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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쇼핑·소비자

활력의 거리, 흐뭇한 주민 네트워크와 개성 합작품

등록 2007-11-29 19:57수정 2007-11-2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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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지자체-소비자 묶는 비아이디 조직 자랑
115년 건물 살린 만물시장, 관광명소로도 인기
사람향기 나는 시장 / ⑧ 뉴욕·필라델피아 마켓

미국 뉴욕 맨해튼의 중심 유니언스퀘어에는 매주 월·수·금요일에 ‘파머스 마켓’이 들어선다. 초고층 빌딩 숲 사이의 공원 같은 광장에, 야채와 과일, 액세서리와 생활잡화, 간식거리 등을 파는 좌판들이 뉴요커와 관광객의 발길을 붙든다.

야채를 고르던 회사원 에릭 브릭슨씨는 “대형마트에서는 먼 곳의 농산물을 트럭으로 대량운송하므로 유통 기간이 길어진다. 그러나 이 곳에서는 뉴욕 인근의 농민들이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가져와 당일 판매를 하므로 훨씬 신선하고 다양하다”고 말했다. 그는 “거리장터의 농산물 값이 대형마트에서보다 더 쌀 때도 있고 비쌀 때도 있지만 지역 농민들을 격려하고 지원하는 의미도 있어 이 장터를 애용한다”고 덧붙였다.


뉴욕 맨해튼의 유니언스퀘어에 선 노점시장에서 시민들이 농산물을 사고 있다.
뉴욕 맨해튼의 유니언스퀘어에 선 노점시장에서 시민들이 농산물을 사고 있다.
■ 연대에 바탕한 지역발전= 이처럼 미국 주요 도시의 노점과 소규모 소매점들은 소비자들의 생활에 녹아 있으면서, 지자체와도 유기적인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대표적인 방식이 바로 ‘비아이디’(BID; Business Improvement District)이다. 비아이디는 해당 지역의 상권 활성화를 위해 지방정부의 허가로 설립되는 비영리 민간협의체 조직이다. 현재 미국 전체에 1400여개, 뉴욕에만 58개의 비아이디가 조직돼있다. 유니온스퀘어는 1984년 뉴욕 최초의 비아이디가 조직된 지역이기도 하다.

뉴욕시의 중소상공업지원국 ‘에스비에스’(SBS; Small Business Service Center)는 창업에서부터 구인·금융·경영 컨설팅에 이르기까지 비아이디 소속 소상공인들의 경제활동 전반에 대한 실무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대신 각 비아이디는 자기 구역 소속 상공인들로부터 가게의 면적과 자산가치를 기준으로 일정 비율의 재원을 거두어 지역의 치안 및 질서 유지, 청결 및 거리 가꾸기 등을 스스로 맡아 한다. 시 당국은 행정력을 아끼면서 지역경제 활성화와 세수 증대 효과를 얻을 수 있고, 상공인들은 자율권과 경영지원을 보장받는 윈-윈 전략이다.

뉴욕시의 링컨스퀘어 비아이디는 안전·위생·미화 서비스 뿐만 아니라, 지역내 학생들을 상대로 ‘방과후 프로그램’을 운영해 주민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또다른 비아이디인 맨해튼의 ‘패션 비아이디’에서 의류 도소매업을 하는 토미 맥클러렌씨는 “비아이디 시스템은 무엇보다도 우리 지역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이웃간의 믿음과 연대감을 되살렸다”고 말했다. 뉴욕은 최근 20년새 최고의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고 자평한다. 범죄율이 크게 줄었고 창업과 주택 공급이 활발하며 거리엔 활기가 넘쳐난다. 이같은 변화에는 비아이디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115년 전통의 필라델피아 레딩 터미널 마켓은 전통과 향수, 특화된 개성과 현대적 편의성이 조화를 이룬 곳이다.
115년 전통의 필라델피아 레딩 터미널 마켓은 전통과 향수, 특화된 개성과 현대적 편의성이 조화를 이룬 곳이다.
■ 독특함으로 승부 = 뉴욕에서 자동차로 세 시간 남짓 거리에 필라델피아가 있다. 미국 독립선언(1776년)이 발표됐고 건국 초기 수도였던 이 곳에는 올해로 115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레딩터미널마켓’이란 재래시장이 있다. 식료·잡화시장이자 유명한 관광명소다. 전통에 대한 향수를 고스란히 살리면서 현대적 시스템을 접목해, 관광 명소이면서도 장보기 편한 시장으로 꼽힌다.

1985년까지도 기차역사였던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지하철역 및 대형컨벤션센터와 연계해 접근성을 높였다. 매우 저렴한 주차료(미국의 상당수 대도시는 공공건물에 주차장이 없어 유료 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와 무선인터넷 시스템, 법률서비스 등 다양한 고객 서비스도 갖췄다.

레딩터미널마켓의 가장 큰 경쟁력은 ‘독특함’이다. 1.7에이커(약 2200평) 넓이의 건물 안에는 80여개의 매점이 야채와 과일, 육류와 유제품, 화훼, 보석류, 세계 각국의 토속음식과 수공예품 등을 판다. 얼핏 여느 재래시장과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매점이 자기만의 색깔로 이국적 향취를 자아낸다.

시장 내 유일한 책 가게인 ‘쿡 북’에는 온갖 종류의 요리책만 3000권이 넘는다. 치즈가게에선 세계 각국의 치즈 200여종이 있다. 홈메이드 빵과 와인, 수제쿠키 등 지역 농민들이 직접 만든 음식은 기본이고, 중동·지중해·독일·네덜란드·태국·중국·일본 등 세계 각 지역의 전통음식도 맛볼 수 있다. 현대문명을 거부하고 18세기 유럽 농민의 전통 생활방식과 복장을 고집하는 개신교 아미시 교파의 잡화매장과, 아프리카 토속공예품점도 이색적이다. 이 곳에서 해산물 매장을 운영하는 한국교민 우완동씨는 “모든 가게가 ‘유니크’하다. 자기 매장의 특성에 꼭 맞는 상품이 아니면 취급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다”고 말했다. 뉴욕·필라델피아/글·사진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지역 상권 살려 7만여 일자리 만들었죠”


뉴욕시 로버트 왈시 국장
뉴욕시 로버트 왈시 국장
뉴욕시 로버트 왈시 국장

“5년전만 해도 뉴욕 중심부인 맨해튼은 오후 5시만 넘으면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다시피 했습니다. 지역상권을 살리는 것이 시 정부의 중점과제이자 도전이었지요.”

뉴욕시 중소기업지원센터(NY-SBS)의 로버트 왈시 국장(커미셔너)은 “비아디 프로젝트 덕에 지금은 시민들이 언제든지 노천카페와 레스토랑, 특색 있는 가게들에서 휴식과 쇼핑을 즐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왈시 국장과의 인터뷰에는 카라 알라이모 언론담당 비서관이 배석해 답변을 거들었다.

-비아이디의 특징과 장점은 무엇인가?

=행정당국과 주민, 사업자가 긴밀한 네트워킹을 형성함으로써, 각각의 비아이디가 서로 다른 포커스를 지니면서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인다는 점이다. 뉴욕에서만 비아이디를 통해 한 해 7만여명의 고용이 창출된다. 또 비아이디는 구역내 공동판촉 뿐 아니라 구역내 치안과 청결, 환경 미화 등을 자율적으로 맡아 하는데, 이같은 서비스의 경제적 가치는 연간 8000만 달러 상당에 이른다.

-한국의 경우, 대형 유통업체가 도심상권까지 장악하면서 소규모 소매업이 설 자리를 잃고 있는데….

=‘비아이디’가 한 방법이다. 사람들이 저마다 개성 있는 가게에서 물건을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을 주고 주민과의 유대감 높였다. 월마트도 장점이 많지만 독특한 상품이 없어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비아이디가 해당지역의 기존 상인들이 아닌 사업자들에게 시장진입 장벽으로 작용하지는 않는가?

=그렇지 않다. 공간이 충분하므로 얼마든지 환영하며, 함께 번영하므로 배타적일 이유가 없다.

-비아이디가 일반 소비자에게는 어떤 이익을 주나? 가격 할인도 하는가?

=각 점포들의 다양한 개성을 즐기면서 ‘청결’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쇼핑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소비자 이익이다. 판매가격은 사업자들이 자율적으로 조정한다.

-각 비아이디가 지역내 주민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재원은 어떻게 마련하나?

=비아이디 소속 자영업자들은 가게의 면적과 자산가치에 따라 일정비율의 특별부과금을 지방세와 함께 시에 납부한다. 세금이 아니므로 비아이디 이사회가 적절히 예산을 집행할 수 있도록 교부하지만, 시가 걷는 것이 의무징수의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시는 대행료를 받지 않고 그렇게 할 능력과 권한이 있다.

-시 당국은 소규모 소매업을 어떻게 지원하고 있나?

=뉴욕에만 20만개가 넘는 스몰 비즈니스가 주민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시는 이들에게 창업교육에서부터 자금 융자, 고용 지원, 경영컨설팅 같은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한다. 작년에 월마트가 브루클린구에 들어오려 했으나 주민들이 원하지 않아 개점을 포기했다. 또 뉴욕은 임대비가 매우 비싼 탓에 넓은 공간이 필요한 대형업체보다는 독창적인 소규모 비즈니스가 경쟁력이 있다.

뉴욕·필라델피아/글·사진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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