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막는 10분 통화’ 아이디어로 대한상의 ‘2021년 국가발전 프로젝트’ 결선에서 1위를 차지한 이봉주씨(가운데). 회사 동료로 아이디어 개발에 같이 참여한 박근창(왼쪽), 안윤궐씨. 이봉주씨 제공
짐작과 달리 개인사와 직접 얽혀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회사 동료 2명과 함께 업무 외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며 같이 고민하던 중” 치매 증상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한 게 뜻밖의 성과로 이어졌다고 했다.
“30대 중반~40대 초반인 우리가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 겪을 어려움이 어떤 게 있을지 얘기를 해봤다. 투자 실패, 자식 문제, 실직 같은 게 떠올랐는데, 그중 가장 막막하고 어떻게 할지 모를 일이 부모님 치매 문제 아니겠나 싶었다. 부모님 중 누구도 아직 치매를 앓고 있지는 않다.”
이봉주씨는 5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아이디어 개발에 같이 참여한 회사 동료 둘은 다른 프로젝트 추진 때 만나 마음이 잘 맞았던 이들”이라며 “치매 관련 아이디어를 마련하고 있던 참에 대한상의 사업 공모전 공고(지난해 6월)를 보고 응했다”고 말했다. 그 공모전이 없었다면 아이디어는 캠페인을 벌이자는 수준에 그쳤을 것이라고 했다.
이씨를 비롯한 3명은 지난 2일 대한상의 ‘2021년 국가발전 프로젝트’ 결선에서 ‘사소한 통화’로 상금 1억원을 받는 1위 자리에 올랐다. 부모님께 안부 전화 겸 영상 통화를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한국형 간이 정신상태 검사’(K-MMSE)를 해볼 수 있는 이른바 ‘치매 막는 10분 통화’이다. 이들 셋은 글로벌 종합상사에서 일하고 있다. 회사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다.
“치매에는 마땅한 치료제가 없지만, 조기에 발견하면 진행 속도는 늦출 수 있고 마지막 단계에서 (본인이나 가족 모두) 힘이 덜 들 수 있다. 그런데도 막연히 두렵고 불안해 미리 진단을 받지 않고 증상이 심해진 후 (병원에) 가는 수가 많다. 핵심은 조기 발견이고, 이를 위해 접근성을 높일 방안을 찾아보자고 생각했다.”
현행 치매 진단검사는 대개 병원에서 의사의 질문에 답변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부모나 자식 어느 쪽에서도 예방 차원에서 미리 진단을 받는 걸 꺼리는 수가 많다. ‘치매 국가 책임제’에 따라 시·군·구에 설치된 ‘치매 안심센터’에서 개발한 별도 애플리케이션(앱)이 있지만, 이 또한 접근성이 떨어진다. 부모 세대가 직접 이용하기 어렵고, 자식 처지에선 검사를 선뜻 제안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치매 막는 10분 통화’ 시연 장면. 대한상의 제공
’사소한 통화’는 이런 문제를 푸는 쪽으로 설계한 아이디어다. 멀리 떨어져 있는 부모와 1~2주에 한번 안부 전화하는 것을 치매 검사로 연결하는 방안이다. 부모, 자식 양쪽의 휴대폰에 미리 깔아놓은 앱을 통해 안부를 묻고 답을 하면 자연스럽게 데이터가 축적돼 검사로 이어지는 방식이다. 전화를 건 자녀 쪽 휴대폰에는 안부를 겸한 질문 문항이 뜬다. 부모 쪽에선 보통의 영상 통화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아직은 아이디어 단계로 앱이 개발돼 있지는 않고, 알고리즘 얼개만 마련돼 있다.
통상적인 치매 진단검사와 달리 질문 내용을 개인화한 것도 뚜렷한 특징 중 하나다. 정형화된 문항이나 딱딱한 시험 형식을 피하고 질문 버전(양식)을 여러 갈래로 구성해 부모의 성향을 고려할 수 있게 했다. 예를 들어 트로트를 좋아하는 부모님껜 “엄마! 임영웅 취미가 뭐죠?” 같은 질문을 던지는 식이다.
이봉주씨는 “서울대병원 의사들을 만나 질문 항목을 이렇게 베리에이션(변주) 해도 신뢰성이 있다는 판단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7월 (공모전에) 지원해 이후 디벨롭(진전)을 많이 시켰다”며 “예선 통과 뒤 심사위원들의 지적과 의견을 반영해 약점을 보강했다”고 덧붙였다.
치매 여부를 진단하는 것 외에 예방 효과 기능을 아울러 담고 있다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가족사진을 올려 같이 보면서 “이때 어디 갔었죠?“ “누구랑 같이 갔었는지 기억나요?” 같은 질문을 해 회상 훈련을 하도록 설계했다. 좋았던 옛 감정을 회상하는 게 치매를 막는 데 매우 효과적이며, 회상 훈련에 더없이 좋은 콘텐츠는 가족사진이라고 한다. 치매 방지 시스템이라는 데서 생겨날 수 있는 거부감을 줄이는 방안이기도 하다.
대한상의는 ‘사소한 통화’를 비롯한 상위 6개 아이디어의 사업화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업 공모전 행사 한 번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국가발전으로 이어지도록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뜻이다. 상의는 상시로 아이디어가 생성되고, 발전되고, 사업화되는 ‘아이디어뱅크’ 설립을 논의 중이며, 이를 위한 추진 조직에도 변화를 꾀할 예정이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