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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1700만 베이비부머, 도시를 떠나 농촌을 살린다

등록 2022-02-07 06:59수정 2022-02-07 09:20

민주지산 속 오지 ‘영동 도마령마을’
60대 중심 귀촌으로 9→42가구
전원생활 로망 구현 “스트레스 끝”

마을 생기 되찾고 주민 단합도 이뤄
산촌축제·마을기업 등 아이디어 분출
“베이비부머가 농촌문제 해법” 주목

도시민 485만 “5년 내 귀촌 준비”
‘귀농’ 특성 살린 맞춤정책 아쉬워
의료·문화·교육 획기적 지원 필요
지난 1월26일 오후 충북 영동군 상촌면 둔전리 도마령마을의 주민인 임종덕 전 이장, 이미선 부녀회장, 윤여생 현 이장이 마을기업에서 공동운영하는 카페 ‘아! 도마령’ 앞에 섰다. 카페의 뒤로 1242m 높이의 민주지산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펼쳐져 있다. 도마령마을은 전체 42가구 중 귀농귀촌인이 37가구이고, 그 대부분이 60대 이상인 베이비부머 정착촌이다. 영동/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 1월26일 오후 충북 영동군 상촌면 둔전리 도마령마을의 주민인 임종덕 전 이장, 이미선 부녀회장, 윤여생 현 이장이 마을기업에서 공동운영하는 카페 ‘아! 도마령’ 앞에 섰다. 카페의 뒤로 1242m 높이의 민주지산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펼쳐져 있다. 도마령마을은 전체 42가구 중 귀농귀촌인이 37가구이고, 그 대부분이 60대 이상인 베이비부머 정착촌이다. 영동/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첫눈에 반했어요!”

충북 영동군 상촌면 둔전리의 귀농귀촌 새내기 홍애란(64)씨가 도마령마을을 제2의 인생 출발지로 선택한 이유는 단순 명료했다. 이 마을을 처음 찾은 것은 3년 전이다. 이후 거주지인 청주와 이곳을 부지런히 오가다가, 지난 1월 초 남편과 강아지 두 마리를 데리고 아예 정착했다.

도시에 거주하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본격적인 은퇴기를 맞으면서 귀향귀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광의의 베이비부머는 1차(1955~1964년생) 780만명, 2차(1968~1974년생) 623만명, 이들 사이에 출생한 248만명을 모두 합쳐 1700만명에 육박한다. 전체 국민의 3분의 1에 이르는 거대한 인구집단이다.

<한겨레>가 설 연휴 직전인 지난달 26일 방문한 도마령마을은 대표적인 베이비부머 정착촌이다. 전체 42가구 중 귀농귀촌인이 37가구인데, 대부분 60대 이상이다. 부산에 살다가 10년 전 옮겨온 윤여생(59) 이장은 “63년생인데, 마을에서 두번째로 어리다”며 웃음 지었다.

마을의 위치는 충북(영동)·전북(무주)·경북(김천)의 3도 경계지로, 높이 1242m인 민주지산의 중턱이다. 산의 초입인 영동군 용화면 사무소에서 구불구불한 산길 포장도로를 따라 차로 20분이나 올라가야 닿는 오지다. 귀농귀촌 가구 중에서 이 마을 출신은 하나뿐이다. 나머지는 서울·부산·포항·청주 등 도시에서 살다가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으로 옮겨왔다. 삭막한 도시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자연 속의 전원생활을 즐기고 싶은 로망 때문이다. 민주지산은 봄에는 철쭉이 만발하고, 여름에는 원시림과 계곡이 일품이며, 가을에는 단풍으로 불타고, 겨울에는 설경이 장관이어서 사시사철 많은 등산객의 사랑을 받는다.

베이비부머들은 귀향귀촌 이후 마음이 자유로워지고, 스트레스를 안 받게 됐으며, 건강이 좋아졌다고 함박웃음을 짓는다. 귀농귀촌 6년차인 이미선(58) 부녀회장은 “포항에서 교사로 있을 때 이곳을 찾았는데, 가을 단풍이 너무 아름다웠다”며 “아직 현직에 있는 남편은 주말마다 와서 힐링한다”고 말했다. 취미로 꽃차를 만드는 홍애란씨는 “집 주변이 온통 야생화”라며 “꽃차를 준비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밝은 표정을 지었다.

지난 1월 초 충북 영동군 상촌면 둔전리 도마령마을로 귀농귀촌한 전상윤(왼쪽), 홍애란씨 부부가 1월26일 오후 집 앞에서 반려견들을 안고 있다. 영동/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 1월 초 충북 영동군 상촌면 둔전리 도마령마을로 귀농귀촌한 전상윤(왼쪽), 홍애란씨 부부가 1월26일 오후 집 앞에서 반려견들을 안고 있다. 영동/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주민 감소로 어려움을 겪던 도마령마을은 다시 생기를 찾고 있다. 토박이인 임종덕(63)씨는 “30~40가구에 달하던 마을이 9가구까지 줄었는데 귀농귀촌으로 큰 변화를 맞았다”며 “희망자가 더 있어서 70명인 주민 수가 3~4년 안에 100명까지 늘 것 같다”고 말했다.

도마령마을은 토박이와 귀농귀촌 주민이 사이좋게 지내는 모범마을로 꼽힌다. 임종덕씨는 30년간 맡았던 이장 자리를 4년 전 윤여생 현 이장에게 넘겼다. 그는 “마을 발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보고 낙후된 고향을 조금이라도 발전시키려면 젊은 사람이 낫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도마령마을은 주민들의 단합을 토대로 마을 발전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2015년부터 매년 8월 둘째 주 토요일에 도마령산촌문화축제를 연다. 가수, 연주자, 합창단 등을 초청해 공연을 벌이는데, 많을 때는 600여명이 찾을 정도로 입소문이 났다. 코로나 사태로 2년간 중단했는데, 올해는 꼭 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주민들의 공동출자에 정부 지원을 얹어서 ‘마을기업’도 세웠다. 한과와 호두기름 같은 농산물 판매사업을 하고, 마을카페 ‘아! 도마령’도 문을 열었다.

코로나 사태로 마스크 대란이 발생하자 마을에서 마스크를 만들어 지역사회에 나눠 줬다. 이 밖에도 매년 4월 개최하는 벚꽃축제, 각계 유명인사의 초청강연을 듣는 ‘인문학 교실’, 천연비누와 향수를 제작하는 영농 신활력사업, 독거노인에게 식사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부녀회 등 마을 살리기를 위한 노력은 끝이 없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이런 노력을 인정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마을문화공간 건립을 지원하기로 했다. 영동군도 ‘도마령마을 살아보기 체험 프로그램’에 필요한 6평 규모의 임시주택(농막)을 제공하기로 했다.

농촌은 급격한 인구 감소로 소멸위기를 맞고 있다. 반면 서울 등 대도시는 인구 집중으로 일자리 부족, 집값 상승, 교통 혼잡이 심해지며 삶의 질이 떨어지고, 사회문제도 심각하다. 도시에 사는 베이비부머의 귀농귀촌에서 농촌과 도시를 모두 살리고, 국토 균형발전도 이루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베이비부머의 맏형 격인 1955년생은 이미 2020년 고령인구(65살 이상)로 진입했다. 막내 격인 1974년생까지 앞으로 20년 동안 연평균 82만5천명씩 고령인구가 늘어난다. 농촌경제연구원의 조사 결과를 보면 19살 이상 도시민 중에서 5년 이내 농산어촌에서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실천하기 위해 준비 중인 사람은 485만5천명으로 추정됐다. 이 중에서 50대 이상은 266만7천명으로 55%를 차지한다. 1960~70년대 농촌을 떠나 도시로 향했던 ‘이촌향도’와 정반대 흐름을 만들 토대가 있는 셈이다.

자료: 통계청(2022년 기준)
자료: 통계청(2022년 기준)

자료: 농촌경제연구원(2019년)
자료: 농촌경제연구원(2019년)

주민들의 자발적인 노력과 정부·지자체 등의 지원이 곁들여지면서 귀농귀촌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전남 구례군의 경우 2013년 1월부터 2021년 9월까지 8년9개월 동안 4001명(2981가구)이 귀농귀촌했다. 구례 농업기술센터의 김안란 주무관은 “귀농사관학교로 불리는 체류형 농업창업지원센터를 통한 체계적인 정착 지원과 월 10만원에 빈집을 빌려주는 구례정착보금자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주효했다”고 소개했다. 군 인구가 2018년부터 감소세로 바뀐 것은 아쉽지만, 2013~2017년에는 5년 연속 증가했다.

귀농귀촌 인구는 매년 50만명 안팎에 달한다. 하지만 실제 농사를 짓는 ‘귀농’은 2~3%에 그치고, 대부분은 전원생활을 즐기려는 ‘귀촌’이다. 귀농과 귀촌은 필요한 지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 또 자녀를 동반한 청년세대와 부부 중심의 베이비부머도 차이가 크다. 베이비부머들은 귀농보다 귀촌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도마령마을의 베이비부머도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작은 텃밭을 가꾸면서, 연금과 기존 재산으로 생활한다. 윤여생 이장은 “나이 들어 농사를 짓는 것은 힘들다”며 “정부와 지자체 지원이 도움 되지만, 농사가 주업이 아닌 귀촌자와는 좀 거리가 있다”고 아쉬워했다.

지자체의 지원 정책은 농촌 살아보기 체험, 빈집 임대, 주택 수리·신축 지원, 농사 교육, 영농자재 공급, 농업창업 융자 등 비슷하다. 또 상대적으로 귀농과 청년세대 중심으로 짜여 있다. 지역과 수요자의 특성을 파악하고 귀농형과 귀촌형, 청년세대형과 베이비부머형으로 세분한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많다.

강원도 홍천군은 베이비부머 등 은퇴자가 전원생활을 편하게 할 수 있는 지원시스템 구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16년 전국 처음으로 귀농귀촌 특구를 지정하고 전원도시 정주기반 조성 등을 통해 4년간 1만2천명의 귀농귀촌을 유입함으로써 인구 감소를 완화시키고 있다.

주말농장을 만들어 평일 닷새는 도시에서 일하고 주말 이틀은 시골에서 보내는 ‘5도2촌형’ 귀농귀촌도 꾸준히 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송미령 박사는 “인구가 줄어드는 농촌의 저가주택에 대해서는 2주택자 적용을 제외해 종합부동산세·취득세 감면 혜택을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장시혁 영동군 농촌정책팀장은 “20년 동안 귀농귀촌 지원을 하고 있지만 아직 농촌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며 “인구 유출을 막고 적정 인구를 유지하려면 부족한 의료·문화·교육 인프라에 대한 국가 지원부터 파격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jskwak@hani.co.kr

&lt;베이비부머가 떠나야 모두가 산다&gt;의 저자인 마강래 중앙대학교 교수가 1월20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베이비부머가 떠나야 모두가 산다>의 저자인 마강래 중앙대학교 교수가 1월20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베이비부머 100만명 귀촌하면 2년 내 집값 안정”

‘베이비부머 떠나야 …’ 쓴 마강래 중앙대 교수

“베이비부머의 은퇴와 산업구조 변화라는 두 개의 ‘메가트렌드’로 인한 사회 충격과 갈등을 해결하려면 베이비부머의 귀농귀촌이 필요합니다.”

마강래 중앙대 교수는 지난달 20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베이비부머가 대도시를 떠나 농촌에서 인생 이모작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정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마 교수는 <베이비부머가 떠나야 모두가 산다>의 저자다.

―도시계획을 전공했는데, 베이비부머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미래 공간구조 변화를 촉진하는 메가트렌드 때문이다. 인구 측면에서 저출산·고령화의 영향이 크지만, 1955년생부터 1974년생까지 약 1700만명에 달하는 베이비부머의 은퇴 문제도 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자산도 많고, 소비력도 높지만 은퇴 이후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연금도 충분하지 않다. 특단의 조처가 없으면 청년층의 부담이 커져 세대 간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

―최근 펴낸 <부동산, 누구에게나 공평한 불행>에서는 산업구조 변화에 주목했다.

“1990년대 탈공업화로 수도권 쏠림이 완화됐는데, 2012~2013년 이후 4차 산업혁명으로 다시 대도시 지향성이 강해졌다.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가 대도시, 수도권, 서울 중심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두 가지 메가트렌드의 결합이 미칠 영향은?

“베이비부머는 공업화 과정에서 ‘이촌향도’를 주도했는데, 은퇴 이후에도 대도시를 떠나는 게 쉽지 않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점점 대도시로 이동한다. 결국 모든 세대가 대도시로 집중되어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를 만들게 된다. 집값 폭등, 출산율 하락, 지방인구 유출은 이런 공간적 쏠림 현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베이비부머의 귀농귀촌을 통한 청년층과의 ‘공간적 분업 전략’을 제시했는데.

“베이비부머는 은퇴 이후 도시에 남아도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 하지만 귀농귀촌을 하면 인생 이모작의 기회가 열린다. 청년층과의 갈등 구조도 완화할 수 있다.”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베이비부머가 많은데, 대규모 이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일자리, 병원, 사회적 관계 등 세 가지 요인이 가로막고 있다. 부부의 은퇴 이후 적정 생활비는 월 270만원인데, 이를 충족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으로 내려가면 향후 20~30년간의 생활을 예측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또 정기적인 건강체크가 필요한데 지방에서는 여의치 않다. 사회적 네트워크가 끊길 것이라는 걱정도 있다.”

―어떤 정책이 필요한가?

“지역 활성화를 위해서는 베이비부머의 귀농귀촌 정책을 먼저 추진해야 한다. 그다음에 장기적으로 청년층 유입 정책을 써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청년층 유입에 더 역점을 두고 있다.”

―귀농귀촌 정책에서 베이비부머와 청년층이 다른 점은?

“베이비부머는 농사 기술이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귀농보다 귀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베이비부머와 농촌, 중소기업을 연결하는 ‘3자 연합 모델’을 제안했는데.

“3자를 결합하면 엄청난 시너지가 발생할 수 있다. 베이비부머가 지방 중소기업에서 주 2~3일 일하면, 부족한 생활비를 보충할 수 있다. 중소기업은 만성적인 인력난을 해결하고, 농촌도 살 수 있다.”

―베이비부머가 얼마나 귀농귀촌을 할 수 있다고 보나?

“시골에서 수도권으로 올라온 1·2차 베이비부머가 440만명 정도다. 이들 중에서 10%만 움직여도 44만명이다. 서울 출생자 중에도 귀농귀촌을 원하는 사람이 많다. 여기에 (‘5도2촌’ 생활자와 같은) 관계인구까지 포함해서 100만명 정도를 타깃으로 삼을 수 있다.”

―100만명이 빠져나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집값 안정이다. 베이비부머는 주택 보유율이 높다. 100만명이 지방으로 내려가면 엄청난 임대용 주택이 쏟아진다. 새 아파트를 공급하려면 4~5년 걸리지만, 베이비부머가 이동하면 빠르면 2년 내 60만~70만호가 나온다.”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녹취 김슬아 보조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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