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전문몰인 마켓컬리가 2022년 워커힐 수영장 파티 입장권을 단독으로 판매하고 있다. 사진은 파티 중인 워커힐 수영장의 모습. 마켓컬리 제공
식품 전문몰 마켓컬리에서 항공권을 사서 하와이에 가고, 패션 전문몰 더블유(W)컨셉에선 냉장고나 제빙기를 살 수 있다.
특정 품목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버티컬 커머스 플랫폼(전문몰)’들이 무섭게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전문성을 내세워 이용자를 끌어모은 것을 넘어 주력 외 품목까지 판매 범위를 넓혀 총거래액(GMV)을 높이려는 전략이다. 하지만 자칫 전문몰이라는 정체성을 상실해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0일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업계 설명을 종합하면, 신선식품 새벽배송 전문몰인 마켓컬리는 코로나19 거리두기 해제에 맞춰 전시회나 놀이시설 이용권 등 문화생활 관련 티켓 판매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 4월부터 괌, 하와이 등 해외 항공권 판매를 시작했고, 최근엔 여름철 맞이 ‘워커힐 호텔 수영장 파티’ 입장권을 단독으로 판매하고 있다.
여기에 대형 가전제품과 뷰티·화장품 등으로까지 판매 품목을 넓히고 있다. 지난달엔 에어컨과 냉장고, 텔레비전 등 가전제품 400여종에 대한 여름맞이 할인행사를 진행했다. 또 헤어·메이크업이나 유아용품, 캠핑물품 등은 별도 카테고리를 만들어 상품 수를 늘려가는 중이다. 마켓컬리 관계자는 “주력인 식품 상품 수와 비교해 비식품군 수가 30% 수준”이라며 “고객들이 편하게 쇼핑할 수 있게 상품 선택권을 늘린 것”이라고 말했다.
스트리트 패션 전문몰인 무신사 플랫폼에서 100여종이 넘는 건강기능식품들이 판매되고 있다. 무신사 누리집 갈무리
이를 두고 기업공개(IPO)를 겨냥한 ‘몸집 불리기’라는 해석이 나온다. 올해 안에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커머스 성장 지표인 총거래액을 키워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총거래액이란 소비자에게 판매한 상품·서비스의 총액으로 플랫폼에 얼마나 많은 고객이 붐비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오픈마켓같이 판매자와 소비자의 거래를 중개하는 경우 상품 판매 수수료만 매출로 잡히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사용된다.
마켓컬리 발표와 감사보고서를 종합하면, 지난 2019년 4300억원 수준이던 총거래액은 2020년 1조 2천억원, 2021년 2조원으로 매년 2배 이상 늘었다. 영업적자는 2019년 986억원, 2020년 1162억원, 2021년엔 2177억원으로 계속 증가했다. 거래액이 늘면서 적자 폭도 커지는 ‘이커머스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패션 분야 전문몰들도 같은 움직임을 보인다. 스트리트 패션 전문몰 무신사는 지난해부터 사업목적에 ‘건강기능식품 판매업’을 추가하고 100여종의 건강식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무신사는 패션 브랜드와 같은 절차의 심사를 거쳐 동국제약과 일양약품 등의 브랜드가 입점해 있다고 설명했다.
여성패션 전문몰 더블유컨셉도 주력인 패션과 뷰티용품 이외에 디지털 가전과 반려동물용품 등을 라이프 카테고리로 묶어 판매를 강화하고 있다. 단기 이벤트성 판매였던 라이프 카테고리 매출이 전년도와 비교해 두배 이상 크게 신장하면서 취급 브랜드 품목을 대폭 늘린 것이다.
무신사 관계자는 “무신사 스토어를 주로 이용하는 고객층에 맞는 제품을 스토어에서 소개를 하려는 목적”이라며 “가장 잘 할 수 있는 패션 분야에 집중하면서 전문몰로서 정체성을 강화하는 게 우선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여성 의류 플랫폼 더블유(W)컨셉의 디지털 가전 비스포크X잉크기획전 이미지. W컨셉 제공
업계에선 이런 전략이 스타트업 부흥기엔 매출 성장 등 성과를 낼 수 있지만, 지금같은 혹한기엔 출혈경쟁으로 이어져 경영악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가전 판매시 대리점 등과 별도 계약을 맺는 등 유통 단계가 복잡해 비교적 낮은 5% 안팎의 판매 수수료를 얻지만, 해당 상품을 취급하기 위한 인력(MD) 운용, 마케팅 등에 많은 비용이 들어가 결국 남는 게 없는 장사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더욱이 다양한 플랫폼이 경쟁하는 온라인 시장에서 전문몰로서의 정체성을 잃으면 고객 유출이 오프라인보다 더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 익명을 요청한 전문몰 관계자는 “옆 회사가 가전을 판매하며 거래액을 늘리는데 가만히 있으면 거래액이 벌어져 투자 유치나 상장 과정에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면서도 “경기 침체가 우려되는 현 상황에서는 무작정 품목만 늘리려다 판매 실적뿐만 아니라 이미지에도 타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전문몰들의 매출 증대에 집중한 외연 확장이 오히려 경쟁력 상실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연승 단국대 교수(경영학·전 유통학회장)는 “전문몰들이 성장만 보며 상품군을 늘리려다 경쟁 기업들이 버티고 있는 새 상품군에서 성과도 내지 못하고 자칫 주력 상품군의 경쟁력도 잃을 수 있다”며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시장이 성숙에 접어들어 더는 고성장이 어려운 상황에서 적자를 감수하며 외형을 키우는 전략은 더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