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정용진표 ‘노브랜드피자(No Brand Pizza)’ 대치점과 중소 피자점 ‘고피자(GO PIZZA)’ 대치본점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입구 사거리에 건널목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최근 1호 직영점을 오픈한 노브랜드 피자가 중소 피자업체 고피자의 외관과 기술 콘셉트 등을 따라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최근 직영 1호점을 연 ‘정용진표’ 노브랜드 피자가 가맹 사업에 본격 나서면 동네 피자가게 두 곳 중 한 곳 꼴로 큰 타격을 받을 것이란 우려가 업계에서 나온다. 신세계푸드가 자금력과 식자재 유통 경험을 바탕으로 공격적으로 전국 가맹점을 늘린다는 계획을 내비친 가운데, 중소 피자 프랜차이즈 가맹점과 자영 피자가게들이 벼랑 끝으로 몰리며 골목상권 침해 논란을 빚는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3일 <한겨레>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중소 피자 업계와 시민단체 등은 “노브랜드 피자가 내세운 중저가형 가성비 피자가 대다수 동네 피자집의 중저가 피자 시장과 겹쳐, 중장기적으로 골목상권 피해가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들이 노브랜드 피자의 시장 본격 진출 시 직간접적으로 영업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 중소 피자 전문점 수는 5천여곳(가맹점 및 개인 가게 포함)에 이른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2021년도 가맹사업 현황’을 보면, 전국에서 영업 중인 피자 브랜드 240개(총 가맹점 7024개) 중 가맹점 수가 10개 미만인 소형 프랜차이즈는 170개(70.8%)였다. 전체 피자 브랜드 중 매출을 공개한 83개 브랜드 가운데 가맹점 연평균 매출이 2억원 미만인 중소형 브랜드 비율은 48.2%다. 매출을 공개하지 않은 프랜차이즈 가맹점이나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개인 가게들 역시 대부분 영세 점포일 가능성이 크다. 가맹점주들은 <한겨레>에 “연 매출이 2억원인 경우, 투자비와 매장 운영비와 인건비, 재료 공급비, 본사 수수료를 빼면 월 200만원 안팎 수익이 난다”고 설명했다.
상호 노출을 꺼린 한 프랜차이즈 간부는 <한겨레>와 만나 “피자 산업을 보면, 도미노·피자헛·파파존스 등 거대 외국계 기업이 시장 절반을 먹고, 나머지는 수백개 중소 브랜드들이 치열한 중저가 경쟁을 벌이는 연약한 구조”라며 “신세계푸드가 자금력을 앞세워 중저가 시장을 공략하면, 가맹점 10곳 미만 작은 브랜드와 매출 2억원 미만 가게들이 직격타를 맞게 된다”고 말했다.
신세계푸드는 노브랜드 인지도와 식자재 유통 경험을 바탕으로 전국 가맹점을 빠르게 늘릴 계획이다. 매장 콘셉트도 10평대 배달 위주 소형 매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억원 중후반~2억원 초반 정도면 창업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돼 벌써부터 창업 문의가 몰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자에 비해 두배 이상 창업비용이 들고 운영 조건도 더 까다로운 노브랜드 버거 가맹점이 2년 만에 150개를 돌파한 것을 감안하면, 2∼3년 안에 노브랜드 피자 300호점 확보도 가능할 것으로 업계는 전망했다. 이는 업계 매출 상위를 다투는 도미노피자와 피자헛 가맹점 수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노브랜드 피자가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문 연 1호 직영점 내부 모습.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시민단체들은 노브랜드 피자의 골목상권 진입이 피자 시장의 다양성을 해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노브랜드 진입이 단기적으로 중저가 피자 업체 간 경쟁을 촉진해 소비자에게 이익이 될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중소형 피자 브랜드들이 문을 닫으면서 다양성을 해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성원 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사무총장은 “신세계·이마트 사업행태를 보면, 대형마트(슈퍼)와 편의점, 빵집, 한식 뷔페 등 골목상권을 빼앗아 이익을 얻으려는 전략을 펴왔다. 신세계푸드가 운영한 한식 뷔페 올반 때문에 주변 한식집이 줄줄이 문을 닫았고, 대형마트 폭풍에 동네슈퍼가 문을 닫으면서 편의점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사례들이 잇따랐다”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거리가 먼 행태”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노브랜드 피자가 골목상권에 들어오면 중소 규모의 영세한 동네 피자집 중 절반 이상이 문을 닫게 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동네 피자 가게들의 사업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노브랜드 피자의 사업내용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업조정 제도란 대기업 진출로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이 경영상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정부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법’에 따라 사업범위를 조정하도록 중재하는 것이다. 양창영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공정경제분과장(변호사)은 “파리바게뜨·뚜레쥬르와 동네 빵집 간에 사업조정이 이뤄진 사례처럼, 노브랜드가 중소 상인들의 사업 영역을 지켜주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옥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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