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오송에 있는 샘표 우리발효연구중심에서 지난 3일 연구원들이 곰팡이 실험을 하고 있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올리브색 곰팡이는 맛의 풍미를 키우고, 검은색 곰팡이는 나쁜 세균을 억제합니다.”
샘표의 연구원들은 1년 365일 내내 곰팡이를 연구한다. 곰팡이 중에서도 간장이나 된장의 맛, 색깔을 결정하는 발효 미생물이 연구 대상이다. 미생물은 콩과 소금, 물을 자연 발효시켜 천연 조미료인 간장을 만드는 마법의 물질이다. 곰팡이 분석은 한국인의 밥상을 이해하기 위한 기록이자 75년간 샘표를 버티게 한 핵심 비밀이다.
3일 충북 오송에 있는 샘표 우리발효연구중심에서 만난 이재중 연구원은 “샘표 저력이 집중된 공간”이라며 연구소를 소개했다. 국내 첫 발효 전문 연구소인 이곳은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300억원을 투자해 2013년에 설립됐다. 연구소는 발효시킨 메주콩에 피어난 미생물들을 배양하는 공간과 미생물의 성질을 분석하는 실험실, 미생물을 배합해 만든 식품 등의 안전성을 분석하는 연구실 등으로 각각 분리돼 있었다. 실험실 책상과 바닥 곳곳에 간장과 된장이 가득 늘어선 모습만 빼면 여타 첨단 공학 연구소와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연구원들은 메주에서 품질 좋은 곰팡이를 찾아내기 위한 실험에 분주했다. 연구원들 설명을 종합하면, 매년 2월부터 국내에서 유명한 간장 맛집과 종갓집들을 찾아다니며 질 좋은 메주를 구하는 것부터 곰팡이 연구가 시작된다. “비법을 훔치러 왔느냐”며 문전박대당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전국에서 수집한 유명 메주에서 미생물을 분리해 배양하는 작업이 진행된다. 이날도 메주콩이 가득 담긴 기계가 미생물을 배양시키기 위해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충북 오송에 있는 샘표 우리발효연구중심 연구실에서 연구원들이 미생물 실험을 하고 있다. 옥기원 기자
연구원들은 복도 중앙에 있는 종균실을 가리켜 “사장님도 들어올 수 없는 1급 기밀 공간”이라고 말했다. 종균실은 메주에서 배양·채취한 미생물들을 영하 80도 냉동고에 보관하는 ‘곰팡이 은행’으로 발효 연구에 핵심이 되는 데이터가 축적된 공간이다. 수천여종의 미생물이 보관된 종균실엔 연구 책임자 3명만이 안면 인식 등 삼엄한 보안을 통과해 입장할 수 있다. 샘표가 보유한 미생물 통제 기술은 수만t의 간장에서 똑같은 맛과 향을 낼 수 있게 하는 영업 기밀이다.
우리발효연구중심은 동양 음식에 관심 있는 해외 유명 셰프들이 한국에 방문할 때 꼭 들리는 명소가 됐다. 미슐랭 3스타 셰프인 스페인의 끼께 다코스타와 미국의 코리 리, 분자요리의 대가인 안도니 루이스 아두리스 등이 연구소를 찾아 한국의 장과 발효 문화를 경험하고 돌아갔다.
미생물 제어 연구로 탄생한 ‘요리에센스’ 연두도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미국, 영국, 중국, 스페인 등 전 세계 50여개국에서 판매 중인 연두는 미국 식품음료어워드 ‘혁신 제품상’, 영국 베지 어워드에서 ‘비건식품 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연두 인기 등에 힘입어 지난 6일 무역의날 기념식에서 샘표가 3000만달러 수출탑을 수상하기도 했다. 박진선 샘표 대표는 <한겨레>와 만나 “매년 매출액의 4∼5%씩 꾸준히 연구개발에 투자한 결실”이라고 말했다.
옥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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