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한 순대국집에서 손님들이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전날 하이트진로의 소주 출고가 인상으로 이런 소규모 음식점들이 소주값 인상 여부 고민에 빠졌다.
“소줏값 올리면 그나마 있던 손님도 끊길까봐 걱정입니다.”
서울 은평구에서 순댓국집을 운영하는 김아무개(51)씨는 24일 하이트진로 등의 소주 출고가격이 인상된 뒤 고민에 빠졌다. 손님들이 만원짜리 한장 들고 순댓국(7천원)에 가볍게 한잔 곁들일 수 있도록 소주 한병을 3천원에 팔았는데, 출고가와 물가 인상이 겹쳐 소주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김씨는 “가격을 그냥 두자니 남는 게 없고, 올리자니 퇴근길 가게를 찾는 손님들한테 미안해서 상황을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소주 업계 1위 하이트진로를 시작으로 보해양조와 무학 등이 잇따라 소주 출고가 인상을 발표한 가운데, 음식점과 술집들은 매장 내 소줏값 인상 여부를 두고 ‘눈치싸움’에 들어가는 모습이다. 소주 출고가 뿐만 아니라 반찬 재료값과 인건비 등까지 오르면서 주류 가격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코로나19 유행 장기화로 장사가 어렵고 서민들도 힘들어 하는 분위기이다 보니 가격을 올리는 게 부담스럽고 단골들에게 미안하다.
하이트진로가 지난 23일부터 ‘참이슬 후레쉬’ 등의 출고가를 7.9% 올린 뒤, ‘잎새주’를 생산하는 보해양조와 ‘좋은데이’를 판매하는 무학도 다음 달부터 출고가를 각각 14.6%와 8.8% 올린다고 발표했다. 하이트진로 가격 인상으로 ‘국민 소주’를 자처해온 참이슬 후레쉬와 오리지널(360㎖)의 출고가가 1081.2원에서 1163.4원으로 82.2원 올랐다. ‘처음처럼’을 생산하는 롯데칠성도 조만간 7%대 가격 인상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소주 출고가 인상으로 식당이 주류 도매업체로부터 받는 납품단가도 덩달아 올랐다. 도매업체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소주는 출고가에 500원 안팎의 유통 마진이 붙어 1000원 중·후반대 가격에 식당에 공급된다. 여기에 식당 주인들은 상차림 비용과 인건비 등을 붙여 소주 한병을 4000원 안팎에 판매하는 게 일반적인 구조다.
24일 서울의 한 음식점 창고에 소주 출고가 인상 전 미리 주문한 소주 박스가 쌓여 있다.
음식점들은 이번 출고가 인상 전 미리 주류 물량을 더 받아 놓는 등 나름의 조치를 취해왔다. 서울 마포구에서 삼겹살 가게를 운영하는 최아무개씨는 “벌써부터 ‘소주 한병 6천원 시대’란 말이 나오지 않냐. 큰 가게들은 소주 가격 1000원 올리는 게 부담이 없겠지만, 우리 같은 작은 가게는 손님 눈치가 보여 가격을 쉽게 올릴 수 없다”며 “오미크론 때문에 손님이 더 줄었고, 지난주에 인상 전 가격으로 소주를 더 받아놔서 당분간 가격 올릴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유통가에선 주류세 조정으로 맥주 가격이 인상될 것으로 예상되는 4월쯤 식당가 주류 판매가가 전반적으로 조정될 거란 관측이 나온다. 기획재정부의 2021년 개정 세법 후속 시행령 개정안을 보면, 오는 4월부터 1년간 반출되는 맥주에 붙는 주세는 지난해보다 20.8원(2.49%) 오른 ℓ당 855.2원으로 결정됐다. 이를 계기로 맥주 시장점유율 1위 오비맥주를 비롯해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 등이 줄줄이 맥주 출고가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주류 업계 관계자는 “세금과 원재료 가격 인상분을 고려하면 최소 50원 이상의 맥주 출고가 인상이 불가피하다”며 “소주에 이어 맥주 가격이 조정되면 식당·업소에서도 주류 가격을 인상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아직 인상된 가격이 반영되지 않은 일부 대형마트에는 소주를 미리 구매해두려는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 한 대형마트의 경우, 지난 18~23일 가격 인상 전 소주 판매량이 2주 전에 견줘 79% 가량 늘었다. 이마트와 롯데마트 등 대다수 대형마트는 참이슬과 진로 소비자 가격을 24일자로 각각 1380원과 1290원으로 100원씩 인상했다. 씨유(CU), 지에스(GS)25, 세븐일레븐, 이마트24 등 편의점들도 참이슬과 진로 가격을 각각 1950원, 1800원으로 올렸다.
글·사진 옥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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