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처음 인사드립니다. 스미싱 문자의 대명사 ‘김미영 팀장’과 이름이 같은 경제부 유통담당 김미영입니다. 김미영 팀장 가고 ‘이동수 과장’도 왔다 간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제 명함 보고 김미영 팀장 얘기하는 분들이 간혹 있습니다. 제가 먼 훗날 혹여 팀장이란 직함을 다는 날엔 어떻게 될까 무섭기까지 한데요. 지면에 등장한 김에 말씀드려요. 이제는 그만~.
어쨌든 제가 친절한 기자에 등장한 건 ‘가짜 백수오’ 논란을 빚은 내츄럴엔도텍 때문입니다. 도대체 백수오가 뭐길래, 내츄럴엔도텍이 뭘 어쨌길래 소비자들은 제품 환불을 요구하고, 개미투자자들은 내츄럴엔도텍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중일까요. 사건의 발단인 한국소비자원 발표가 있던 지난달 22일로 거슬러 올라가 볼게요.
소비자원은 갱년기 장애 개선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약초 백수오를 원료로 만든 제품 상당수가 가짜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어요. 조사 대상 중 하나였던 내츄럴엔도텍 원료에서도 가짜 백수오라고 불리는 이엽우피소가 검출됐다고 밝혔고요. 이엽우피소는 백수오와 외관이 비슷하게 생겼으나 국내에서는 식용으로 쓰이지 않는 독성이 있는 약초예요. 소비자원은 이엽우피소가 재배기간이 짧고 단가가 싸 백수오로 둔갑하게 된 걸로 분석했어요.
내츄럴엔도텍은 소비자원 발표에 즉각 반발했어요. “지난 2월 식약처가 조사한 결과에서는 이엽우피소가 검출되지 않았다”며 검사방법에 문제를 제기했죠. 결국 식약처가 재조사에 들어가면서 소비자원과 내츄럴엔도텍 간의 진실공방이 시작됐어요.
소비자원은 “내츄럴엔도텍이 세차례의 간담회에서 원료 폐기를 약속했다가 뒤집더니, 조사 결과를 언론에 발표할 경우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내용증명을 보내왔다”고 설명했어요. 내츄럴엔도텍은 “원료 폐기를 약속한 바 없으며 되레 소비자원이 원료를 폐기하면 업체 이름을 빼주겠다”고 회유했다고 주장했죠.
연일 이어지는 내츄럴엔도텍의 당당한 태도에 급락하던 주가는 27일 잠시 오르기도 했어요. 내츄럴엔도텍의 주장대로 소비자원이 원료를 채취해가면서 밀봉 등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거든요. 그러나 상황은 이날 오후 급반전됐어요. 내츄럴엔도텍 임원들이 소비자원 발표에 앞서 보유 지분을 팔아 수십억원의 차익을 남겼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주가는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죠. 내츄럴엔도텍은 주가 급락 방지 및 주주 보호를 위해 1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하겠다고 발표했어요. 이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투자자와 소비자들이 내츄럴엔도텍으로부터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된 시점이요. 주식게시판엔 “먹튀를 위한 시간끌기 아니었냐”는 글들이 올라왔어요.
소비자원에 이어 30일 식약처도 내츄럴엔도텍의 백수오 원료에 ‘가짜’가 섞여 있다고 발표하면서 진실공방은 끝이 났어요. 내츄럴엔도텍은 당혹감 속에 “식약처 조사를 겸허히 받아들인다”면서 소비자원을 상대로 제기했던 민형사상 소송도 철회하겠다고 밝혔어요. 그러면서 “현재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에스트로지 (백수오 등 복합추출물) 제품은 금번 문제 제기된 원료와 다르다. 안심하고 드셔도 된다”고 당부했죠. 하지만 이미 신뢰가 깨진 업체의 말에 소비자들이 안심할 수 있을까요.
진실공방은 일단락됐지만 ‘코스닥 총아’였던 내츄럴엔도텍의 추락과 함께 백수오 논란은 계속될 예정이에요. 소비자원은 내츄럴엔도텍에 대해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예요. 한국거래소도 내츄럴엔도텍 임원들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보유 지분을 비쌀 때 팔아 수십억원의 차익을 남겼는지 조사를 진행중이고요. 소비자들은 구매처에 백수오 환불을 요구하고 있어 환불 기준과 방법에 대한 논의가 계속될 전망입니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백수오를 선물로 준비하려던 이들의 피해는 막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홍삼에 이어 건강식품 시장에서 열풍을 일으켰던 백수오는 ‘진짜’ 백수오로 다시 재기할 수 있을까요.
이번 가짜 백수오 논란을 지켜보면서 이전 취재의 경험이 생각났어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빨리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했더라면 ‘땅콩회항’ 사건은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겁니다. 내츄럴엔도텍 역시 소비자원이 적발한 다른 업체들처럼 잘못을 인정하고 문제가 된 원료를 폐기했다면 어땠을까요. 주가 하락을 피할 수는 없었겠으나 열흘도 안 돼 시가총액 1조원을 날리진 않았겠죠. 게다가 바닥까지 추락한 신뢰는 어떻게 회복해야 할까요.
김미영 경제부 산업2팀 기자 instyle@hani.co.kr
김미영 경제부 산업2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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