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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해넘긴 수출규제 숙제…마지막 핵심소재는 ‘개발 중’

등록 2022-01-01 10:40수정 2022-01-01 11:33

[한겨레S] 김영배의 경제 들여다보기
해넘긴 ‘EUV 포토레지스트’ 국산화
극자외선용 포토레지스트는 일본의 수출규제 핵심 3대 품목 중 유일하게 국산화에 이르지 못한 품목이다. 이를 개발하는 회사인 동진쎄미켐의 한 직원이 실험 재료를 들여다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극자외선용 포토레지스트는 일본의 수출규제 핵심 3대 품목 중 유일하게 국산화에 이르지 못한 품목이다. 이를 개발하는 회사인 동진쎄미켐의 한 직원이 실험 재료를 들여다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동진쎄미켐이라는 회사의 발안 공장(경기도 화성시)을 방문한 건 지난 6월22일이었다. 일본이 2019년 7월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 조처를 내린 지 2년을 앞둔 때였다. 동진쎄미켐은 포토레지스트 제조사로는 국내 대표 격으로 꼽힌다.

포토레지스트(감광액) 중 최고급 단계인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는 일본의 수출규제 핵심 3대 품목 중 유일하게 국산화에 이르지 못한 상태였다. 지금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나머지 2개 품목인 ‘고순도 불화수소’(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식각 공정에 필수적인 에칭가스)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폴더블 휴대전화의 모니터 필름 소재)는 수출규제 2년에 이르기 전 일찌감치 국산화 단계에 접어들며 수출규제 파장에 따른 걱정을 떨쳐냈던 것과 사뭇 달랐다. 그만큼 고난도 과제임을 반영하며 일본의 수출규제에 따른 강고한 장벽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3대 수출규제 품목 중 국산화 안된 하나
극자외선용 포토레지스트 개발 막바지
정치 외교 빌미 없이 터진 요소수 사태
소부장 이슈 공급망 긴장감 높아져

반도체 소재 핵심은 ‘아직 개발 중’

공장 방문 당시 김재현 동진쎄미켐 부사장은 “(극자외선 포토레지스트 분야에서도) 소재의 성능 향상에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으며 안정된 품질 확보를 위한 준비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면서도 “(완전한 의미의 국산화로 여길 수 있는) 제품화, 상업화 단계에 이를 시점은 미정”이라고 말을 아꼈다. 성능 개선 노력과 더불어 “어제 만든 것과 오늘 만든 것이 동일한 성능과 품질을 갖는지” 따위를 반복적으로 시험해본 뒤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

그 뒤 6개월가량 시일이 흐른 지금, 진척은 어느 정도나 이뤄졌을까?

김재현 부사장은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아직 ‘퀄’(품질 인증)을 받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고, (품질) 평가 중”이라고 말했다. 김 부사장은 “삼성전자뿐 아니라 에스케이(SK)하이닉스에도 샘플(견본)을 보내 오디트(품질 감사)를 받고 있으며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종 결실을 볼 시점에 대해선 여전히 “확정해 말할 수 없는” 단계라고 했다.

국내 한 언론 매체가 지난 12월 업계 소식통을 인용해 ‘동진쎄미켐이 극자외선 포토레지스트 신뢰성 시험에서 퀄을 받았다’는 식으로 보도한 것을 두고 김 부사장은 “저희 구매 파트나 연구소 쪽에서도 모르는 얘기인데 의아하다”며 사실과 다르다고 확인했다.

‘퀄’은 영어 단어(qualification)의 줄임말로 양산 공정에 사용하는 데 적합한 품질, 성능을 갖춘 것으로 인정받았음을 뜻한다. 통상 반도체 회사에서는 새로운 설비나 부품, 소재를 사용하기 전에 여러 단계의 품질 검사, 제조 공정 실사, 시험 적용 및 평가를 거치는데, 이런 절차를 통과하면 ‘퀄을 받았다’고 한다.

퀄을 받기까지 거치는 과정에선 수요처인 반도체 회사 쪽에서도 상당한 돈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 이 때문에 양산 적용을 목적으로 하며, 단순한 평가를 위해 진행하지는 않는다고 김 부사장은 설명했다. 그는 “제품이 이 단계에 들어갔다는 것(곧 퀄을 받았다는 것)은 목표대로 개발을 완료해 양산 공정에 적용할 수 있을지 검토하는 최종 단계에 와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퀄을 받았다는 것이 상업화, 제품화에 이른 것과 동일하지는 않아도 국산화에 도달했다는 뜻이며 “사실상 양산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일본의 수출규제 뒤 자주 거론되며 일반인들에게도 어지간히 알려져 있듯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 기판(실리콘 웨이퍼)에 회로 밑그림을 그리는 데 쓰이는 물질이다. 반도체 첫 공정의 핵심 소재로 꼽힌다. 빛을 받으면 반응하는 성질을 띠어 판화의 음각, 양각처럼 구분되는 모양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해준다.

포토레지스트는 사용하는 빛의 파장에 따라 불화크립톤(KrF·248㎚), 불화아르곤(ArF·193㎚), 극자외선(13.5㎚)용으로 나뉜다. 많이 알려져 있는 대로 회로 선폭을 뜻하는 숫자가 작을수록 미세 공정에 유리하다. 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라는 뜻이다. 일본에서 규제 대상에 포함시킨 전략물자가 바로 이 극자외선용 포토레지스트였다.

동진쎄미켐은 일본의 수출규제 뒤 정부 예산 지원을 받는 국책 사업을 통해 기존 소재보다 성능을 대폭 높인 불화아르곤용 포토레지스트를 개발하는 데까지 성공했을 뿐 극자외선용 포토레지스트 개발에는 이르지 못했고, 아직도 진행형이다.

동진쎄미켐에 따르면 국내 포토레지스트 시장은 1조4천억~1조5천억원 규모에 이른다. 시장 점유율은 품목마다 달라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불화크립톤용 포토레지스트 시장에선 국산화율이 30~40%에 이른다. 이는 대부분 동진쎄미켐이 차지하고 있다. 불화아르곤용 이상 높은 수준의 포토레지스트 시장에선 동진쎄미켐의 점유율이 10% 남짓으로 파악돼 있다. 일본 업체가 80%가량, 미국 듀폰이 나머지 10%의 시장을 나눠 갖고 있다.

반도체 시장의 거대 규모에 견줘 포토레지스트 시장은 그리 크지 않다고 할 수 있어도 반도체 산업에선 빼놓을 수 없는 핵심으로 꼽히는 영역이다. 시장이 계속 커지고 있다는 점도 있다. 삼성전자, 에스케이하이닉스에서 추진 중인 반도체 설비 증설은 곧 포토레지스트 시장의 확대를 의미한다.

“공급처 찾고, 국내 생산 기반 갖춰야”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 뒤 2년 남짓 동안 한국 쪽의 피해는 애초 우려와 달리 미미했다. 지금은 이 사안을 둘러싼 관심도나 긴장감이 뚝 떨어져 있다고 할 정도다. 한국 정부와 기업의 공동 대응,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 간 연합 전선 전개로 수입처 다변화와 소재 국산화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둔 결과다.

사정이 이렇다면 다변화 또는 내재화 노력의 의미는 반감된 것일까?

잊힌 듯했던 소부장(소재·부품·장비)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일깨운 건 ‘중국발 요소수 사태’였다. 일본의 수출규제보다 훨씬 넓고 근본적인 숙제를 안긴 사안이다. 정치·외교적인 말썽의 빌미 없이도 뜻밖의 영역에서 경제적인 이유로 지뢰가 터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다. 요소수 사태에서 실감한 대로 국민 생활에 끼치는 영향 또한 지대하다.

정석진 산업통상자원부 소재부품장비총괄과장은 “일본 수출규제 뒤 2~3년 큰 문제 없이 잘 넘어왔지만, 국산화율을 높이고 수입처를 다양하게 하는 일은 계속해나가야 한다”며 “(수출규제 3대 핵심 품목을 포함한) 주요 품목들을 대상으로 계속해서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과장은 “소부장뿐 아니라 공급망 전반에 걸쳐 대체 공급처를 찾고, 불가피한 경우 기업들과 협의해 국내에 생산 기반을 갖추는 방안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동진쎄미켐에서 새해 들어 낭보를 전해 온다면 여기에 보태어지는 작지 않은 한 방울일 것 같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

경제부장, 논설위원을 거친 뒤 산업 현장 취재를 맡고 있다. <민스키의 눈으로 본 금융위기의 기원>, <휴버먼의 자본론>, <무엇이 우리를 무능하게 만드는가>, <관료제 유토피아> 등을 번역해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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