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제이(CJ)제일제당 첫 여성 사내이사로 선임된 김소영 동물영양(AN)사업본부장(부사장 대우)이 지난 1일 오후 서울 중구 씨제이제일제당 본사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의 왼편에는 제일제당에서 생산하는 아미노산 샘플이 놓여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햇반하고 비비고 파는 회사 아니야?”
씨제이(CJ)제일제당의 김소영(49) AN사업본부장(부사장 대우)은 제일제당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못내 아쉽다. 미생물공학을 전공한 김 본부장은 2004년 제일제당에 입사해 커리어 대부분을 바이오연구소에서 쌓아온 ‘뼛속까지’ 연구원이라서다. 한가지 소재에 10년을 매달리기도 했다. “평생 연구만 하고 싶어서 교수가 아닌 산업계를 택했다”는 김 본부장은 지난 3월26일 정기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선임되면서 전체 이사회 구성원 7명, 사내이사 3명 중 1명이 됐다. 지난 1일 서울 중구 제일제당 본사에서 김 본부장을 만났다.
여성, 비식품, 연구원 출신…세 겹의 ‘소수성’ 뚫다
사내이사는 대표님, 회장님이 하는 거라고만 생각했죠. 이렇게 (사내이사 선임과 관련해) 일일이 공시가 뜨는 줄도 몰라서 충격을 받았어요.” 틀린 말도 아니었다. 현재 김 본부장 외에 제일제당 사내이사로는 손경식 씨제이그룹 회장과 최은석 제일제당 대표이사 있다. 김 본부장 자리에는 이전까지 강신호 전 제일제당 대표(현 대한통운 대표)가 있었다.
이런 ‘관행’을 깨고 그가 사내이사로 발탁된 배경에는, 그의 표현대로라면 “세상이 바뀌어서”(자본시장법 개정) 그런 면이 있다. 내년 8월부터 자산 2조원 이상 대기업이 여성 이사를 한 명 이상 두는 것이 사실상 의무화된 탓이다. 하지만 대부분 대기업이 이 규정을 ‘여성 사외이사’로 충족시키는 와중에, 김 본부장이 여성 사내이사로 입성한 것엔 여러 겹의 의미가 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국내 자산 2조원이 넘는 상장사 151곳 중 여성 이사는 57명, 그중 여성 사내이사는 4명으로 압축되는 ‘소수 중의 소수’라서다.
전략·기획·재무 등의 분야가 아닌 연구개발(R&D) 출신이라는 점과 제일제당에서 ‘비식품’인 바이오 분야에서만 일했다는 점도 ‘최초’의 의미를 더한다. 김 본부장은 “여러 면에서 독특한 제가 사내이사로 선임된 것에 대한 메시지가 강하다고 생각한다”며 “할말도 잘 못참는 성격이다. (안건이 정해진대로 따르는 것이 아닌) 이사회에서 다양성과 많은 변화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제일제당은 김 본부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하면서 “제일제당이 세계 최고 수준의 그린바이오 연구개발 경쟁력을 보유하는 데 공헌이 컸다”고 설명했다. 그린바이오는 미생물을 활용해 기능성 소재, 첨가물 등을 만들어내는 산업이다. 김 본부장은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낸뒤, 2004년 제일제당 바이오연구소에 과장급으로 경력 입사했다. 그때만해도 제일제당이 아미노산 시장에서 일본 아지노모토사를 따라잡기에 급급한 시절이었다. 변곡점은 2015년. 그가 10년간 연구원으로, 팀장으로 개발해온 아미노산 ‘엘-메치오닌’을 세계 최초로 친환경 공법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전까지 다른 글로벌 기업들은 모두 화학공법으로 메치오닌을 생산했다. 석유 등 화학공법으로 생산할 경우엔 ‘부산물’도 오염을 발생시키지만, 석유 대신 ‘설탕’ 등으로 발효시켜 생산한 메치오닌은 부산물도 모두 비료로 돌아갈 수 있어 생산 공정 자체가 친환경적이다. 제일제당은 핵산·트립토판 등 주요 사료용 아미노산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확보 중이다.
김 본부장은 “아지노모토같은 굴지의 회사들이 최초로 미생물 연구와 발효를 시작했지만, 이 길에 올라타면서 일본을 제치고 우리가 선두로 올라간 역사의 현장에 있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삼성이 소니를 제쳤다는 말씀을 많이 하지만, 씨제이는 아지노모토를 제쳤다고 당당하게 우리끼리는 말해요. 알아주지 않으셔서 그렇지만 말이죠.” 지난해 제일제당의 그린바이오 사업 매출은 2조9817억원으로, 매출의 95% 이상이 국외에서 발생했다. 그가 입사했을 땐 바이오연구소 연구원이 50명 남짓이었지만 최근엔 450여명으로 늘었다.
그는 자신의 강점을 살려 이사회 구성원으로서 바이오 분야에 특화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전략에 힘을 실을 계획이다. 제일제당의 바이오 공장 11곳 중 4곳이 동남아시아에 있고, 중국에만 4곳이 있다. 김 본부장은 “생산기반이 있는 신흥국 이에스지 경영 관점에서 기여할 수 있고, 제품의 친환경성을 널리 알리는 전략을 수립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