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공시생들의 배를 채워주던 편의점 간편식 가격마저 줄줄이 오르면서 주머니가 가벼운 수험생들의 고충이 점차 커지고 있다. 19일 오후 서울 노량진 고시촌 골목에 고시원과 스터디룸 간판이 보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방에서 서울 올라와 노량진 고시촌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성아무개(25)씨는 이달부터 부모님께 받는 용돈을 10만원 올려달라고 부탁했다. 학원비와 교잿값 등 외에 밥값·간식값·통신비 등의 명목으로 따로 용돈까지 받고 있는 처지라 마음이 무겁지만 천정부지로 오르는 물가 탓에 어쩔 도리가 없다고 했다. 성씨는 “고시뷔페(고시촌 식당에서 뷔페식으로 제공하는 식사) 가격이 올 초 한 끼 6천원에서 6500원으로 올랐고, 컵밥 가격도 500원씩 일제히 뛰었다”며 “최근엔 가성비 때문에 즐겨 마시던 편의점 커피 가격도 오르더니, 김밥이나 햄버거도 줄줄이 가격이 인상돼 솔직히 뭘 먹을 때마다 부모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19일 오후 서울 노량진 고시촌 컵밥거리에서 수험생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냉면·자장면 같은 외식 물가에 이어 싸고 간편했던 편의점 간식값까지 줄줄이 오르면서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학생들과 수험생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편의점 업계 쪽은 “김밥, 도시락, 햄버거, 치킨 등을 만드는 밀가루·식용유·설탕 등 원재료 가격이 일제히 뛰면서 가격을 인상할 수밖에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가성비 갑’으로 불리던 편의점 판매 식품마저 오르면서 체감 물가 상승률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가성비로 승부를 걸었던 편의점 치킨의 가격도 줄줄이 인상됐다. 사진은 부산 동래구 GS25 동래래미안아이파크점의 치킨 로봇. GS리테일 제공
19일 편의점 업계 말을 종합하면, 이마트24는 이날부터 순차적으로 김밥과 햄버거 등 24종의 가격을 100~200원씩 인상한다. 주요 제품만 놓고 보면 인상률은 4~10% 정도다. 삼각김밥 등 주먹밥 8종, 김밥 10종, 덮밥 1종은 이날부터 판매가가 올랐고, 햄버거 5종은 21일부터 오른다. 세븐일레븐도 지난달 말 도시락, 김밥, 햄버거, 샌드위치 등 13종의 가격을 100~300원씩, 최대 10% 인상한 바 있다.
2만원대 프랜차이즈 치킨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대체품으로 선호하는 편의점 치킨 역시 일제히 가격이 올랐다. 씨유(CU)는 이달부터 닭다리·넓적다리 등 치킨 제품을 2200원에서 2500으로 13.6% 올리고, 자이언트 순살치킨은 6900원에서 7900원으로 14.4% 인상하는 등 튀김류 6종의 가격을 올렸다. 순살치킨꼬치 등 4종은 가격을 올리는 대신 용량을 110g에서 95g으로 줄였다. 지에스(GS)25도 최근 조각치킨류 가격을 각각 200~300원씩 올리고, 쏜살치킨(한마리)은 기존 1만원에서 1만1천원으로 인상했다.
대학생 이미래(22)씨는 “2200원짜리 치킨 한 조각과 맥주 한 캔을 사서 마시는 것이 낙이었는데 가격이 오른다니 아쉽다”며 “몇백원의 돈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시급 1만원 이하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어 쓰는 처지에서는 무척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이마트24에서 판매하는 자체 브랜드 원두커피 이프레쏘 모습. 편의점 커피 1천원 시대도 이제 끝이 났다. 이마트24 제공
편의점 업계 자체 브랜드(PB) 커피 가격도 지난달부터 줄줄이 올라 ‘편의점 아메리카노 1천원 시대’가 막을 내렸다. 씨유는 즉석 원두커피 브랜드 ‘겟’ 가격을 200~300원 올렸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미디움은 1천원에서 1300원, 라지는 1200원에서 1500원으로 인상됐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라지는 1500원에서 1700원, 엑스라지는 1800원에서 2천원으로 조정됐다. 세븐일레븐 역시 원두커피 ‘세븐카페’의 가격을 100~300원씩 올렸다. 이마트24는 원두커피 ‘이프레쏘’의 따뜻한 아메리카노 가격을 1천원에서 1200원으로 인상한 바 있다.
노량진에서 만난 공시생 소아무개(28)씨는 “알바를 그만두고 시험준비에 집중한 이후 유일한 즐거움은 공부하다 잠깐 바람 쐬며 마시는 편의점 아메리카노였다”며 “한 잔에 4천~5천원씩 하는 커피 전문점 커피는 엄두를 못 내지만 편의점에서는 ‘천원의 사치’가 가능했는데, 이제는 이조차 ‘진짜 사치’가 될까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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