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과 장마가 이어지는 여름철, 배달 단가를 둘러싼 라이더와 플랫폼의 줄다리기에 배달 음식 주문 지연으로 발을 동동 구르는 소비자와 업주가 늘고 있다. 사진은 거리를 가득 메운 배달 오토바이들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이아무개(47)씨는 배달 앱을 통해 음식을 시켰는데 1시간이 넘도록 배달이 되지 않아 분통을 터뜨렸다.
배달 앱 업체 고객센터는 ‘채팅 문의’밖에 되지 않고 전화는 불통이라 음식점으로 전화했더니, 업주는 연신 사과를 하며 “배달기사가 배정이 안 돼 그러지 않아도 매장에서 직배(직접배송)를 나가려던 참”이라고 말했다.
결국 주문한 지 2시간 가까이 지나서야 주문한 음식을 받아든 이씨는 “폭염에 끼니를 때우려고 음식을 시켰다가 굶어 죽는 줄 알았다”며 “배달 앱 쪽에서 3천원짜리 쿠폰을 줬는데, 근본적인 대책 없이 쿠폰으로 무마할 일인지 답답하다”고 호소했다.
최근 배달 앱의 잦은 배달 지연으로 불편을 호소하는 소비자와 업주들이 크게 늘고 있다. 폭염과 장마 등 궂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지만,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해와 달리 배달 앱들이 ‘기상 할증’ 배달 단가를 쳐주지 않자 라이더들 사이에 ‘똥콜 골라내기’가 성행하고 있어서다.
라이더들은 “기름값도 안 나오는 단가로는 배달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배달 앱 쪽은 “배달 앱 이용이 줄어 이전 같은 출혈경쟁은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포털 자영업자 카페에는 요즘 ‘배차 지연으로 인한 주문 취소’에 관한 불만 글이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다. 한 자영업자는 “주문 접수 후 조리를 완료했는데, 쿠팡이츠 배차가 안 돼 고객이 주문 취소를 했다”며 “쿠팡에 손실보상을 요청하자 수수료를 다 뗀 금액이 환불됐는데, 라이더 배차 지연 문제에 대한 책임을 왜 업주에게 떠넘기냐”고 말했다.
또 다른 자영업자는 “배민1인데도 배차가 1시간 이상 안 돼, 고객은 재조리를 요구하고 난리가 난 상황”이라며 “환불만 해줘서 될 일이 아닌 것이, 공들여 쌓은 가게 이미지 망치는 건 누가 책임지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라이더들도 할 말이 많다. 한 라이더는 <한겨레>에 “왕복 6㎞ 배송을 가는데, 단가가 ㎞당 1천원이 안 되면 누가 배달을 하겠냐”며 “인건비는커녕 기름값도 안 나오는 ‘단가 후려치기 콜’을 받을 라이더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또 다른 라이더는 “지난해 여름엔 기상 할증과 프라임 타임 할증 등 프로모션을 적용하면 최대 2만원 이상의 단가도 많았는데, 요즘엔 기상 할증이 붙어도 5천~6천원에 불과하다”고 푸념했다.
라이더들이 모이는 카페에는 “오늘도 똥콜 20~30개는 골라냈다” “똥콜은 라이더들이 힘을 합쳐 받지 않아야 배달 앱이 단가를 올려준다” 등의 글이 줄을 잇는다. 이들이 말하는 ‘똥콜’은 거리 대비 단가가 낮은 경우뿐 아니라 한 번 들어가면 다른 콜을 받기가 어려운 지역, 폭염 속 엘리베이터 없이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3층 이상 빌라나 상가 등을 말한다.
지난 7월13일 점심시간 배달원들이 서울 종로구 종각 젊음의거리 인근에서 배달 중 잠시 정차하고 있다. 연합뉴스
배달 앱 업계에서는 코로나19 대유행이 극성이던 지난해와는 시장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설명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수요·공급의 문제로 보면 3~4월까지는 배달 수요가 많았고 라이더 공급이 상대적으로 달리는 상황이라 플랫폼들이 자본을 동원해서라도 라이더를 잡아야 하는 라이더 우위 시장이었다”며 “하지만 4월부터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봄나들이·여름 휴가철이 도래하며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기상 할증 등이 일부 붙었지만, 예전 같은 프라임 타임 할증이나 미션 수행 등과 같은 다양한 프로모션은 대폭 줄었다는 것이다. 즉, 시장 상황에 따른 자연스러운 가격조정이라는 뜻이다.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기준 배달 앱 1위 ‘배달의민족’ 6월 이용자 수는 1361만8177명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기 전인 3월(1414만9913명) 대비 53만여명(3.76%) 감소했다. 2·3위인 요기요와 쿠팡이츠는 감소 폭이 더 크다. 요기요는 3월 610만5499명에서 6월 514만9926명으로 95만여명(15.7%), 쿠팡이츠는 394만8040명에서 304만6천명으로 90만여명(22.8%)이 줄었다.
시민단체도 일부 배달 앱의 배달 지연을 비판하고 나섰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지난 25일 보도자료를 내어 “쿠팡이츠의 배달 지연 문제가 심각하다. 최근 라이더가 받는 배달 수수료가 적어지면서 조리가 완료돼도 라이더가 배정되지 않아 소비자와 업주가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이 많다”며 “기다리다 지친 소비자가 직접 매장을 찾아가 음식을 받아도 이미 지불한 배달료를 돌려받지 못한다. 쿠팡이츠의 재발방지 대책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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