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열린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끝난 11월13일 기후운동가들이 글래스고 대성당 네크로폴리스에서 지난 30년의 시오피(COP)가 실패했다는 의미로 장례식을 치르고 있다. 글래스고/AFP 연합뉴스
정부가 ‘2050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며 내년부터 2조5천억원 규모의 ‘기후대응기금’을 신설하기로 했지만 기후대응과 관련성이 떨어지는 사업이나 심지어 기후대응에 역행하는 사업도 기금 집행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기획재정부는 국책연구원을 통해 기후기금 지출사업 선정기준에 대한 연구도 진행했지만 실제 기금에 포함된 지출사업들은 연구 보고서의 권고와는 거리가 멀었다.
■ 부처별 ‘숙원사업’ 포장지 바꿔 끼워 넣기
30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2년도 기후대응기금 사업설명자료’를 보면, 기금 설립 취지와는 거리가 있는 사업들이 다수 들어 있다. 기금 사업 가운데 가장 예산 규모가 큰 ‘탄소중립도시숲조성’(2688억원)은 미세먼지를 줄이고 도시 열섬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도심 곳곳에 숲을 일구는 사업인데, 세부 내용에는 공공시설에 정원을 꾸미는 조경 예산도 440억원 포함됐다. ‘생활밀착형숲’이라고 이름 붙였으나 실제 설명자료를 보면, 시청이나 국립대학·기차역 등 공공시설에 실내·실외·옥상정원을 설치하는 사업에 불과하다. 앞서 춘천시청은 지난해 해당 사업을 통해 청사 내 실내정원을 조성했는데, 값비싼 수입산 이끼를 사용하고 인테리어에만 6억원을 집행해 주민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교도소에 쉼터를 조성하는 예산도 ‘녹색’ 포장지를 입고 기금에 포함됐다. 89억원이 편성된 ‘그린 교정시설 조성’ 사업은 에너지 소비가 큰 교도소에 태양광 발전 설비를 설치해 ‘에너지 자립’을 꾀하려는 취지다. 그런데 이 가운데 21억원은 에너지 절감과 무관하게 교도소에 운동기구를 증설하고 쉼터를 조성하는 예산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사업설명 자료에서 해당 예산의 목적으로 “(교정시설을) 혐오시설에서 지역공생 시설로 탈바꿈”한다고 밝히고 있어 기후대응과의 관련성을 찾기 어려웠다. 사실상 에너지 자립 예산에 교도소 시설 개선 예산을 끼워 넣은 셈이다.
심지어 기후대응에 역행하는 사업도 포함됐다. 지리산·한라산·미시령 등에 친환경 산악열차를 구축하는 예산으로 72억원이 포함됐는데, 실제 사업내용을 들여다보면 ‘친환경 전기 열차’라는 사실을 빼고는 기후대응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게다가 산악열차를 설치하려면 산림 훼손이 불가피한데 이와 관련한 언급은 일체 찾아볼 수 없다. 정부는 이 예산의 기대효과로 “산악지역 접근성 향상”과 “지역관광개발 활성화”, “국내외 산악철도 시장 진출 기여”를 꼽았다.
기후대응과 관련성이 떨어지는 예산이 다수 담긴 반면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예산은 턱없이 부족했다. 정부는 저탄소 사회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소외되는 계층이나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공정한 전환’ 명목으로 1774억원을 편성했다. 이 가운데 446억원(25%)은 사실상의 홍보·교육 예산이었고, 산업 구조전환 과정에서 취약산업과 노동자를 위한 업종·직무전환 지원 예산은 301억원(17%)에 불과했다.
나머지 저소득층 지원을 위한 예산 중에서도 110억원이 편성된 ‘신재생에너지확대기반조성’ 사업은 대부분이 지자체 건물·공공시설 유지와 개·보수에 쓰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복지시설 신재생에너지 설비 보급 예산은 전체 110억원 가운데 14억원에 불과하다. 나머지 87.3%에 이르는 96억원은 지자체가 소유하거나 관리하는 건물에 쓰일 예정이다.
■ 국외 기후기금은 ‘감축’과 ‘적응’에 집중
정부도 기후대응기금의 마땅한 용도를 모르지 않는다. 기재부는 지난 6월 한국조세재정연구원과 함께 기후대응기금 지출사업 선정기준에 대한 연구보고서를 비공개로 발간하기도 했다. 기재부가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에 제출한 ‘기후대응기금 설치방안 연구’ 보고서를 보면, 국외 사례를 바탕으로 △기존 고탄소 산업의 전환 지원 △저탄소 산업 생태계 육성 △전환 과정 속 소외계층 지원 △탄소 중립 연구개발 등 기반 강화 등 지출사업 선정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기후대응기금의 용도를 온실가스·탄소배출 ‘감축’과 각 경제주체들이 기후위기에 대응하도록 돕는 ‘적응’으로 한정한 셈이다. 실제로 보고서가 제시한 국외 기후기금 사례들도 비중의 차이만 있을 뿐 이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장혜영 의원은 “지금의 기후대응기금은 기후대응과 관계없는 각 부처의 숙원사업을 모아 둔 것에 불과하다. 사실상 정부의 그린워싱인 셈”이라며 “기후대응기금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산업의 구조전환과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노동자를 최우선으로 지원하는 데에 사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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