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타지도 못 할 비행기’. 항공기 좌석값이 치솟으면서 휴가를 포기하거나 ‘짠물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사진은 인천국제공항 출국장 모니터에 표시된 출발 항공편 모습. 연합뉴스
자영업자인 허아무개(46)씨는 천정부지로 오른 비행기 삯과 숙박비 때문에 7월 초 아이들 방학에 맞춰 준비했던 ‘휴가 계획’을 포기했다. 대신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장인·장모님 댁에 가서 일손도 도울 겸 아이들에게 ‘농촌체험’을 시켜주기로 했다. 허씨는 “제주도만 가려 해도 교통비와 숙박비, 식비, 관광지 입장료 등을 두루 고려하면 4인 가족 기준 200만원 이상은 깨질 것 같더라”며 “시골에 가서 일손을 도우면 아이들 교육 측면에서도 좋고 휴가비도 절약할 수 있어 일석이조일 듯 싶다”고 말했다. 이어 허씨는 “시골집 마당에 대형 튜브 수영장을 설치해 아이들이 섭섭지 않게 물놀이를 시켜주려고 4만원대 튜브 수영장도 구입했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 대유행 사태가 잦아들고 여름 휴가철이 도래했지만, 천정부지로 뛴 비행기 삯과 물가 탓에 휴가를 포기하거나 최대한 휴가비를 아끼는 ‘짠물 휴가’를 계획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한쪽에서는 ‘보복소비’의 영향으로 해외여행 수요가 폭발하고 있지만, 또 다른 한쪽에서는 ‘휴포자’(휴가 포기자)가 속출하는 ‘여름 휴가 양극화 현상’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워터파크 입장료도 너무 비싸다.’ 치솟은 휴가 물가에 워터파크 대신 입장료가 없는 계곡으로 방향을 튼 사람도 있다. 사진은 지난해 7월 경기 과천시 중앙동 계곡의 물놀이 모습. 과천/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직장인 서진영(34)씨도 계획했던 ‘방콕 여행’을 포기했다. 항공 마일리지를 동원해 여름 휴가 시즌에 맞춰 비행기 표를 예매하려 했지만 마일리지로 예약할 수 있는 좌석은 이미 동났기 때문이다. 서씨는 “비행기 표와 숙소비 등을 포함해 견적을 내봤더니 예전에 100만원 미만에 편히 다녀올 수 있었던 방콕이 최소 200만원 이상은 들 것 같다”며 “일단 여름휴가는 포기하고 고향에 내려가 푹 쉬기로 했는데, 마일리지 소멸 시효가 도래하기 전에 비행기 푯값이 내리기만을 바라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여행 소비자들이 많이 모이는 포털 카페나 맘카페 등에는 서씨 같은 ‘휴포자’가 잇따르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그 돈 내고 동남아나 제주도 가느니 값이 내리길 기다리겠다”는 입장이다. 스스로를 ‘휴포자’라고 밝힌 30대 직장인 조아무개씨는 “꼭 비싼 값을 치르고 멀리 여행 다니는 것만이 휴가는 아니지 않냐”며 “비싼 물가에 스트레스를 받느니 차라리 몸 편하고 마음 편하게 집에서 수박이나 한 통 먹으며 쉬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집 나가면 개고생’. 뛰는 여행물가에 휴가 계획을 접고 집에서 ‘수박’을 먹으며 쉬겠다는 ‘휴포자’가 늘고 있다. 서울 성동구 이마트 성수점에서 수박 할인 판매를 하는 행사장 모습. 연합뉴스.
‘짠물 휴가’를 계획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아이 셋을 키우는 주부 이아무개(45)씨는 원래 가기로 했던 ‘워터파크’ 대신 입장료가 없는 계곡에 가지고 아이들을 설득했다. 이씨는 “5인 가족이 움직이려니 숙박비와 식비만 해도 감당이 안 될 정도인데, 아이들 원성에 휴가를 안 갈 수는 없어서 워터파크 입장료라도 아껴보려 한다”며 “짐이 좀 늘더라도 음식까지 다 싸가서 식비도 절약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친구 2명과 부산으로 휴가를 계획했던 대학생 조승용(23)씨의 경우엔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시설이 괜찮은 찜질방’을 알아보고 있다. 조씨는 동서울터미널에서 밤 11시59분 버스를 타고 해운대 터미널에 도착하면 1박 숙박비를 절약할 수 있고, 머무는 동안엔 찜질방에서 자면 된다. 돌아올 때는 23시50분 동서울행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해 첫 차를 타고 집에 갈 계획”이라며 “고속도로 먹거리도 비싸기 때문에 샌드위치와 간식을 집에서 각자 준비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프리랜서인 정아무개(33)씨는 “부부끼리 강릉에 다녀올 계획인데,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새벽에 출발해 무박 당일치기로 가기로 했다”며 “가뜩이나 성수기엔 바가지인 숙소 값이 더 뛸 텐데, 고생스럽더라도 이 방법이 돈을 절약하는 길인 듯 싶다”고 말했다.
도심 속 피서지인 한강 수영장이 이달 24일 3년 만에 개장한다. 치솟는 여행물가에 휴가를 포기하거나 ‘짠물휴가’를 계획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사진은 뚝섬 한강 수영장 전경. 연합뉴스
이 밖에 케이티엑스나 우등고속버스 대신 내부 좌석 등은 비슷한데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시외버스를 이용하라거나, 아예 ‘차박’을 하면서 교통과 숙소를 한꺼번에 해결하면 된다거나, 값이 싼 게스트 하우스 목록을 공유하는 등 ‘짠물 여행 노하우’도 전해지고 있다.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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