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사회적 금융’이라는 단어를 처음 명기한 건 2018년 2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사회적 금융 활성화 방안’에서다. 중앙정부가 사회적 금융의 필요성을 인정했다는 뜻이다. 3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 어떤 성과가 있었을까.
재단법인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이 출범했고, 현재 30개가 넘는 중개기관들이 시장에서 활동하는 등 도매기금을 만들고 중개기관을 육성하는데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도매기금을 통해 연간 6백억원(5년간 3천억원) 규모의 자금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은 목표치 절반인 3백억 수준에 머물고 있다. 지금까지 중개기관 인증제를 도입해 인증받은 기관에 다양한 사회적 금융 관련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겠다는 계획은 아직도 실행되지 않았다.
사회적 금융 생태계 조성의 핵심 고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던 ‘사회적 경제 기본법’도 국회에서 장기간 표류 중이다. 이 법안은 사회적 금융 제도 정비, 도매기금의 조성 및 용도, 민간 투자 활성화, 중개기관의 지정 및 역할 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금융 생태계 조성에 필요한 입법 의제다. 금융 생태계의 뿌리가 곧 돈인데, 돈이 돌지 않는다면 중개기관이 아무리 늘어도 소용없다. 도리어 한정된 재원을 놓고 경쟁하는 꼴이 될지 모른다. 현존하는 금융 질서는 민간이든 공공이든 외부에서 변화의 계기가 생기지 않으면 절대 스스로 변하지 않는다.
경로 의존성의 물길을 바꾸는 것이 정부와 국회의 역할이다. 입법과 행정의 두 축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진 이들이 낡은 질서를 바꾸기 위한 개혁 입법들을 번번이 좌초하는 모습을 지켜보자니 답답할 뿐이다. 기대와 실망의 반복으로 지쳐있기 때문일까. 직접 이해당사자인 사회적 경제 진영에선 특별한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사회적 경제 기본법이 통과된다고 해도 사회적 금융 생태계가 쉽게 만들어지진 않을 것이다. 내부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들이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 문제가 있다. 현재 사회적 금융 시장은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한 시장이다. 돈을 필요로하는 곳은 많은데 자금은 턱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공급자가 시장을 주도하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도·소매를 막론하고, 중개기관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자금을 균형 있게 제공하면 건강한 생태계가 조성될 것이다. 하지만 특정한 영역으로 자금이 쏠리거나 소외되는 곳들이 생기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보자. 소설벤처와 사회적 협동조합은 각자 나름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다. 하지만 투자 안전성이나 수익성 측면에서 보면 소설벤처가 사회적 협동조합보다 우위에 있다. 만일 중개기관이 수익성에 경도되어 사회적 협동조합에 대한 투자를 주저한다면 사회적 경제 생태계는 망가질 것이다.
중개기관이 수요-공급자의 특성에 맞춰 적절하게 짝을 맞춰(matching) 거래를 성사시키면 자금을 균형있게 공급할 수 있다. 사회적 협동조합들엔 자선 투자자를, 소설벤처엔 시장 투자자를 연결하는 방식을 통해 맞춤형 자금을 제공하고, 중개기관도 수익과 가치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코로나19 등 바이러스로 인한 경제활동 침체, 지구환경 변화에 따른 이상 기후 등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들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 걸쳐 사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회적 경제 기업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회적 금융 생태계 조성은 단순히 사회적 경제 조직을 위한 자금 지원방법을 찾는 작업이 아니다. 지구와 인류, 사회를 구하기 위한 절박한 시대의 요구다.
문진수 사회적금융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