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와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며 채솟값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3일 오후 서울 송파구 가락동농수산물시장에서 한 상인이 진열된 채소를 고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서울 영등포구에서 곱창집을 운영하는 50대 고아무개씨는 요즘 손님들에게 무제한 제공하던 부추 무침 때문에 속앓이 중이다. 부춧값이 너무 뛰었는데, 손님들은 곱창의 느끼함을 덜기 위해 계속해서 부추 무침 리필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고씨는 “겨울에도 한 단에 3천원이면 사던 부추를 5~6천원에 사오다 보니 손님 입에 부추 무침이 들어갈 때마다 ‘더 달라’고 할까 봐 조마조마할 지경”이라며 “단골에게 서비스로 주던 부추전도 12월부터 아예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파가 몰아닥친 지난 12월부터 채솟값이 급등하더니 1월 들어서는 천장을 뚫을 기세다. 추운 날씨에 눈·비가 이어지면서 일조량이 부족한데다, 겨울 채소를 기르는데 필수적인 에너지 가격도 올라 생산 단가가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설 명절을 앞두고 자영업자와 서민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3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자료를 보면, 2일 기준 적상추 한 상자(4㎏)의 평균 도매가는 4만3420원에 달했다. 일주일 전인 지난달 26일 3만6960원에 견줘 17.5%나 급등한 셈이다. 한 달 전(1만4510원)보다는 무려 3배나 뛰었고, 지난해 같은 시기 가격(2만5035원)과 비교해도 1.7배 정도 비싸다.
깻잎도 마찬가지다. 깻잎은 한 상자(2㎏)에 4만4620원으로, 한 달 전(1만8760원)에 견줘 2.4배나 뛰었다. 지난해 같은 시기(3만9135원)에 견줘서도 14% 이상 비싸다.
부춧값도 초비상이다. 가락동농수산물시장 기준(상품)으로 500g 한 단에 6180원에 달하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시기 3221원에 견줘 거의 2배 가까운 수준이다.
엽채소뿐 아니라 오이 등의 가격도 크게 뛰었다. 오이는 2일 기준 한 상자(10㎏)에 5만7520원으로, 1주일 전(4만1750원)에 비해서는 38%, 지난해 같은 시기(3만9000)에 견줘서는 47% 이상 올랐다.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 야채코너 모습. 연합뉴스
서울 경동시장에서 야채가게를 운영하는 임아무개(59)씨는 “아무리 겨울이라지만, 평년에 견줘 2배 정도 비싸다 보니 가게에 들어왔다가 ‘채솟값이 미쳤다’며 돌아나가는 손님이 부지기수”라며 “재래시장이라 마트보다는 덜 비싼 편인데도, 워낙 가격이 치솟으니 장사가 안된다”고 말했다.
외식업을 하는 자영업자들은 죽을 맛이다. 자영업자들이 모이는 카페에는 “오늘 식자재마트에서 상추 한 상자에 6만원, 부추 한 단을 5200원에 샀다”는 호소가 올라오자 채솟값을 성토하는 댓글이 수십개씩 달렸다.
경기도 일산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조아무개(46)씨는 “연초에 줄줄이 오르는 식자재 가격도 부담스러운데, 채솟값마저 폭등하니 장사할 맛이 안 난다”며 “이전에는 야채를 쌓아놓고 손님들이 마음대로 가져가도록 했는데, 지난달부터는 더 달라고 할 때마다 만 원짜리 세듯 몇 장씩 세어 가져다주는 판국”이라고 토로했다.
한파와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며 채솟값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3일 오후 서울 송파구 가락동농수산물시장에서 상인들이 상자에 담긴 상추와 쌈채소 등을 옮기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최근 고깃집에 갔던 안아무개씨는 손바닥 반도 안 되는 크기의 ‘아기 상추’를 받아들고 깜짝 놀랐다. 안씨는 “쌈에 고기를 싸 먹는 게 아니라 고기에 쌈을 싸 먹는 심정이었다”며 “채솟값이 너무 비싸서 사장님이 직접 길러서 주신다는데, 날씨가 추워 상추가 잘 안 자라는 듯싶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채솟값이 치솟은 이유는 춥고 궂은 날씨와 기름·전기 등 에너지 가격 상승 요인이 크다. 김원태 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 원예실장은 “최근 눈이 많이 왔고 기온도 낮아 일사량이 적으니 채소 생육이 부진한 상황”이라며 “여기에 냉해를 피하기 위한 비닐하우스 난방에 쓰는 등윳값과 전기요금이 오르니 생산 단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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