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3회 대한민국 사회적경제 박람회’ 부대행사인 ‘사회적농업, 회고와 전망’ 간담회에서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사회적농업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농촌은 장애가 있든, 가장을 잃은 한부모 가정이든 마을공동체가 함께 농사를 지으며 일터와 삶터를 공유해왔습니다. 사회적농업은 이러한 농촌의 사회 관계망을 되살리고자 합니다.”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사회적농업, 회고와 전망’ 학술정책행사 기조발제에서 사회적농업의 개념을 정의했다. 장애인, 고령자, 아동 등 취약계층의 사람들에게 농업을 통해 돌봄, 고용, 교육 등의 기능을 지원하는 활동을 사회적농업이라 한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지원으로 2018년 시범사업으로 시작한 국내 사회적 농장은 올해 4개 거점농장을 포함해 60곳에 이를만큼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지난 3일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3회 대한민국 사회적경제 박람회’에서는 올해로 4년차에 접어든 사회적농업 활성화 지원 사업의 현황과 향후 발전 방향을 모색해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주최로 열린 이번 간담회에서는 ‘사회적농업, 회고와 전망’을 주제로 사회적 농업가, 사회적농업·사회적경제 전문가 및 관계자 50여명이 모여 의견을 나눴다. 기조발제에 나선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농산물 생산·가공 외에 고용, 돌봄, 교육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게 사회적농업”이라며 “지역사회에서 뒤처지거나 취약한 주민을 농업을 통해 관계를 맺고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함께 살아가게끔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며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농촌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적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수도권으로 유출된 농촌의 청장년 인구 문제는 농촌의 인구 감소로 이어졌고, 농촌 소멸의 위기를 불러왔다. 농사만 열심히 지어도 최저임금 수준의 월 소득을 벌기에도 빠듯한 게 국내 농업의 현주소다. 그렇다면 이제 막 싹을 틔우기 시작한 국내 사회적농업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들이 갖춰져야 할까?
기조발제에 이어 사회적 농가와의 간담회에서 우선과제로 꼽힌 것은 사회적 농가들의 지속적인 운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조예원 바헤닝언케어팜연구소 대표는 “국내 사회적 농가들은 최대 5년까지 정부 사업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5년 이후, 지원금 없이 자체적으로 운영하기에는 아직까지 농촌 여건이 어려운 현실이라, 중장기 사회적 농장에 대한 대안 모색이 필요하다”며 사회적농업의 장기 운영 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농림부의 사회적농업 활성화 지원 사업이 도입된 지 약 3년. 국내 농가는 물론이거니와 대중적으로도 사회적농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낮은 편이다. 농촌에서 사회적농업을 이해하고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청장년층을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렇듯 도시에 비해 인적, 물적 자원이 부족한 농촌 여건을 고려해볼 때, 5년이라는 지원 기간 안에 사회적 농가들이 자체적인 운영 역량을 마련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사회적농업이 자립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5년의 지원 기간 이후에 대한 중장기적인 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정민철 젊은협업농장 대표는 “사회적농업은 부처의 단순 사업이나 농업 아이템이 아니다. 농촌 복지체계를 지원하고, 농촌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새로운 농업의 패러다임으로 봐야한다”며 “특히 사회적농업의 대상자가 한 계층으로 한정되는게 아니라 다양한 농촌 주민을 포용하는 방식으로 지원 사업이 기획 운용되야 한다”며 사회적농업에 대한 장기적 비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효진 완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센터장도 사회적 농장인 키울협동조합 사례를 들며 “사회적 농장은 지역사회 다양한 취약계층을 엮어내고 이들이 사업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하는 힘이 있다”며 “지역사회 많은 사람을 포용할 수 있도록 사회적농업이 주민교육과 같이 확장될 수 있도록 대상을 한정하지 않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간담회에 참석한 사회적 농장 대표들과 사회적농업•사회적경제 관계자들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취약계층들이 농업을 통해 농촌에서 자립하고 함께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지원 사업 평가와 관리 방안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안됐다. 정민철 대표는 “사회적농업 지원 사업은 별도 프로그램이 아닌 농가의 일상적 생활 속에서 운영되야 한다.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일회성 농가 체험 프로그램과 다르다”며 “소수의 사람들이 농장의 일상을 체험하고, 공동체에서 관계를 맺도록 하고, 지원 사업 평가와 관리 방안에도 반영되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규모 농가 중심의 재정적 여력이 부족한 환경 속에서 사회적농업을 정착시킨 예가 아일랜드다. 지방정부를 비롯해 주민이나 민간주체로부터 출자금을 받아 대규모 사회적 농장을 운영할 수 있는 이탈리아와는 달리, 국내 협동조합은 제도적으로 정부나 민간주체로부터 출자금을 자유롭게 받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아일랜드도 마찬가지다.
아일랜드 케리 카운티는 인구 15만의 작은 소도시다. 우리나라로 치면 충북 제천과 비슷한 규모인 아일랜드 케리 카운티는 적은 재정 기반으로 사회적 농업을 실행할 수 있는 사회적 농장 실험을 2013년도에 실시했다. 이들은 이탈리아와 같이 농산물 특판장, 병원, 학교 등의 시설이 포함된 큰 규모의 사회적 농장 대신, 농장주 한 명이 두 명의 장애인을 멘토링하는 사람 중심으로 운영하는 방식을 택했다. 농장주들은 별도의 프로그램 기획과 운영 없이, 자신의 농장을 운영하면서 장애인들에 직접 농장일을 가르치고 돌봐줄 수 있었다. 장애인들의 어려움을 살펴보고 사회적 농업 사업을 관리 운영해주는 일은 주민 코디네이터가 담당했다. 지방정부의 인건비 지원도 있었지만, 소외계층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한 지역사회 협력이 있어 가능했던 일이다.
윤수경 한국사회적농업협회 회장이자, 사회적농업 청송해뜨는농장 대표는 “사회적농업은 농민 혼자 하기는 어렵다. 취약계층 개인의 삶 뿐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농민, 사회복지사, 지역주민들의 협력이 우선돼야 하고, 무엇보다 사회적 농가들이 함께 학습하고 경험을 교류하는 연대의 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간담회에 함께 참여한 이재식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사회복지과장은 “기존 사회보장제도와의 연결지점을 찾아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민간에서도 연구와 경험 공유를 위한 협력의 장을 마련하는 등 사회적농업이 자생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을 위해 앞으로도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2일에는 사회적경제를 통해 농산어촌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활성화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사회적경제인과의 간담회도 열렸다.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이하 농특위)의 주최로 열린 이번 간담회는 정현찬 농특위 위원장의 주재 하에 20명의 사회적농업·사회적경제 전문가들이 자리해 사람과 환경 중심의 농정 전환을 위한 방안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2일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된 농어업농산촌특별위원회의 사회적경제인 간담회에서 정현찬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산촌특별위원회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글·사진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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