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내장 수술이 늘면서 실손보험 손해율이 급등하고 있다. 19일 대법원은 “백내장 수술을 일괄적으로 입원치료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앞으로는 백내장 수술을 받아도 통원치료비 외에 입원치료비를 받는 것이 어려워질 전망이다. 게이티미지뱅크
“병원에선 백내장이라며 수술을 안하면 큰 일이 날 것처럼 말해 정상적인 진단과 진료를 받고 수술을 했는데, 보험사에서는 실손보험 처리가 안된다고 하면, 소비자는 어떻게 하라는 건가요? 병원 과잉진료가 문제라면 정부에서 제재할 일이고, 보험사의 배짱 영업이 문제라면 금융당국에서 제재할 일인데, 가운데 낀 소비자만 피해를 보니 답답합니다.” (지난 4월 백내장 수술 이후 보험사와 분쟁을 겪고 있는 김아무개씨)
보험사들이 손해율 급증을 이유로 ‘백내장 수술 보험금 지급 심사 강화’에 나선 가운데, 19일 “백내장 수술을 일괄적으로 입원치료라고 볼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오면서 선량한 소비자들의 피해가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날 대법원 민사2부는 지난 16일 ㄱ보험사가 백내장 수술을 받은 실손보험 가입자 ㄴ씨를 상대로 제기한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확정했다. 심리불속행은 원심에 중대한 법령 위반 등 특별한 사유가 없는 경우, 본안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다. 앞서 2심 재판부는 해당 사건 피보험자의 입원치료 여부에 대해 “실손보험 약관상 환자가 입원치료를 받았다고 인정하기 어려우며 통원치료로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한 바 있는데, 대법원이 이 판결을 그대로 인정한 것이다.
지금까지 백내장 수술은 ‘포괄수가제’가 적용된다는 이유로 환자의 개별 치료조건과 무관하게 입원치료로 인정을 받아왔는데, 이런 관행에 대법원이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포괄수가제란 검사, 처치, 진단 등 의료 행위를 세분화해 진료비를 매기는 대신 한 질환에 필요한 여러 치료 항목을 묶어서 진료비를 책정하는 방식이다. 대법원은 입원치료에 해당하려면 최소 6시간 이상 입원실에 머무르거나 처치·수술 등을 받고 연속해서 6시간 관찰을 받아야 하는 사정이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이번 판결로 실손보험 가입자들은 병원에서 백내장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하더라도 통원치료 보장 한도를 넘어선 비용을 보험금으로 지급받기 어려워졌다. 입원치료의 경우, 실손보험 보장 한도가 최대 5천만원에 이르지만, 통원치료는 보장 한도가 10만~30만 수준으로 미미하다.
보험업계에서는 이번 판결로 백내장 수술을 둘러싼 과잉진료 관행이 바로잡힐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일부 안과에서 백내장 수술이 불필요한 환자한테까지 단순 시력 교정 목적의 다초점렌즈 수술을 권해 1천만원이 넘는 수술비가 청구되는 등 과잉수술이 확산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번 판결을 환영한다”며 “브로커까지 연루된 보험사기 사건이 경찰에 적발되는 등 백내장 수술은 그간 실손보험 손해율을 치솟게 하는 주범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고 말했다.
보험업계 집계를 보면, 백내장 수술로 지급된 생명·손해보험사의 실손보험금 지급액은 올해 1분기 4570억원(추정치)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지난 3월 한 달 동안 지급된 보험금만 따져도 2053억원으로, 전체 실손보험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7.4%에 달했다.
백내장 미지급 보험금 피해자들은 지난 13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집회를 열고 백내장 미지급 보험금 지급을 촉구했다. 피해자 모임 카페 갈무리
하지만 보험사들이 지난 4월부터 백내장 진단 시 세극동 현미경 검사결과지 제출을 요구하고, 혼탁도가 3등급 이상 나오는 경우에 한해 보상을 해주는 등 보험금 지급 심사를 강화하면서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들 피해 소비자들은 지난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험금 지급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보험사기 행위 범죄자가 아니다”라며 “법률상 보험금 허위청구나 부당청구는 처벌을 받아야 하는 행위가 맞지만, 과잉진료에 대한 법적 기준과 판단 근거도 없이 과잉진료를 보험사기로 몰아 보험금 지급을 거절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 5월 한국소비자원도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4년 동안 비급여 치료를 과잉진료로 판단해 보험금을 미지급한 사례 가운데 백내장 수술 관련이 22.2%로 1위로 나타났다”며 소비자 주의를 당부한 바 있다.
백내장 지급 보류 피해자 모임 카페에서 활동 중인 한 소비자는 “백내장 수술을 할 때 입원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엔 수술비 등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인데, 입원이 필요한지를 누가 결정하는 것이냐”며 “의사 판단에 따라 입원치료를 하더라도 보험사는 자신들이 고용한 자문의에게 의료 자문을 받도록 동의서를 내라고 소비자를 압박하며 보험금을 안 주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고 비판했다.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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