000억원으로 대폭 늘렸다. 이는 정 회장이 실질적 대표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민주노총 법률원장을 지낸 권영국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는 “결국 오너의 처벌은 수사기관의 입증 여부에 달려 있다. 입증만 제대로 되면 재판에서도 인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물론 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고의로’ 위반했을 때만 처벌된다. 고의성이 없다면 당연히 처벌 대상이 아니다.
중대재해처벌법 도입으로 대표이사와 소유주의 처벌 가능성이 높아진 것을 두고 재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지난해 12월16일 발표한 ‘산업안전 관련 사업주 처벌 국제비교·시사점’이라는 자료에서 “안전사고로 최고경영자를 처벌하는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고 주장했다. 전승태 경총 산업안전팀장은 “오너가 관리해야 하는 계열사가 한두곳이 아닌데 산재가 일어날 때마다 수사를 받게 되면 경영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소유주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안전 시설에 많은 투자를 했던 기업들은 앞으로 이런 투자가 위축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재계는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보다 사고 예방에 집중하는 게 중대재해 예방에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안전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징계 등 불이익을 피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대기업 관계자는 “특히 노조원들은 안전규정을 위반해도 징계를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산재를 줄이려면 노조의 각성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광일 한국노총 산업안전본부장은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작업을 빨리 끝내도록 압박을 받기 때문에 안전규정을 제대로 지킬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린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지 않고 노동자들을 탓하는 것은 본질을 한참 벗어난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이춘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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