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최근 RE100 가입했지만 그린피스 “한가하고 게으른 목표” 지적
SK는 호주 연안 가스전 개발 투자로 환경단체로부터 ‘그린워싱’ 비난 사
재계 1위 삼성은 아직 가입 안해…“ESG 경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SK는 호주 연안 가스전 개발 투자로 환경단체로부터 ‘그린워싱’ 비난 사
재계 1위 삼성은 아직 가입 안해…“ESG 경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에스케이이엔에스(SK E&S)가 지에스(GS)에너지와 합작으로 충남 보령에 준공해 2017년 1월부터 가동에 들어간 엘엔지(LNG)터미널 인수기지의 저장탱크 모습. 에스케이이엔에스 제공
➊ 넘어야 할 장벽 ‘그린워싱’
➋ ESG는 ‘사다리 걷어차기’인가?
➌ 소비자 주도의 ESG로 가는 길
➍ 전문가 대담 현대차그룹은 지난 7일 현대차·기아 등 5개 계열사가 2050년까지 ‘RE100’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RE100은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 100%’의 줄임말로 사용전력량의 100%를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조달하는 것이다. 애플, 구글 등 30개 글로벌 ‘이에스지(ESG, 환경·사회·지배구조) 우등생’들은 일찌감치 RE100을 달성했다. 95% 이상 달성한 기업도 45개나 된다. RE100은 ‘이에스지 경영’의 필수과목인 셈이다. 하지만 그린피스는 “현대차의 2050년 목표 연도는 ‘마감 기한에 맞춘’ 게으른 목표”라고 지적했다. RE100에 가입한 글로벌 기업들의 평균 목표는 2028년으로 현대차보다 무려 23년이나 앞선다는 것이다. 국내 기업들이 앞다퉈 이에스지 경영을 선언하고 있지만, 글로벌 기준에는 아직 못 미치는 실정이다. 재계 1위 삼성전자는 아직 RE100에 가입하지 않았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삼성전자 김석기 당시 부사장은 “제도와 인프라가 갖춰지면 대내외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10여개월이 지난 지금도 감감무소식이다. 2020년 국내 최초로 8개 계열사가 RE100에 가입해 국내에서 ‘이에스지 모범생’으로 통하는 에스케이는 ‘그린워싱’ 논란에 휘말렸다. 그린워싱은 환경파괴적인 기업이 친환경적인 것처럼 거짓 선전하는 ‘위장 환경주의’를 가리킨다. 그룹 계열사인 에스케이이엔에스(SK E&S)가 지난 3월 오스트레일리아(호주) 해상 가스전 바로사-칼디타 개발에 14억달러(약 1조6천억원)를 투자하기로 결정한 것이 타깃이 됐다. 이 사업은 2025년부터 20년 동안 국내에 연간 130만톤의 액화천연가스(LNG)를 들여오는 프로젝트다. 오스트레일리아 에너지기업 산토스가 2018년 연방정부의 사업 인허가를 받았고 에스케이가 파트너로 참여한 것이다. 가스전도 유전과 마찬가지로 개발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이에 따라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 5월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 가스전과 유전에 대한 신규 투자 금지를 권고한 바 있다. 에스케이는 가스전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땅속에 저장하는 탄소포집저장기술(CCS)을 도입하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주빌리 오스트레일리아 연구센터와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현지 및 국내 환경운동단체들은 지난 5월19일 에스케이에 서한을 보내 “바로사 가스전 개발사업은 지난해 11월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선언과 충돌한다”며 “명백한 그린워싱”이라고 비난했다. 주빌리 등은 바로사 가스전이 오스트레일리아 가스전 가운데 이산화탄소 함량(18%)이 가장 많다고 주장한다. 가스전에 매장된 이산화탄소는 해상 플랜트에서 상당 부분 대기로 배출되고, 나머지는 엘엔지 터미널의 가스 처리 과정에서 배출된다. 여기에 가스처리설비 가동 때 배출되는 온실가스까지 더하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엄청난 규모로 증가한다. 주빌리 등은 “바로사 가스전은 연간 370만톤의 엘엔지를 생산하기 위해 540만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사업”이라고 공격했다. 환경단체들은 탄소포집저장기술에 대해서도 “기술과 비용 문제 때문에 실현 여부가 불확실하다. 계획대로 실행되더라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없다”고 깎아내렸다. 주빌리 등은 바로사 가스전 개발이 지역 생태계와 공동체에도 심각한 피해를 끼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가스전과 육상의 터미널을 연결하는 파이프라인이 멸종위기종인 바다거북의 서식지를 가로지르도록 설계돼 있을 뿐만 아니라, 2개의 주요 어장을 침범해 어민들의 생계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에스케이는 주빌리 등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한다. 이산화탄소 배출량 ‘연간 540만톤’은 오스트레일리아 당국의 사업 승인이 나기 전인 2017년 추정치라는 것이다. 지금은 고효율 설비 도입으로 연간 400만톤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가운데 240만톤은 탄소포집저장기술로 포집해 땅속에 저장하기 때문에 아예 대기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게 에스케이의 주장이다. 나머지 160만톤은 탄소배출권을 사들여 처리한다. 에스케이는 특히 오스트레일리아 규제당국의 엄격한 환경영향평가 등을 거쳐 사업 승인을 받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지역 생태계 파괴와 주민 생존권 침해 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면 규제당국이 인허가를 내주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에스케이에 따르면 탄소포집저장기술은 이미 세계 26개 프로젝트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미 기술력과 경제성이 입증된 기술이라는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이 기술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로이터>는 지난 6월16일 “가스전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바닷속 땅밑에 저장하는 작업에 속도를 내겠다”는 키스 핏 오스트레일리아 자원부 장관의 발언을 인용하며 ‘오스트레일리아가 해저 탄소 저장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에스케이의 그린워싱 논란은 ‘이에스지 경영’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준다. 바로사 가스전 개발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이라는 게 에스케이 쪽 설명이다. 탄소연료의 공백을 재생에너지로 완전 대체할 수 있을 때까지는 천연가스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2030년까지 천연가스 비중을 유지하기로 결정한 이유다. 국제에너지기구도 에너지 전환기에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사용의 불가피성을 인정한다. 특히 석탄발전 비중이 40%로 높은 우리나라는 엘엔지 비중을 더 늘려야 한다. 엘엔지는 석탄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33%나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엘엔지 수요도 정부의 탈석탄 방침에 따라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산업부 추산에 따르면 엘엔지 수요는 올해 4169만톤에서 2034년까지 4797만톤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에스케이는 바로사 가스전 개발에 탄소포집저장기술을 도입하는 것은 이에스지 경영 차원의 결정이라고 설명한다. 이 기술 도입은 애초 사업 인허가 조건이 아니었지만, “친환경 에너지 개발을 위해 스스로 높은 수준의 탄소배출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실행하기 위해 도입했다”(도훈 에스케이이엔에스 홍보팀장)는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자본시장의 평가는 냉정하다. 이에스지 투자자는 국가나 기업의 특수한 사정은 고려하지 않는다. 지난 5월 <블룸버그>는 한국전력공사(KEPCO)의 그린워싱 논란을 보도했다. 한전이 지난해 6월 5억달러 규모의 그린본드를 발행해놓고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의 석탄발전소에 투자한 것을 지적한 것이다. 한전은 이 투자가 두 나라와의 외교관계 등을 고려한 결정이었고, 그린본드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을 석탄발전소에 투자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하지만 <블룸버그>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그린워싱”이라고 지적했다. 그린본드를 발행할 정도로 탄소배출량 감축에 상당한 관심을 가진 기업이 석탄발전소 투자를 함께 진행한다는 건 엄청난 모순이라는 것이다. 한전은 지난해 10월 해외 신규 석탄발전소 투자 중단을 결정했고, 2050년까지 모든 해외 석탄발전 사업에서 철수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크리스티나 응 미국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 선임 애널리스트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한전 사례는 한국 그린본드 시장에 대한 평판에 나쁜 영향을 준다. 그린본드 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이에스지 투자자들은 조금이라도 환경에 유해한 요소가 있는 기업은 투자 대상에서 철저하게 배제하기 때문이다. 이에스지 경영의 관건은 ‘진정성’이다. 이에스지를 기업의 이미지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는 데 그친다면 투자자의 싸늘한 외면이 뒤따른다. 기업 외부와 과감하고 다양한 소통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이에스지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이에스지 경영은 단기적 이익을 어느 정도 희생할 각오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춘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cjl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