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된 부진으로 위기에 봉착한 롯데그룹을 이끌고 있는 신동빈 회장이 롯데지주에서 지난 한 해 동안 고정급 성격인 급여를 64%나 더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월 계열사 사장단 회의를 주재하며 “저부터 롯데 변화의 선두에 서겠다”라고 한 신 회장의 말이 무색한 급여 인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롯데지주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한 해 전보다 10%나 감소했다.
1일 롯데지주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사업보고서를 보면, 신 회장은 급여 30억6300만원과 상여 4억5천만원 등 모두 35억170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이는 한 해 전보다 급여는 1.6배, 상여는 2.2배 가량 뛰어오른 것이다.
문제는 신 회장의 급여가 크게 뛴 이유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급여는 상여에 견줘 고정급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실제 롯데지주도 급여 책정 기준으로 직급과 근속연수, 직책유무을 맨 앞에 내세우고 있다. 사업보고서에는 급여 책정 기준과 관련해 “직급, 근속연수, 직책유무, 회사기여도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해여 산정했다”고 돼 있다. 신 회장의 직급과 직책은 1년 전과 ‘대표이사 회장’으로 동일하며, 근속연수만 1년 더 늘어나 있다. 사업보고서는 ‘회사기여도’도 짚고 있으나 세부 근거는 적시하지 않았다.
롯데지주 쪽은 석연치 않은 신 회장의 보수 책정에 대해 명쾌한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회사 쪽 관계자는 “(신 회장이) 대표이사를 맡는 계열사에선 많은 급여를 받고,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 중인 계열사에선 상대적으로 급여를 낮췄다”고 언급했다. 경영에 대한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 간에 급여에 차등을 두고, 이를 2020년 보수 책정 때 적극 반영했다는 취지다.
하지만 <한겨레>가 신 회장이 재직하고 있는 계열사 7곳에서 받은 보수 변화를 살펴보니, 이런 롯데지주의 설명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우선 신 회장은 대표이사로 재직 중인 롯데케미칼과 롯데제과에선 급여 명목으로 받은 보수는 한 해 전에 비해 동결되거나 소폭 감소했다. 나아가 전문경영인으로서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롯데 고위 임원의 보수 변화도 ‘대표이사 급여 강화’라는 회사 쪽 설명과 배치된다. 한 예로 김교현 롯데케미칼 대표이사(사장)의 지난해 급여는 7억1200만원으로, 한 해 전(7억2100만원)보다 2.1% 줄었다.
이런 지적에 대해 롯데지주 쪽은 다시 “급여 수준 정상화”를 언급했다. 신 회장이 국정 농단과 경영비리 사건 2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받으며 2018년 10월에 경영에 복귀한 점을 고려했다는 뜻이다. 신 회장 공백에 따라 줄어든 2018년 보수를 2019년과 2020년 2개년에 걸쳐 끌어올렸다는 얘기다. 또 ‘정상화의 기준’에 대해선 롯데지주 쪽은 “다른 그룹 총수들이 지주사에서 받는 보수 수준”이라고 말했다 회사 성과가 아니라 여타 재벌 그룹 총수들의 보수가 급여 책정의 실제 기준이라는 것이다.
롯데 쪽은 신 회장이 그룹 전체에서 받은 총보수가 줄어든 점을 부쩍 강조한다. 롯데 관계자는 “신 회장의 총보수(149억8300만원)는 2019년(181억7800만원)에 비해 약 18% 감소했다”고 말했다. 총보수의 감소는 주로 상여가 대폭 감소한 데 따른 영향이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는 “직위가 그대로인데 1년새 고정급을 60%나 올린 것은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서 합리적 근거가 없는 자의적인 사익 추구로 보인다”며 “주먹구구식이거나 불투명한 총수의 보수 책정을 개선하기 위해선 우선 임원의 보수 공시 제도를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