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아무개(50)씨는 몇 달 전 새치 염색을 위해 미용실에 갔다가 엄마를 따라온 다섯살짜리 꼬마에게 “할머니”라는 소리를 들었다. 조씨는 “아직 손자·손녀를 볼 나이가 아닌데, 머리가 하얗다는 이유로 할머니 소리를 들으니 충격이 컸다”며 “두 달에 한 번꼴로 염색을 했었는데, 그 이후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머리를 감으면 염색이 된다는 새치 샴푸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조씨는 “석 달 정도 썼는데 염색보다 편한 데다 효과도 있고 돈도 절약된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아무개(36)씨는 최근 들어 부쩍 빠지는 머리카락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샤워할 때마다 욕조에 흩어진 머리카락을 보면 살점이 뜯겨 나가는 기분이다. 이씨는 “아직 미혼인데 가족과 지인들마저 ‘그러다 대머리 돼 장가도 못 가는 것 아니냐’고 걱정해 속이 탄다”며 “탈모는 뾰족한 답이 없다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몇 달 전부터 기능성 탈모 샴푸를 열심히 쓰고 있다. 그나마 머리가 덜 빠지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탈모 완화, 탈모방지, 새치 커버, 흰머리 염색…. 모발을 깨끗하게 관리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능성’을 강조한 모발 관리 제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애경·엘지생활건강·아모레퍼시픽 등 그간 모발 관리 제품을 생산하던 업체뿐만 아니라 제약사까지 가세한 ‘샴푸 대전’이 한창이다. 하지만 새로운 성분이 함유된 제품이 출시되면서 ‘안전성’과 ‘과대광고’ 논란도 벌어지고 있다.
■ “소중한 모발 지켜라”…2030 필수품 된 ‘탈모 샴푸’
탈모는 ‘현대인의 난치병’이 된 지 오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집계를 보면, 탈모로 인해 치료를 받는 환자는 2017년 21만5025명에서 지난해에는 24만2960명으로 계속 늘고 있다. 2030도 ‘탈모 안전지대’는 아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전체 환자의 40% 이상이 2030세대다. 이들을 포함한 국내 탈모 인구는 1천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기능성 탈모 샴푸’ 시장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 자료를 보면, 2016년 5479억원 규모였던 국내 샴푸시장이 2019년에는 6115억원으로, 2021년에는 6307억원으로 해마다 성장하고 있다. 샴푸 시장에서 기능성 탈모 샴푸 판매 비중도 늘고 있다. 2020년 시장의 25%를 차지했던 탈모 샴푸는 올해 2분기 기준으로 28%로 비중이 늘었다. 두피 관리 샴푸까지 포함하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8%로 거의 절반에 이른다.
탈모 샴푸 시장을 선점하려는 업체간 경쟁도 뜨겁다. 엘지생활건강은 탈모 완화 브랜드 닥터그루트를 중심으로 신제품을 출시하고 있고, 아모레퍼시픽은 라보에이치(LABO-H) 프리미엄9 등 탈모 샴푸를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애경산업은 ‘케라시스’ 브랜드를 통해 두피에 영양을 줘 탈모 증상을 완화하는 ‘스템루덴스 두피영양 샴푸’ 등을 출시했다. 이들 제품군은 대부분 파라벤과 벤조페논 등의 유해성분을 빼고, 약산성 또는 식물 유래 성분을 사용한다는 점을 내세운다.
제약사도 앞다퉈 가세하고 있다. 이미 에이치엘비(HLB)생활건강, 유한양행, 현대약품, 강스템바이오텍, 에이치케이(HK)이노엔, 셀리노 등이 탈모 기능성 샴푸 시장에 뛰어들어 관련 제품을 출시했다. 제약사들은 각각 줄기세포 배양액, 유산균 발효물 등 기존에 보유한 탈모 예방·치료 기술과 인체 과학실험에서 검증된 물질을 적용했다는 점을 홍보한다.
애경산업 관계자는 “탈모 샴푸는 탈모 증상을 가진 사람뿐만 아니라 탈모를 걱정하는 사람들까지 겨냥한 제품으로, 시장 확장성이 크다”며 “최근엔 두피와 모발을 피부처럼 관리하는 ‘스키니피케이션’(Skinification)이라는 신조어까지 유행할 정도로 머리카락이 아름다움의 중요 요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면서 탈모 기능성 샴푸의 수요는 계속 늘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 “염색 대신 감아봐”…모다모다가 이끈 ‘새치 샴푸’
지난해 8월 ‘자연 갈변 원리’를 이용한 새치 커버 샴푸를 내놓은 모다모다는 1년 동안 미국과 국내 시장을 통틀어 340만개가 넘는 제품을 판매했다. 매출 규모는 약 600억원에 달한다. 모다모다는 연내 중국시장 진출도 선언했다. 모다모다가 새롭게 연 새치 샴푸 시장에는 국내 대기업과 제약사들도 가세해, 시장 규모는 점차 커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올해 2분기 기준으로 ‘새치 샴푸’가 전체 샴푸시장의 약 8%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모다모다의 뒤를 이어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4월 염색샴푸 ‘려 더블 이펙터 블랙’을 출시했고, 엘지생활건강은 5월 ‘리엔 물들임 새치 커버 샴푸’를 내놨다. 토니모리는 ‘내추럴 체인지 색채샴푸’를, 닥터포헤어는 ‘폴리젠 블랙샴푸’를 선보였다. 일동제약 역시 염모 기능이 있는 ‘프로바이오틱 컬러 피그먼트 샴푸’를 판매 중이다.
이들 새치 커버 샴푸는 각각 봉숭아 물을 들이는 원리, 과일 갈변 원리, 자석 원리, 염모제 염색 원리 등 각 브랜드별로 다양한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새치 샴푸를 만드는 업체들은 기존 염색약과 달리 산화제가 없어 두피나 모발 손상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경쟁력으로 내세운다.
모다모다 관계자는 “우리 회사는 염모제를 쓰지 않고 자연 갈변 원리를 이용한 세계 최초의 샴푸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는 자부심이 크다”며 “지금은 흑갈색만 낼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다양한 색깔로 머리를 물들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염색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을 목표로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 과장광고·유해성 논란 현재진행형…해결해야 할 과제
이렇게 기능성 샴푸시장이 급격히 성장하고 있지만, 일부 제품을 두고 허위·과장 광고와 유해성 논란이 벌어지며 소비자들의 혼란도 커지고 있다.
최근 소비자단체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쇼핑몰에 유통 중인 53개 탈모 증상 완화 기능성 샴푸 광고 내용을 분석한 결과, 거의 모든 제품이 허위·과대광고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25개 제품(47%)이 ‘탈락 모발 수 감소’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며, 20개 제품(38%)은 ‘증모, 발모, 양모, 모발성장’ 등의 표현을 써 탈모치료가 가능한 것으로 과장했다는 것이다. 또한 14개(26%) 제품은 ‘탈모방지’와 ‘탈모 예방’을 기재해 샴푸 사용만으로 마치 예방이 가능한 것처럼 오인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소비자가 기능성 샴푸를 의약외품 또는 의약품으로 오인·혼동할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새치 염색 샴푸의 유해성 논란은 현재진행형으로, 최근 국정감사에서도 이어졌다. 앞서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지난 1월 모다모다 ‘프로체인지 블랙’에 들어가는 성분의 ‘1,2,4-트리하이드록시벤젠(THB)’을 사용 금지 원료로 지정했다. 이후 규제개혁위원회가 재검토를 권고하자, 식약처는 2년6개월 간의 추가 검증을 통해 금지 여부를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 국감에서 식약처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티에이치비가 함유된 염색 샴푸는 모다모다를 포함해 14종에 달했다. 2019년 유럽 소비자안전성과학위원회(SCCS)는 이 성분에 대해 “피부 감작성 우려 및 유전독성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2020년 12월 화장품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한 바 있다.
식약처는 지난달엔 토니모리 내추럴 체인지 블랙샴푸에 사용되는 ‘o-아미노페놀’ 등 염모제 5종 역시 화장품에 넣지 못하도록 하는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식약처 자료를 보면, 현재 이 5종 물질이 첨가된 샴푸는 무려 3601종에 달한다.
이런 논란에 대해 모다모다 관계자는 “티에이치비는 유럽에서 금지할 뿐, 미국·일본·호주 등에선 사용 중인 원료다. 단순히 이 물질이 포함됐다고 규제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모다모다 샴푸는 이 물질을 염료가 아닌 갈변을 일으키는 지용성 폴리페놀을 녹이기 위해 사용하는데, 피부에 흡수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업계 관계자는 “샴푸는 피부에 직접 닿는 물질인 만큼, 위해 가능성이 있다면 최대한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며 “이번 기회에 기능성 샴푸에 대한 유해성 논란이 종식돼, 소비자가 안전한 상품을 선택할 수 있는 기준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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