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4일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사퇴 의사를 밝힌 뒤 떠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홍원식(71) 남양유업 회장이 4일 ‘불가리스 사태’로 회장직에서 사퇴하기로 하면서 구체적인 후속 조처에 관심이 쏠린다. 사내이사 4명 중 3명이 홍 회장 가족인 현 지배구조를 대대적으로 개편하지 않고는 이사회가 독립적으로 제 구실을 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 회장은 이날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 모든 것에 책임을 지고자 남양유업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 자식에게도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홍 회장은 11문장으로 구성된 사과문을 눈물을 흘리며 읽은 뒤, 질문은 받지 않은 채 퇴장했다. 지난달 13일 ‘불가리스의 코로나19 억제 효과’를 발표한 지 22일 만이다.
이날 향후 이사회 구성이나 경영진 개편 등 구체적인 방향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홍 회장이 회장직에서 사퇴하고 경영권 승계도 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만큼 일단 홍 회장 부자가 사내이사와 등기임원 자리에서 물러나고 전문경영인을 도입할 가능성이 크다.
남양유업 이사회에 참여하는 사내이사 4명 중 3명이 홍 회장 가족이었다. 홍원식 회장 본인, 장남 홍진석 상무, 어머니 지송죽(92)씨다. 고령인 지씨는 지난해 이사회에 단 한차례도 참석하지 않았다. 남은 한명은 이광범 대표이사로, 이 대표도 지난 3일 사의를 표명한 상태다. 지씨를 뺀 사내이사 전원이 사실상 사퇴한 모양새다. 홍 회장이 “살을 깎는 혁신”을 공언했으나 이 약속을 이행하거나 담당할 사람조차 현 상황에선 찾기 어려운 셈이다.
사외이사는 2명이 있지만 그간 활동은 미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수도 받지 않았다. 3년 남짓 동안 사외이사직을 맡고 있는 양동훈 유니온비엔씨 대표는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사외이사직에) 이름만 올렸을 뿐 제대로 아는 게 없다”고 밝혔다. 그는 홍 회장의 사퇴에 대해서도 “사전에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외부 견제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 독단적인 지배구조를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는 “만약 사내이사에 홍 회장 가족을 남겨두면 홍 회장이 여전히 최대주주(51.68%)로 뒤에서 경영에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며 “후속 조치에서 실질적인 지배구조 개선이 이뤄져야 사퇴 의미가 퇴색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양유업은 지난달 13일 심포지엄에서 자사 불효유 불가리스가 코로나19 억제에 효과가 있다는 취지의 연구결과를 발표한 뒤 논란에 휩싸였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식품표시광고법 위반으로 남양유업을 고발했고, 생산 40%를 담당하는 남양유업 세종공장은 영업정지 2개월 처분 결정을 눈앞에 둔 상태다. 지난달 30일 경찰이 남양유업 본사를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이날 홍 회장의 사퇴 소식에 남양유업 주가는 전날보다 9.52% 오른 36만2천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시장에서 남양유업의 ‘총수 리스크’가 사라지게 된 점을 호재로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된다.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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