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대한항공이 마일리지 복합결제 도입과 함께 마일리지 공제·적립 방식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뒤에도 소비자들의 불만은 외려 커지고 있다. 지난 20일 ‘소비자주권시민회의’가 대한항공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한 데 이어 오는 29일에는 법무법인 태림 및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도 공정위 신고에 나설 예정이다.
27일 <한겨레>가 입수한 법무법인 태림의 심사 신청서를 보면, 이들은 대한항공의 마일리지는 경제적 가치를 지닌 ‘재화’라고 전제한 뒤, 대한항공의 개편안은 “사업자에게는 현저히 유리하게 변경된 반면, 소비자집단에게는 불리한 사실이 명확하다”며 “약관규제법 제6조 ‘신의성실의 원칙’ 위반으로 변경된 개정안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대한항공이 새로 도입한 복합결제 방식(마일리지 20%+현금·카드 80%)은 애초 공정위가 마일리지의 활용 가치를 높이라는 취지로 권고한 내용이 받아들여진 측면이 있다. 문제는 대한항공이 여기에 더해 마일리지를 ‘공제는 늘리고 적립은 줄이는’ 방식으로 대폭 손질하면서 불거졌다. 예를 들어, 인천에서 미국 뉴욕으로 가는 항공편의 경우 기존보다 일반석은 28%, 비즈니스석은 44%, 일등석은 69%나 더 많은 마일리지를 써야 보너스 항공권을 받을 수 있다. 마일리지 적립률은 가장 저렴한 일반석 큐(Q)등급 기준 70%에서 25%로 대폭 줄였다.
특히 마일리지 공제율이 줄어드는 단거리 노선의 경우 가격이 저렴해 굳이 대한항공을 이용하기 보다는 다른 저가 항공 이용이 많다는 점에서 공제 인하 효과가 미미하다는 소비자 불만이 크다. 또 일등석 적립률은 올랐지만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일반석의 적립률이 대폭 낮아진 것도 대다수 소비자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어렵다. ‘화난사람들’을 통해 공정위 심사 청구를 맡은 법무법인 태림의 박현식 변호사는 “전체 소비자 중 14~26%에도 훨씬 못 미치는 일부 고가 좌석 구입 승객에 대해서만 마일리지 적립의 혜택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으며, 나머지 75% 이상의 소비자에 대해서는 불리하게 변경된다”고 설명했다.
공정위 심사의 주요 쟁점은 마일리지의 경제적 가치 인정 여부가 될 전망이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 박홍수 팀장은 “마일리지는 소비자 재산인데 대한항공이 이를 재산 가치로 인정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재산 가치액을 줄여버린 것이 불공정거래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은 마일리지 축적을 위해 상대적으로 비싼 대한항공의 항공권을 이용하는 것뿐 아니라 연회비가 높은 제휴 신용카드를 사용하면서 마일리지를 적립하는 등 적극적인 마일리지 쌓기 행위를 해왔는데 공제·적립 기준이 높아지면서 사용 가치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이미 지난 2003년 대한항공의 불공정 약관 심사에서 “(대한항공 마일리지는) 독립적인 경제적 가치를 지니고 거래의 직접적인 대상이 되는 것”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이 심결례를 기준으로 공정위가 이번 개편안에 대해 ‘대한항공이 일방적으로 약관을 변경했다’고 판단할 경우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 돼 ‘불공정 약관’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 공정위 쪽은 “2003년 심결례를 이번 심사에서 반드시 참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공정위 심사는 공정위와 대한항공 간 갈등으로 이어질 소지도 있다. 대한항공은 이번 개편안이 “모두 공정위와 협의한 약관”이라고 밝힌 반면, 공정위는 이번 개편안 가운데 ‘복합결제’를 제외한 마일리지 공제·적립 방식 변경은 공정위와 논의된 사안이 아니라고 선을 긋는 등 심사 전부터 갈등을 예고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