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6개월 만에 다시 문을 연 싸이월드. 싸이월드제트 제공
“오랜만에 ‘싸이 감성’ 돋는다~”
이주연(32)씨는 지난 2일 2000년대 한창 몰입했던 ‘싸이월드’가 다시 열린다는 소식에 카운트다운하듯 기다렸다 접속을 했다. 비밀번호 오류 등으로 여러 차례의 ‘고배’를 맛본 뒤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열었을 때 이씨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고 했다. 그는 “제 10~20대 기억이 고스란히 박제된 느낌이다. 이젠 연락이 끊긴 친구들 이름도 드문드문 눈에 띄고, 미니미와 미니룸도 너무 정겨웠다”며 “빨리 모든 서비스가 정상화돼 전성기를 되찾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2000년대 사회 전반의 문화를 주도했던 토종 에스엔에스 ‘싸이월드’가 2년 6개월 만에 서비스를 다시 시작하면서 추억을 찾는 접속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 앞서 20년 만에 재출시돼 ‘띠부띠부씰’ 대란을 불러온 ‘포켓몬빵’의 인기에 이어 레트로 열풍이 확산하는 모양새다. 덕분에 관련 서비스와 상품을 출시한 업계도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싸이월드는 ‘싸이데이’(4월2일)를 맞아 재오픈한 뒤, 이틀 연속 구글플레이와 애플 앱스토어 등 국내 양대 앱마켓 다운로드 인기순위 1위에 올랐다. 인스타와 블로그 등에도 자신의 싸이월드 접속 성공을 인증하고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게시물이 잇따르고 있다. 싸이월드는 현재 미니룸, 일촌맺기, 파도타기 등 일부 서비스가 복원된 상태다.
싸이월드에 수년 만에 접속했다는 강현지(29)씨는 “서로 일촌평을 써주며 관계를 증명하고 자랑했던 2000년대 감성이 촌스러우면서도 정겹게 느껴진다”며 “사진첩과 다이어리 등이 안 열려서 아쉽긴 한데, 주변 분위기를 보면 지금 당장은 서비스의 질보단 옛날 감성에 취하는 듯하다”고 전했다.
싸이월드 쪽은 사진 170억장과 동영상 1억6000만개 등의 복원 작업을 이미 마쳤다고 밝혔지만, 앞으로도 서비스 정상화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운영사인 싸이월드제트는 “2015년 1월1일 이전 회원들은 사진첩이 복원돼 업로드가 진행 중이며, 4월 중순 이후부터 사진첩에서 확인이 가능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3일 편의점 들머리에 붙어있는 포켓몬빵 품절 안내문.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싸이월드뿐만이 아니다. 앞서 ‘오픈런’ 열풍을 불러오며 편의점주와 아르바이트생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포켓몬빵’의 인기 역시 여전하다. 편의점 알바생 모임 등 커뮤니티에는 “포켓몬빵을 사기 위해 몰려든 아이들과 아주머니들이 연일 문 앞에 줄을 서고 있다”, “한 달 넘게 감정노동에 시달리니 죽을 맛이다”, ”생산량은 늘리든 예약판매를 했으면 한다”는 웃지 못할 고충글이 하루에도 수십 개씩 올라온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포켓몬빵은 한 주에 150만개 이상, 한 달 만에 700만개 넘게 팔려나갔다.
식품업계는 발 빠르게 ‘레트로 열풍’에 올라타 옛 제품을 재출시하거나 리뉴얼하고 있다. 빙그레는 추억의 제품 ‘링키바’와 ‘매운콩라면’을 재출시했다. 매운콩라면은 콩기름만을 쓴 색다름, 링키바는 한 박스 12개가 들어있는 가성비 제품으로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아왔지만 각각 2003년, 2006년 단종된 바 있다. 오뚜기도 지난달 자사 볶음면 판매량 1위 브랜드 ‘콕콕콕’ 용기면 3종을 리뉴얼했다. 주 소비층인 MZ세대의 취향에 맞춰 전자레인지 조리가 가능하면서도 탄소 발생 저감에 일조하는 친환경 용기인 ‘스마트 그린컵’을 택했고, 콕콕콕 연구원이 추천하는 레시피를 담은 QR코드를 제품 뚜껑에 넣기도 했다.
중고마켓에 올라온 포켓몬빵 띠부씰 판매 글. 당근마켓 갈무리
지난 주말 종영한 인기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tvN)도 레트로 분위기 조성에 한몫을 했다. 1998~2000년 언저리를 시대 배경으로 한 이 드라마의 인기 덕분에 주요 소품으로 사용된 만화책 <풀하우스>와 당시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 시디플레이어, 카세트테이프 등이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다. 드라마에서 주인공 나희도(김태리)가 스티커를 모으던 빵(일명 나희도 빵) 역시 덩달아 판매량이 치솟았다. 띠부씰이 유행하던 시대 배경 때문에 피피엘(간접광고)로 삽입된 세븐일레븐 자체브랜드 ‘브레디움’의 빵은 해당 방송 주(3월7~13일)에 매출이 3배 이상 급등했다.
레트로 열풍은 중고시장까지 달구고 있다.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포켓몬빵에 들어간 띠부띠부씰(포켓몬 스티커)은 1장당 2000원 언저리에 거래되고 희귀 스티커인 포켓몬 ‘뮤’의 경우엔 5만원짜리 매물도 올라온다. 159종 전부를 판매하는 경우엔 수십만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1~16권까지 세트로 구성된 만화책 <풀하우스>와 파나소닉·아이리버 시디플레이어, 카세트테이프 등 드라마 관련 상품 역시 중고거래 사이트와 맘카페 등을 중심으로 하루에 수십여건의 매물이 올라오는 등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