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김아무개(59)씨는 요즘 소줏값 때문에 고민이 많다. 한 병에 4천원에 팔았던 맥주와 소주를 지난 1월 각각 5천원과 5500원으로 올렸더니 주류 매출이 크게 줄어든 탓이다. 김씨는 “최근 주류 공급처에서 ‘조만간 소주·맥주 가격이 또 오를 것’이라고 통보해와 아무래도 가격을 또 올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며 “점주 입장에서도 소주 1병당 심리적 마지노선을 5천원으로 보고 있는 터라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퇴근 후 술 한 잔도 부담스러운 시대가 됐다. 소주와 맥주 가격이 지난해 오른 데 이어 올해 또 인상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주세가 지난해보다 더 큰 폭으로 오른데다 원재료·부자재·인건비·물류비 등의 압박이 계속되고 있는 탓이다.
19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오는 4월부터 맥주에 붙는 세금인 주세가 지난해보다 리터당 30.5원 올라 885.7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리터당 20.8원에 견줘 인상 폭이 더 커지는 셈이다.
주세 인상은 보통 주류업체의 출고가 인상과 연동된다. 가뜩이나 원부자재 가격은 물론 물류비·전기료·인건비 등이 계속해서 오르는 탓에 4월 주세 인상은 맥주 출고가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소주는 주세가 오른 것은 아니지만, 원가 부담이 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소주는 주정(에탄올)에 감미료를 섞어 만드는데, 10개 주정 회사가 공급하는 주정을 국내에 독점 유통하는 대한주정판매는 지난해 10년 만에 주정값을 7.8% 올렸다. 여기에 병을 만드는 제병 업체가 지난달 말 공용병인 녹색병을 기준으로 공급 가격을 병당 180원에서 220원으로 20% 넘게 올린다고 통보한 터다.
서울 한 대형마트 소주 판매대의 모습. 연합뉴스
앞서 주류업계는 지난해에 이미 소주와 맥주 출고가를 3~6년 만에 일제히 인상했다.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2월 참이슬·진로 출고가를 3년 만에 7.9% 인상한 데 이어 3월 테라·하이트 출고가도 6년 만에 7.7% 올렸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해 3월 처음처럼 출고가를 3년 만에 6∼7% 인상했고, 11월에는 클라우드 출고가를 3년 만에 8.2% 올렸다. 오비맥주 역시 지난해 3월 6년 만에 오비·카스·한맥 출고가를 평균 7.7% 올렸고, 한라산소주도 3월에 출고가를 8%가량 인상했다. “서민 술로 꼽혀 가격 민감도가 높은 소주·맥주의 특성상 해마다 가격을 올릴 수 없어 몇 년 동안의 인상 요인을 한꺼번에 반영했다”는 것이 지난해 인상 때 주류업계의 설명이었다.
주류업계의 출고가 인상으로 주류 물가 상승률도 크게 올랐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을 보면, 지난해 주류 가격은 전년 대비 5.7% 상승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1.5% 이후 24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주류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 인상률도 인상 요인을 전부 반영한 것이 아니라 인상 압박 요인이 계속 누적되는 것은 맞지만, 국민 정서를 고려하면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주류업계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출고가 인상에 나설 경우, 일반식당·주점에서 판매하는 주류 가격은 인상 폭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서울의 경우, 이미 소주 1병당 5천원의 가격표가 흔한 만큼 ‘병당 6천원’ 가격표가 등장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서울 관악구 서울대 인근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한 업주는 “일반 소매점에서도 소주가 병당 2천원에 육박하는데, 주점이나 식당에서는 여기에 가게 운영비·인건비·임대료 등 다른 요인이 더 얹혀지기 때문에 4천~5천원에 팔아도 남는 게 없다”며 “주류업체가 가격을 또 올리면, 버틸 재간이 없어 가격을 인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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