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한국에도 익숙한 파티 문화로 정착한 핼러윈데이. 하지만 핼러윈 의상과 소품을 준비하는 부모들의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늦둥이 딸을 둔 신아무개(50)씨는 최근 핼러윈 파티 의상을 준비하느라 골치를 썩었다고 했다.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부모 동반 핼러윈 파티를 연다는 안내문이 왔기 때문이다. 신씨는 “아이가 원하는 마녀 의상을 빗자루와 모자 등 소품과 함께 구입하려니 10만원이 훌쩍 넘었는데, ‘커플’로 엄마 의상까지 준비하려니 돈이 수월찮게 들더라”며 “막상 배송돼 온 아이 옷을 보니 질 낮은 중국산 제품이라 속이 상했다.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다가 내가 나이 든 엄마라 고리타분한가 싶어 걱정도 된다”고 하소연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사태가 끝난 뒤 첫 핼러윈데이를 앞두고 ‘핼러윈 마케팅’이 정점에 달한 가운데, 경제적·시간적 부담에 부모들의 한숨도 깊어가고 있다. 어린이집·유치원 등에서는 이미 연례행사로 자리 잡은 터라 “내 아이가 기죽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들의 심리를 틈탄 상술도 극성이다.
이미 한국에도 익숙한 파티 문화로 정착한 핼러윈데이. 하지만 핼러윈 의상과 소품을 준비하는 부모들의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게티 이미지 뱅크
서울 성북구에 사는 아들 둘 엄마 고진영(43)씨는 한 달 전부터 핼러윈 파티를 준비했다. 지난해엔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인기에 오징어게임 의상을 맞춰 입고 유치원 파티에 참석했다는 고씨는 올해는 포켓몬 띠부씰의 인기 탓에 포켓몬 의상을 원하는 아이들의 요구에 맞춰 포켓몬 의상을 직구했다. 고씨는 “한 벌에 4만원이 넘어 아이 두 명 의상을 준비하려니 배송비를 포함해 11만원 넘게 들었다”며 “요즘엔 핼러윈 파티 때 유치원·어린이집 친구들에게 줄 선물이나 간식을 숫자대로 준비하는 경우가 많아 부담이 더 크다”고 말했다.
아이들 핼러윈 의상 때문에 부부싸움까지 했다는 조아무개(44)씨는 “어차피 11월엔 쓰레기가 될 텐데 값싼 소품이나 한두 개 사라는 타박에 ‘아이가 기죽으면 책임질 거냐’고 따지는 아내 말에 말문이 막혔다”며 “금리가 뛰어 대출이자 내기도 벅찬데, 서양 명절에 들떠 돈을 쓰는 게 이해가 안간다”고 하소연했다.
핼러윈은 서양 명절이지만, 이미 한국에도 익숙한 파티 문화로 정착했다. 사진은 이마트 용산점 핼러윈 체험매장
특히 올해엔 코로나19 사태로 2년 동안 축제다운 축제를 하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일부 부모들은 삼삼오오 모여 따로 파티를 준비하기도 하면서 부담은 더 커지고 있다. 핼러윈을 겨냥한 바가지 상술도 만만치 않다. 최근엔 캠핑족을 겨냥한 고가의 ‘핼러윈 캠핑 세트’ 등도 판매되고 있다.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할 정도로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핼러윈 호박 램프 하나도 몇천 원짜리부터 십만원을 훌쩍 넘는 것까지 판매되고 있다.
이렇게 부담을 느끼는 부모들 때문에 일부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는 단체로 의상을 준비하거나 대여하는 경우도 있다. 경기도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임아무개 원장은 “연령대별로 핼러윈 소품 만들기를 하거나 그게 불가능한 더 어린 나이의 경우 단체로 주문·대여하는 방식으로 학부모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핼러윈은 서양 명절이지만, 이미 한국에도 익숙한 파티 문화로 정착했다. 인터컨티넨털 그랜드델리 핼러윈 케이크
한편에선 아이들 못지않게 핼러윈을 즐기는 젊은 부모들도 늘고 있다. 어차피 아이를 위해 준비할 파티라면, 가족 모두가 즐거울 방법을 찾으면 된다는 생각에서다. 조아무개(37)씨는 “작년엔 포시즌호텔 룸을 빌려 파티를 했는데, 올해엔 풀빌라를 빌려 파티장으로 꾸미고 손님들을 초대할 예정”이라며 “그랜드하얏트 스위트룸과 파크하얏트 연회장 등을 알아봤지만, 모두 예약 마감인 걸 보면 핼러윈에 돈을 아끼지 않는 부모들이 많다는 뜻 아니겠냐”고 말했다.
아이들과 핼러윈 의상과 소품을 직접 만들며 소통과 스킨십을 늘리는 부모도 있다. 경북 포항에 사는 이정연(35)씨는 “지난해 다이소에서 구매한 저렴한 가면이나 망토에 재봉틀이나 본드를 이용해 장식용 수술 등을 덧붙이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재활용 의상을 만들었다”며 “아이들이 즐거우면 부모도 즐거운 법이다. 어설프더라도 축제를 함께 준비한다는 마음가짐이라면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아니겠냐”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