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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쇼핑·소비자

10년 오기로 발효시킨 막걸리 열풍

등록 2009-12-14 18:44

배혜정 누룩도가 대표이사
배혜정 누룩도가 대표이사
[한겨레특집|우리술] 전통주 살리는 사람들
국순당 큰딸, 국산쌀만 사용 “무식하게 사업”
맛·도수 차별화로 일본 이어 국내에서도 진가
배혜정 누룩도가 대표이사

배중호·배영호 형제는 각자 국순당과 배상면주가를 세워 전통주 업계에서 입지를 굳혔다. 배상면 국순당 회장 슬하의 첫째와 셋째인 이들은 백세주와 산사춘을 각각 내놓아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술 시장의 유명인이다. 이들 형제의 이야기는 익히 알려져 있다. 전통 약주에 이어 최근에는 막걸리까지 내놓아 앞서거니 뒤서거니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막걸리의 인기몰이 흐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할 이는 따로 있다. 배씨 형제 사이의 둘째인 배혜정(왼쪽 사진) ‘배혜정 누룩도가’대표이다. 배 대표는 2001년부터 고급 막걸리를 만드는 배혜정 누룩도가를 묵묵하게 운영해왔다. 뜻밖에 찾아온 요즘의 막걸리 열풍 속에서 10년 가까운 기나긴 기다림은 빛을 발하고 있다. 2007년부터 일본 수출 물량이 늘기 시작했으며, 올해 초부터는 일본으로부터 밀려드는 주문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지난 11월에는 햅쌀로 빚은 막걸리인 ‘막걸리 누보’를 내놓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아버지가 원망스럽기도 했죠. 왜 이렇게 힘든 걸 나에게 맡겼나 싶은 생각도 들었고….” 지난 7일 서울 개포동 사무실에서 만난 배혜정 대표는 막걸리 사업을 시작하게 된 때를 떠올리며 웃었다. “아버지가 50여년을 전통주 만드는 데 바쳤지만, 제대로 된 막걸리 하나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항상 아쉬워하셨습니다. 숙원처럼 여겨오던 것을 2000년에 넌지시 저에게 맡기셨지요.”

배 대표는 그전까지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남편을 따라 일본에서 5년을 보내는 등 국외 경험이 좀 많았다는 것 외에는 별다를 게 없는 인생이었다. 그런 그에게 사업을 시작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모험이었다. 하지만 운명이었을까? 사업을 시작하기 전의 모습을 듣고 있자면 마치 막걸리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던 듯하다.

배 대표는 “일본에서 살 때 일본 문화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가장 재미있고 놀라운 점은 정말 사소한 물건이라도 거기에 이야기를 입히고, 대를 잇는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특별한 것으로 만드는 재주였다”고 말했다. 그의 특별한 기억은 지금의 막걸리 사업에 그대로 녹아 있다. 아기자기한 유리병에 담긴 막걸리는 그냥 먹기에 아까울 정도다. 마침 일본에서 배워두었던 디자인은 누룩도가 제품의 디자인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배상면 일가 가계도
배상면 일가 가계도
이런 특징 때문에 먼저 러브콜을 받은 곳도 일본이었다. 다른 막걸리 업체들이 큰 관심이 없을 때였던 2003년부터 일본에 수출을 하기 시작했다. 올해 초부터 일본 현지에서 불어닥친 막걸리 열풍이 국내로 옮아오자 그제야 국내 시장에서도 점차 팔리기 시작했다. 밀려드는 주문 덕에 하루 400상자 규모였던 출하량을 지난 11월에는 하루 1500상자까지 늘렸다. 배 대표는 “지금은 1500상자로 모자라 2000상자까지 늘리려 언 땅을 파고 공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배 대표는 2006년까지는 적자에 허덕이며 직원들 월급 줄 날이 가까워오면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때가 많았단다. 무모한 시도로 고생을 사서 하기도 했고,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도 했다. 그는 “‘배상면 회장의 딸이니 취미로 좀 하다가 말겠지’라는 주변의 시선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그 이야기가 무엇보다 (듣기) 싫어서 오기를 부려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포도를 넣은 막걸리와 다양한 도수의 막걸리 등은 최근에 각지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이미 배혜정 누룩도가에서는 수년 전에 내놓은 제품이다. 햅쌀막걸리 출시에도 선두에 서 있다.

한발 앞서가는 막걸리 사업의 혜안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배 대표는 “무식한 게 힘이었다”고 답했다. 그는 10년 전 첫 막걸리 제품을 내놓을 때도 품질 좋은 ‘경기미’ 100%를 넣어 만들었다. 수지가 맞지 않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알코올 도수를 16도로 끌어올려 보통 6도 정도인 일반 막걸리와 차별화를 꾀한 것도 모험이었다. 소비자들의 첫 반응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무식해서’ 할 수 있었던 시도들은 다양한 도수의 막걸리 탄생으로 이어졌다. 여느 막걸리 업체들이 이제야 강조하는 국내산 쌀 100% 사용을 10년 전부터 시도한 게 고급 막걸리 명가의 바탕이었다.

최근 배중호 형제가 막걸리를 출시한 것을 두고는 호기로우면서도 여유로운 모습을 보인다. 배 대표는 “우리 누룩도가는 일반 막걸리를 넘어선 고급 막걸리를 지향한다”며 “오빠와 동생이 막걸리를 내놓았고, 또한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지만 우리 제품은 좀더 다르다는 것을 소비자들도 알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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