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가운데)이 28일 오후 충북 보은군에 있는 반도체용 특수가스 업체 티이엠시(TEMC) 현장을 방문해 회사 쪽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산업부 제공
네온, 크립톤, 제논(크세논).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뒤 불거진 원자재 수급 불안감 속에서 자주 거론된 품목들이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공정에 필수적으로 쓰이는 희귀가스로, 한국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대표적인 원자재로 꼽힌다.
네온은 반도체 제조 공정 중 ‘노광’에, 크립톤과 제논은 ‘식각’에 주로 쓰인다고 한다. 노광 공정은 반도체 회로기판(웨이퍼)에 빛을 이용해 패턴을 그려 넣는 작업이며, 식각 공정은 회로 패턴을 제외한 다른 나머지 부분을 제거하는 과정을 말한다. 이들 가스는 모두 제철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로, 대개는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크루드’(원료) 상태로 들여와 국내에서 분리·정제·가공 과정을 거쳐 반도체 회사에 납품돼 쓰인다.
28일 산업통상자원부 자료에서 2021년 기준 이들 희귀가스별 한국의 수입액 중 두 나라의 비중을 보면, 네온 28%(우크라이나 23%·러시아 5%), 크립톤 48%(우 31%·러 17%), 제논 49%(우 18%·러 31%)에 이른다. 두 나라 간 전쟁으로 이들 품목을 조달하는 길이 막힐 경우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상당한 곤란을 겪을 수 있다는 분석을 낳는 배경이다.
산업부는 “러시아-우크라이나발 리스크가 대두된 시점부터, 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원자재 품목들의 공급망 및 수급 상황을 집중 모니터링해왔다”고 밝혔다. 문승욱 산업부 장관이 이날 충북 보은에 있는 특수 가스 전문 소재 기업 티이엠시(TEMC)를 방문해 수급 동향을 점검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티이엠시는 네온·크립톤·제논을 정제·가공해 반도체 소자 업체에 공급하는 기업이다.
희귀가스인 ‘네온’ 분리 및 극저온 정제 시설. TEMC 누리집 갈무리
문 장관은 “그간 업계 동향을 점검한 결과, 러-우크라 사태가 네온 등 희귀가스 수급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제한적인 상황”이라며 “(관련) 기업들은 해당 가스의 재고 비축량을 평소의 3~4배로 확대하는 한편, 대체 공급선의 활용 등 추후 사태 진전에 대한 대비책도 검토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원양 티이엠시 대표는 “올해 초 네온 가스의 국산화 설비·기술 개발에 성공했으며, 하반기부터는 국산 네온 가스를 반도체 소자 업체에 본격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코와 티이엠시는 올해 1월 포스코 광양제철소 산소공장 내 공기분리 장치를 활용해 네온 가스를 추출하는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고 산업부는 전했다. 포스코는 올해 하반기부터 국내산 네온 가스를 본격 활용해 국내 수요의 약 16%가량을 충족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유원양 대표는 “정부의 연구·개발(R&D) 지원에 따라 포스코와 함께 크립톤·제논 가스의 국산화 기술 개발도 아울러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국내에선 네온을 비롯한 희귀가스 개발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터였다고 산업부 관계자는 전했다.
희귀가스인 ‘크립톤’ 및 ‘제논’ 분리 및 극저온 정제 시설. TEMC 누리집 갈무리
문승욱 장관은 “각종 리스크에도 안정적이고 회복력 있는 공급망 구축을 위해서는 핵심소재의 국산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업계의 기술 개발 노력을 적극 지원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소재·부품의 해외의존도 완화 및 안정성 확보를 위해 올해 중 소재·부품 개발에 8410억원, 전략 핵심소재 자립화에 1842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김영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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